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133

박용래와 강아지풀

박용래와 강아지풀    강아지풀은 흔하디흔한 풀이다.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도 아니다. 그저 길가나 풀숲 귀퉁이에 자라 눈여겨보는 이도 없다. 사는 곳이 어디건 주인 행세도 하지 않는다. 긴 수염이 달린 좁쌀 같은 열매가 강아지 꼬리를 닮아 한자로는 구미초(狗尾草)라 한다.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강아지풀을 시인 박용래는 ‘가장 사랑하는 한마디의 말’이라 했다. 고개 숙인 강아지풀의 턱밑을 간질이며 강아지 어르듯 ‘오요요 내 강아지’ 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아지풀을 집에서 기르는 털북숭이 강아지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 그의 만물 사랑은 넓고도 깊어 동식물 구분이 없었다. 그는 강아지풀을 보고 “빛을 바라며 어둠 속에서 우는 어린이 같은 존재”라고 했지만, 나는 시인을 떠올렸다. 아주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쾌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쾌거  한국 작가 최초,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 ⓒ김병관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후 한국인으로선 두번째 받은 노벨상이자, 첫 노벨문학상이다.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인간의 아픔을 문학 언어로 승화시켜온 작가의 고투가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 성취로 평가된다. 작가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 문학 쾌거라고 할만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을 발표하면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선정..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 / 이기은   기다림은 비어있는 하얀캔버스연두색 봄, 녹음 짙은 여름붉은 정열의 가을을 그리고남긴 여백은 하얀 겨울다음엔 고즈넉한 기다림 기다림이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은내 가슴에 있기에누군가의 마음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기다림은 기다림만으로 아름답다 기다림의 공간에 끝 없는 그림을 그린다빼곡하게 채워져도 지우지 않고그 위에 덧 그린다삶이 지루한 날갈피갈피 걷어내며 어제를 추억하려곱게 분단장 시켜놓고 꼭 보담어 안으려 기다림은 온전히 내게서 잉태된선홍빛 열정이기에... 출처 : 다음카페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쉼터’

사랑의 시(詩) / 김산

비 오는 날, 사랑의 시(詩)   김산 선생님을 만나 정원에 자연석을 배치한 후부터 비가 오면 비에 젖어 각자의 색을 드러내는 돌들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오늘도 우산을 쓰고 비에 젖은 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니 때마침 김산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정원의 돌들이 궁금한 것은 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정원에 있는 묵묵한 돌의 모습과 흡사한 김산 선생님께서 시 한 편을 보내왔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사랑의 시, 사랑의 철학을 배웁니다.   사랑 / 김산 사랑이란서로의 틀 만드는 것이 아니라아집으로 쌓았던 눈 높이의 벽허물고 허무는 것 사랑이란멀리 떨어져 있어도늘 가까이 있는 것 처럼마음의 눈은한줄기 따뜻한 별이 되어서로의 시린 가슴살며서 감싸주는 것 사랑이란받아서 채워지는 것도주어서 비워..

순천만 습지 (2022.12.11)

순천만 습지 (2022.12.11) 오랫만에 순천만 습지를 찾았는데 초겨울의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창공에 철새들이 날면서 우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와온 바다 / 곽재구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커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빛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 음악 새벽이면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

할머니의 마스크

할머니의 마스크 혼잡한 도심의 교차로를 낡은 리어카 한 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잡동사니 고물을 잔뜩 실은 채 신호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쁘게 걸어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놀란 차량들이 잇달아 경적을 울려도 끌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리어카는 그냥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혼자 움직이는 듯한 리어카가 신기하여 손잡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그곳엔 리어카보다 자그마하고 실려진 고물보다 더욱 낡고 구부러진 할머니 한분이 폭염에도 불구하고 때묻은 광목천으로 입을 휘감은 상태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찌든 삶의 무게에 짓눌려도 나름 꿋꿋하게 견뎌왔지만 코로나 19가 창궐한 두어 해 전부터는 스스로 생사의 경계선에도 서 보았고 소중한 사람과 때아닌 이별도 ..

고아

고아 1918년 소녀들이 도시에 도착한 그날 조금 더 이른 시각에, 한 소년이 남대문을 통과했다. 전날 밤 그 아이는 궤짝 운반을 거들거나 소소한 심부름을 하는 대가로 몇 주간 그를 거둬주었던 보부상 한 무리와 작별했다. 그들은 아이에게 20전짜리 은화 두 닢을 주었는데, 그 정도면 공동 여관방에 묵으며 국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공복을 견딜 만한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끼니를 거르며 돈을 아끼기로 하고, 남대문 바깥 도로변의 도랑으로 향했다. 흙바닥 어느 귀퉁이에 둥그렇게 팬 곳을 발견하자 그는 옆으로 몸을 웅크려 그곳에 누운 뒤 무릎을 가슴까지 올려 바짝 끌어안았다. 마치 소년이 그 자리에 눕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연한 강아지풀 다발이 부드러운 이불처럼 그..

닮고 싶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먼저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매 순간 최선의 배려를 건네는 사람이었으며,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이었고, 자꾸만 내게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를 향해 먼저 뻗는 손길에는 배려가 숨어 있고, 누군가를 향해 먼저 내딛는 걸음에는 희생이 묻어 있고, 누군가를 항해 먼저 건네는 마음에는 용기가 담겨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의 행동에는 나를 향한 진심 외에 어떤 목적도 존재하지 않기에 나 또한 같은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이 있다.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누군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참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미워하지 않을 용기 삶을 걷다 보면 자꾸만 스스로를..

울지 말아요, 베트남

울지 말아요, 베트남 몇해전, 성탄절을 앞두고 베트남에 갔다. 호치민(사이공)공항 대합실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가히 눈물바다였다. 그날은 마침 한국으로 산업연수생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저들의 눈물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순간 1960, 70년대 우리네 풍경이 떠올랐다. 그래, 그때 김포공항이 이랬었지…. 순전히 돈을 벌려고 낯선 나라로, 잘 사는 나라로 주먹 쥐고 눈물을 뿌리며 떠나갔다. 김포공항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후진국일수록 공항은 눈물에 젖는다. 가난했던 그때 우리처럼, 베트남 사람들도 조국을 떠나고 있었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5개월 동안 32만여 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다. 파월장병! 당시 나라 안의 관심과 화제, 이야깃거리의 더듬..

그런 친구 하나

그런 친구 하나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매년 누군가 2천만 원의 돈을 건네준다면 2퍼센트의 행복을 느끼고, 좋은 친구가 하나 생기면 15퍼센트의 행복을 느낀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리고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니까. 문득, 내게 15퍼센트의 행복을 안겨주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너는 15퍼센트의 행복을 안겨주는 아이라고, 그러자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한데 2천만 원을 주면 난 17프로나 행복해지는 거네?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한 사람이 주는 행복에 대한 퍼센트는 15퍼센트 이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