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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 ‘눈감지 마라’중에서

이 아버지를 보라 “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지난달 중순 무렵, 정용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또 두 분이 다투셨어요?” 정용이 묻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싸우긴 뭘, 말 상대가 돼야 싸우기라도 하지... 이건 뭘...그냥 개라니까, 개.” 원체 입이 건 어머니이긴 하지만, 사실 정용 또한 아버지를 볼 적마다 속으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선인장이나 화초, 밑동이 단단한 나무처럼 좋은 것들 대신 자꾸 개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58년 개띠라서 그런가? 하지만 정용의 아버지는 여타 다른 아버지들처럼 인간과 개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상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다. 정용은 동네의 몇몇 그런 아버지들을 알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그..

인생 2024.05.01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한때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야 날개를 펴듯,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비밀을 먼저 손에 쥐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자신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천명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로, 다시는 군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문민통치의 시대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고 관치를 넘어 공정한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 선거 때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명칼럼, 정의 2024.04.28

고양이 같은 봄이 달려듭니다

고양이 같은 봄이 달려듭니다 닭 잡으러 가는 고양이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얼마나 살금살금 가는지.. 풀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릴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가더군요. 그러다가도 닭이 조금이라도 낌새를 챈 것 같으면 바로 얼음이 돼요. 숨도 참는 것 같더라고요.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긴장된 순간이 지나고 지척이 되면 확 덮치는데요. 봄이 꼭 닭잡으러 오는 고양이처럼 다가옵니다. 아직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곧 "잡았다.” 하고 외칠 거예요. 그러면 천지 사방이 다 놀라서 진달래, 개나리 화들짝 피고 벚꽃 휘날리며 꽃들이 난장을 부리겠지요. 그렇게 푸닥거리를 하고 나면 초록이 내려옵니다. 김창완 /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중에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연두빛(2024.4.24 산책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