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Best 20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송담(松潭) 2022. 12. 30. 05:40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이미 당신 곁에 있다

 

 

 

 중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을 보았다.

 

 묵묵히 기차역을 바라보고 있는 늙은 부부가 있다. 곱게 단장을 한 아내는 앞을 바라보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든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니. 어쨌든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도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그런 다음 영화는 이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이미 당신 곁에 있어요.”

 

 문화대혁명 시절,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대학교수 루옌스가 수용소를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루옌슨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찾아온 공안들의 눈을 피해 아내 펑안위에게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남긴다. 아내는 당장 짐을 싸 들고 기차역으로 달려가는데, 둘이 만나기 직전 딸의 밀고로 체포당해 다시 수용소로 끌려간다. 발레를 전공하는 딸은 실력이 뛰어난데도 반동분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주연을 맡지 못하다 아버지를 고발하면 주인공 자리를 주겠다는 공안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 소용돌이가 지나고 루옌스는 마침내 사면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무겁게 내려앉은 집안 분위기, 남편은 아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사계절이 거듭 되풀이되면서 세월은 무심히 흐른다. 이제 혼자서는 걸을 수조차 없는 백발의 펑안위가 5일이 되자 다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루옌스는 아내가 타고 갈 인력거 쌓인 눈을 털고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늙은 아내를 인력거에 태우고 기차역으로 간다. 기운이 빠진 펑안위는 이제 남편을 찾는 피켓마저 들지 못하고 의자에 앉은 채 기차역의 계단을 바라본다. 철도원의 승객이 다 빠져나간 기차역의 출입문을 딛고, 남편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기차역을 함께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이 침묵속 에서 점점 어두워진다.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별처럼 빛나며 흩날리는 순간, 루옌스와 펑안위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속에서 그들 부부는 관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은 도착했나요?”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내 영혼은 멀리 남쪽을 향해 떠났다네.

남쪽으로, 우리 남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북극 지역을 연구했던 덴마크 인류학자 라스무센이 엮은 에스키모의 시들 중 <미개인>이라는 시의 일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노부부가 눈이 내리는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오래전 어느 날 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을, 남편은 오래전 어느 날 기억하는 능력을 상실한 아내를, 그들은 관객을 압도하는 침묵 속에서 이렇게 묻는다.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감히 이 영화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슬픔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 누군가를 알아보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원재훈 / ‘고독의 힘중에서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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