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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이미 당신 곁에 있다 중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을 보았다. 묵묵히 기차역을 바라보고 있는 늙은 부부가 있다. 곱게 단장을 한 아내는 앞을 바라보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든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니. 어쨌든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도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그런 다음 영화는 이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이미 당신 곁에 있어요.” 문화대혁명 시절,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대학교수 루옌스가 수용소를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루옌슨은 그를 체포하기..

공감 Best 20 2022.12.30

눈오는 날 걱정

눈오는 날 걱정 순천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전원에 온지 만 9년 가까운데 제일 많이 내린 것 같습니다. 이곳은 시내와 떨어진 산골이라 눈이 많이 오면 교통이 두절됩니다. 오늘은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문정희 시인이 말하는 ‘눈부신 고립’(‘한계령을 위한 연가’중)이 아닌 ‘걱정스런 고립’입니다. 문득 먼 옛날 동사무소 근무시절 산불이 나면 높은 산꼭대기까지 오르내렸는데 그때 제 어머님께서 손자를 등에 엎고 있다가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느그 아빠 고생하것다.”고 하셨답니다. 그런 후부터 어린 아들은 어디서 연기만 피어오르면 “우리 아빠 고생하겠다.”고 했다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따뜻한 방에 등을 대고 편안하게 누워있다가 출근하여 제설작업을 하고 있을 “우리 아들 고생하겠다.”고 생각하니..

지대용 / ‘질풍 속에서 피는 꽃’(한누리 미디어 출판)중에서

지대용 / ‘질풍 속에서 피는 꽃’(한누리 미디어 출판)중에서 광복 이후 학원가에서 주목할 만한 일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마저 이념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사실이었다. 8.15 이후 노골화하였던 좌익세력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된 이후 강력한 우익세력 앞에서 몸을 사리고 피신하거나 더러는 월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좌익단체에 가입한 사실은 극비에 부쳐지고 지하조직의 형태로 명맥이 유지되었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마저 좌우세력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대혼란은 학원내의 학생과 학생의 대립에 그치지 않고 교사와 교사의 대립과, 학생과 교사의 대립도 일어났다. 우익학생들은 좌익교사들에 대한 배척운동을 일으키고 좌익학생들은 우익교사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사제관계는 전통적인 사..

역사 2022.12.20

현상과 이데아

현상과 이데아  플라톤은 세상을 현상계와 이데아계라는 두 세계로 구분합니다. 현상계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변화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지요. 반면 이데아계는 고정되어 있어 불변하는 세상입니다. 그곳은 참된 진리의 세계입니다. 진리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품고 있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현상계에서 우리는 숨을 쉬고 낙엽을 밟고 버스를 타고 일을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을 우리는 눈, 코, 입 등의 오감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상은 우리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세계입니다. 반면 이데아는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이성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인 이데아는 이성으로 ..

철학 2022.12.18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폴 미쉘 푸코(Foucault ,1926~1984, 프랑스) 사진출처 :경향신문 생산하는 권력 푸코의 문제의식은 프랑크푸르트학파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유사합니다.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여 그 본질을 발가벗겨 보는 것입니다. 주체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주체의 참모습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작업을 거쳐 푸코가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는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몸,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권력 작용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일까요? 제도일까요? 국가일까요? 왕일까요? 지배계급일까요? 푸코는 권력을 고정된 어떤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절대권..

철학 2022.12.18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트겐슈타인 한 권의 책을 쓴 후 철학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믿고는 스스로 철학계를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철학계의 천재로 떠올랐지만 철저히 소박한 삶을 실천하면서 살다간 시대의 기린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를 소유한 사업가였습니다. 자식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고 음악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의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식들이 공학을 전공해서 사업가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런 아버지와 갈등을 빚어 세 아들이 자살을 했고 비트겐슈타인도 10대 중반부터 자살 충동..

철학 2022.12.17

순천만 습지 (2022.12.11)

순천만 습지 (2022.12.11) 오랫만에 순천만 습지를 찾았는데 초겨울의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창공에 철새들이 날면서 우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와온 바다 / 곽재구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커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빛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 음악 새벽이면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

정지아 / ‘숲의 대화’(은행나무 출판)중에서

정지아 / ‘숲의 대화’(은행나무 출판)중에서브라보, 럭키 라이프(...생략...)"아가! 나가 분명히 봤다. 니는 할 수 있어야 겡우야! 쪼깐 힘내서 다시 해보자."경우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서서히 팔이 올라간다. 반 뼘이나 올라갔을까, 아들의 팔은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침대로 떨어진다. 아들의 팔은 분명 저 스스로 움직였다. 사고를 당한 날로부터 무려 23년 만이다. 아들은 또 기적을 만들어냈다."아이고, 아가!"그의 고함을 듣고 달려온 아내도 그 기적의 순간을 목격한 모양이다. 아내가 아들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아들의 양 눈가로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도 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23년 만에 아들은 제 팔을 들어 올렸다. 의사는 근육운동을 관장하는 뇌가 ..

최근 읽은 책 2022.12.10

이웃집의 김장 축제

이웃집의 김장 축제 길가에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앞집 노인회장님댁에서 김장을 담는 날입니다. 시내 사는 아들 내외, 두 딸과 사위들이 모여서 많은 양의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지금은 한참 양념을 버무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댁은 핵가족 시대에 보기 드물게 가족 간의 훈훈한 정이 살아 있는 집입니다. 그분들은 틈만 나면 수시로 모여 가족 이벤트를 갖습니다. 얼마 전에는 회장님의 팔순을 맞아 가족들이 제주도에 갔고 복장까지 통일해서 재미있게 놀고 왔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 외지에서 들어 온 집들은 거의 두 부부만 단출하게 살고 있는데 회장님 댁의 시끌벅쩍하고 정감이 있는 삶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친구 박형하가 이해인의 ‘12월의 노래’라는 시를 읽고 평한 글이 떠오..

전원일기 2022.12.10

김주혜(박소현 옮김) /‘작은 땅의 야수들’중에서

김주혜(박소현 옮김) /‘작은 땅의 야수들’중에서    남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정말로 어떤 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벼랑 가장자리에서 낮게 그렁대는 숨소리였다. 짐승이 호흡할 때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수증기가 향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는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그러나 사냥감을 포획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산 아래까지 무사히 내려가진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표범의 먹이가 되어 죽고 싶지는 않을 뿐이었다. 표범이 절벽 끝에 튀어나온 바위로 훌쩍 올라왔다. 짙은 안개 속에서 윤곽으로만 어른거리는 그 짐승의 존재를 그는 눈으로 보기보다 온몸의 감각으로 느꼈다. 마침내 짐승이 몇 자도 되지 않는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남자는 숨이 턱 막혀 활을 아래로 내렸다. 그것은 표..

최근 읽은 책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