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98

구본형ㆍ홍승완 /마음편지(을류문화사 출판)중에서

삶에는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져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융의 자서전을 수시로 꺼내 읽고 그가 정립한 분석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공부했다기보다는 그냥 거기에 빠졌습니다. 융의 자서전을 읽은 후 방문을 걸어 잠그다시피 하고 한 달 내내 그의 다른 저작과 분석 심리학에 관한 책을 열 권 넘게 연거푸 읽었습니다. 자는 시간 빼고는 책만 읽었던 것 같습니다. 1년 넘게 나의 독서 목록은 융과 분석 심리학 서적으로 채워졌으며, 이후에도 오랫동안 융의 심리유형론에 기반을 둔 MBTI를 공부하고 전문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융의 사상은 난해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공부할수록 매혹되었고, 그와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융의 자서전은 내게 하나의 계시였습니다. 자연의 겨울이..

철학 2023.02.16

현상과 이데아

현상과 이데아 플라톤은 세상을 현상계와 이데아계라는 두 세계로 구분합니다. 현상계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변화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지요. 반면 이데아계는 고정되어 있어 불변하는 세상입니다. 그곳은 참된 진리의 세계입니다. 진리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품고 있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현상계에서 우리는 숨을 쉬고 낙엽을 밟고 버스를 타고 일을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을 우리는 눈, 코, 입 등의 오감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상은 우리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세계입니다. 반면 이데아는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이성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인 이데아는 이성으로 파..

철학 2022.12.18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폴 미쉘 푸코(Foucault ,1926~1984, 프랑스) 사진출처 :경향신문 생산하는 권력 푸코의 문제의식은 프랑크푸르트학파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유사합니다.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여 그 본질을 발가벗겨 보는 것입니다. 주체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주체의 참모습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작업을 거쳐 푸코가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는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몸,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권력 작용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일까요? 제도일까요? 국가일까요? 왕일까요? 지배계급일까요? 푸코는 권력을 고정된 어떤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절대권..

철학 2022.12.18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트겐슈타인 한 권의 책을 쓴 후 철학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믿고는 스스로 철학계를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철학계의 천재로 떠올랐지만 철저히 소박한 삶을 실천하면서 살다간 시대의 기린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를 소유한 사업가였습니다. 자식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고 음악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의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식들이 공학을 전공해서 사업가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런 아버지와 갈등을 빚어 세 아들이 자살을 했고 비트겐슈타인도 10대 중반부터 자살 충동..

철학 2022.12.17

근대철학사 개요

근대철학사 개요 근대는 이성의 시대였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을 세웁니다. 과학의 발전에 고무된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알 수 있다고 확신했고 이런 경향은 인식론의 발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대변하는 두 흐름이 합리론과 경험론이었습니다. 합리론은 본유관념을 기반으로 의심할 수 없는 중요한 근본 원리를 파악한 후 하나씩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연역적 방식을 강조했고, 경험론은 경험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에서 지식을 얻어 세계에 대한 이해로 접근하는 귀납적 방법을 신뢰했습니다. 이 두 흐름은 칸트에 의해서 비판적으로 종합되고 헤겔에 의해서 절대정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한편 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이상에 대한 믿음으로..

철학 2022.09.21

나는 몸이다

나는 몸이다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혼은 몸에 속하는 그 어떤 것을 표현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에게 인간은 몸입니다. 당연히 삶 또한 몸입니다. 몸에서 시작해서 몸으로 끝나는 것이 니체의 인간입니다. 플라톤 이래 최고의 지위를 누려 온 것이 이성 혹은 영혼이었습니다. 근대까지 철학자들은 인간을 영혼과 몸(신체)으로 분리하고 영혼에 신적인 권위를, 몸에 불완전성과 타락성을 부여했습니다. 영혼은 고귀하고 몸은 더러운 것이라는 관념이 그것입니다. 이성과 영혼의 고귀함을 찬양하고 몸을 무시 혹은 경멸하는 것은 철학의 전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니체는 이성과 영혼조차 몸에 속하는 것이며 몸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이성은 작은 이성이며..

철학 2022.09.20

존재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 독일) 우리는 흔히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을 합니다. 어떤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이 존재를 잘못 다루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그동안의 형이상학을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왜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존재 질문'이라고 합니다.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질문이죠. 왜 세상에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요? 하이데거에게는 있음이라는 사태, 존재라는 현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과제였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현상..

철학 2022.09.19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칸트(Kant, 1724-1804) 하면 떠오르는 말입니다. 칸트 철학이 추구했던 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죠. 직관(直觀)이란 감각을 통해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거나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 직관이죠. 반면 개념(槪念)은 구체적인 것들을 일반화해 만들어 낸 지식 혹은 관념을 뜻합니다. 각각 열한 명인 양편이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직관이고, 이런 경기를 축구라고 이름 짓는 것은 개념입니다. 근대철학의 비판적 종합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는 말은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이 없이 개념만 가지고 있다면 그 개념은 텅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뭔가를 안다는..

철학 2022.09.16

물 흐르듯 자유롭게 사는 삶 / 노자의 <도덕경>

물 흐르듯 자유롭게 사는 삶 / 노자의 세상의 흐름 ‘도(道)’를 따르라 은 춘추시대 노자가 남긴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덕경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 것을 권합니다. 노자의 가르침을 흔히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 흐르듯 사는 삶입니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데, 이는 혼란을 가져오고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욕망이 크면 괴로움도 크다는 것을 노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해도 그것은 그의 노력이 아닙니다. 마침 주식이 내려갔는데 그때 여윳돈이 생겼고, 우연히 마음에 드는 종목을 샀고, 마침 그 회사 실적이 좋아서 주식 가격이 상승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주식을 샀기 때문에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황이 그렇게 만..

철학 2022.09.05

소유를 넘어 존재하는 삶

소유를 넘어 존재하는 삶 에리히 프롬의 길을 가다가 예쁜 꽃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꺾어서 집으로 가져와 화병에 담는 것입니다. 집안이 화사해지고, 꽃을 집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꽃은 곧 시들어버릴 겁니다. 이것은 '소유 중심의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꽃을 감상하고 향기를 느끼며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을 함부로 다루지않고 아낍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함을 긍정하는 '존재 중심의 삶'입니다. 우리는 소유하는 삶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무척 피곤합니다. 끊임없이 가질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요구는 끝이 없고, 끝이 없는 욕망을 좇는 것은 고통을 불러옵니다. 모든 괴로움의 근원에는 소유가 있습니다. 에..

철학 2022.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