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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詩) / 김산

송담(松潭) 2023. 10. 6. 11:51

비 오는 날, 사랑의 시(詩)
 
 

 
김산 선생님을 만나 정원에 자연석을 배치한 후부터 비가 오면 비에 젖어 각자의 색을 드러내는 돌들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오늘도 우산을 쓰고 비에 젖은 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니 때마침 김산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정원의 돌들이 궁금한 것은 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정원에 있는 묵묵한 돌의 모습과 흡사한 김산 선생님께서 시 한 편을 보내왔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사랑의 시, 사랑의 철학을 배웁니다.
 

 
 
사랑 / 김산
 
사랑이란
서로의 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집으로 쌓았던 눈 높이의 벽
허물고 허무는 것
 
사랑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가까이 있는 것 처럼
마음의 눈은
한줄기 따뜻한 별이 되어
서로의 시린 가슴
살며서 감싸주는 것
 
사랑이란
받아서 채워지는 것도
주어서 비워지는 것도 아님
서로의 가슴에 오랜 익었던
진실 하나만을 믿고
의지 하는 것
 
사랑이란
꼭 푸른 잎만
사랑하는 것도 아님
때론
썩어가는 상처의 잎도
사랑해야 할 것
  
(2023.5.29)
 

 
< 시 감상 >
 
제1연 : 사랑이란/서로의 틀 만드는 것이 아니라/아집으로 쌓았던 눈 높이의 벽/허물고 허무는 것
 
사랑은 남과 남이 만나 서로의 아집과 편견을 깨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둘이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독립된 인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제2연 : 사랑이란/멀리 떨어져 있어도/늘 가까이 있는 것 처럼/마음의 눈은/한줄기 따뜻한 별이 되어/서로의 시린 가슴/살며서 감싸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늘 함께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사랑의 힘은 별처럼 빛나고 따뜻하게 서로를 비춰줍니다. 사랑이 성장하는 단계입니다.
 
제3연 : 사랑이란/받아서 채워지는 것도/주어서 비워지는 것도 아님/서로의 가슴에 오랜 익었던/진실 하나만을 믿고/의지 하는 것
 
사랑이 무르익고 성숙하면 받으려하지 않고 사랑에 목말라 하지 않습니다. 돌처럼 단단한 신뢰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4연 : 사랑이란/꼭 푸른 잎만/사랑하는 것도 아님/때론/썩어가는 상처의 잎도/사랑해야 할 것
 
생로병사의 과정은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렵고 힘들고 늙고 병들었을 때 곁에서 끝까지 지켜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완전한 마무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김산 선생님의 사랑의 시는 ‘이해와 배려’로 출발(起)하여 연민으로 이어(承)지고, 믿음과 신뢰로 사랑을 구축하여(轉) 마지막엔 사랑의 책무를 다 함으로써(結) 인간에의 길을 갈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 2 >
 
바보처럼 사는 것
 

 
우리는 언제 가수 김도향의 노래처럼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생각하게 될까요? 먼저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못한 사람들이나 경쟁에서 뒤쳐져 대기업에 가지 못했거나 자식을 의사 판검사로 만들지 못했거나 등등. 모두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자기비하의 볼멘소리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성공한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요? 성공한 사람들이 2%라면 98%는 모두 바보란 말인가요?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룬 성과입니다. 우리는 비교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습니다.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익 추구하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바로 그런 행위들이 세상을 망치는 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안 하는’ 것이다. 이런 ‘똑똑한 바보들’이 많아져야 세상을 구한다.” 하면서 지금 바보처럼 사는 사람을 ‘희망’이라 했습니다.
 
또한 김산 선생님은 세상이 자신을 바보라고 해도 함박웃음 지으며 스스로 바보처럼 살겠노라 노래했습니다. 바보처럼 사는 것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바보 / 김산

 

 
나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를 아는 이는 모두
나를 바보라 합니다.
 
그러면서
하.하.하 호.호.호
함박웃음 짓습니다.
 
그래서 나는 인생살이가
한번 살아 볼만하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미소 짓습니다.
 
바보같은 나도
고달픈 삶에게
웃음을 주니 말입니다.
 
바보같은 인생
누구 한사람 눈길과 관심 없어도
받아서 채워지는 삶보다
웃음을 주는 바보가 되렵니다.
 
(2023.7.7)
 
 

< 3 >
 
만족 / 김산

 
사람들은 어떤 것을 찾지만
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찾지요.
 
사람들은 밤 낮 없이 찾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알고 보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것을
무엇하러 시간을 다 허비하여
그렇게 찾아 헤매는지.
 
혹 이 세상을 다 얻었다 해도
그대 마음엔
만족은 있을 수 없지요.
 
만족은 얻어서 채워지는 것도
비워서 채워지는 것도 아니지요.
 
나의 만족은
만족 없는 만족이
만족인 줄 알고 살지요.
 
하루
밥 한 덩이 깍두기 다섯 알이면
이 세상 그 어떤 삶도 부럽지 않고
거기에 풋사과 하나 더 하면
그날은 그날은
봄바람에 내 맘 돛대 높이 올려
영혼까지 바닷물에 담그는.
 
 
< 시 감상 >
 
만족한다는 것 즉 안분지족(安分知足)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채우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만족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고 상대적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자신 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만족하고 살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논어 술이(述而)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하고,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라도, 낙역재기중의(樂亦在其中矣)라.
-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그것을 베고 살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이 말을 김산 선생님은 ‘밥 한 덩이 깍두기 다섯 알’ 거기에 ‘풋사과 하나’를 얹혀 무척이나 낭만스럽게 안분지족을 은유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봄바람에 돛단 배처럼 부드럽고 순한 삶이 될 것임도.
 
만족이라는 어려운 과제 앞에서 우리가 이것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만족할 줄 모르면 결국 화(禍)를 자초하게 되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살면 모든 것이 ‘감사’로 이어져 평화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하니 만족하는 삶이 설령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컬러풀하지 않고 흑백사진처럼 밋밋하다 할지라도 담백하고 순수하고 조용한 삶이 더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3.7.8)
 
 

< 4 >
 
 

장마철이라 계속 비가 옵니다. 오늘은 추억의 팝송 한 곡을 듣고 김산 선생님께 음악을 보냈습니다. 제가 가입된 단톡방이 몇 군데 있지만 왠지 이런 음악을 함께 공감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 보낸 편지>
 

 
미국 가수 코니 프란시스가 1965년에 발표한 <Wishing it was you>이라는 올드 팝송입니다.
가사내용은 무슨 사연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서 예식장에서 “예” 하고 혼인 서약은 하겠지만 마음속으론 그게 예전 애인이었으면 한다는 내용입니다. 가사 내용보다는 그냥 멜로디가 좋아서 오늘처럼 비오는 날 보냅니다.
  
내일 내가 교회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갈 때
난 미소로 내 아픈 마음을 감추려 할 거예요
그를 쳐다보며 “예” 하고 혼인 서약은 하겠지만
마음속으론 그게 당신이었으면 하고 있을 거예요
(이하 생략)  
 
< 김산 선생님의 답장 >
 
세상사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지요. 뜻대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기에 인생에게 애닮품과 그리움을 주셨나 봅니다. 세상사 애닮품과 그리움으로 푹 익다 보면 연한 진달래 꽃잎이 창가에 피어 있겠지요.
(wishing it was you) 라는 팝을 듣고
 
 

외길인생 / 김산

 
그대 마지막 눈물
뼈시린 가슴에 숨겨 두라구요.
그대 마디 마디 기억의 그리움들이
지친 몸 부림으로 다가와
세찬 비바람으로 흔들어 깨우는데
조각난 가슴에다 덮어 두라 하십니다.
 
모진 목숨
그대 없는 그리움에
눈물짓던
수많은 밤.별.들
이젠 버린받은 사나운 바람으로
허허벌판 쌩쌩 울음소리
덮어줄 밤별도 없습니다.
 
굴곡진 그늘아래
길 잃은 인생
언바람 지쳐 쓰러지고
그대 그리움이 묻지 말라해도
남아 있는 한줄기 추억
깨지고 부서진다 해도
그대를 끝없이 그리는
외길 인생으로 남으렵니다.
 
언 바람 덮어줄
가슴이 없다 해도.
 
< 시 감상 >
 
노래의 가사 내용보다는 가수의 음성과 멜로디가 시인으로 하여금 깊은 감수성에 빠지게 한 것 같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그리움은 한 사람의 인생길 내내 외길인생으로 남게 합니다. 뼈시린 눈물을 가슴에 묻고 애태운 밤과 별. 차가운 바람에 깨어지고 부서지는 추억이라 할지라도 외길 인생으로 남아 사랑을 지킵니다. 사랑의 영속성과 지고지순함을 보여준 시입니다.
 
작가 주창윤은 사랑의 영원성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두 사람만의 기억은 사랑을 장식하는 존재의 집이며 사랑의 건축물이다. 사랑의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내일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수는 기억이 과거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사랑의 기억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서 내일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주창윤 / ‘사랑이란 무엇인가’중에서-
 
김산 선생님 역시  '사나운 바람부는 허허벌판'에서도 '끝까지 그리는 외길인생'을 간다고 하니 사랑의 기억은 현재도 내일도 영원히 이어집니다. 시인에게 사랑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사는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속에 있습니다.
 
(2023.7.13)
 

< 5 >
 
런닝샤스 / 김산

 
구멍이 몇 개
숭숭 나 있는 렁닝샤스
빨래 줄에 걸려
봄바람에 춤춘다.
 
어떤 이가
런닝샤스를 보면서
하는 말
떨어질대로 떨어졌으니
버리라 말 하지만
난 차마 버릴 수 없다
 
꼭 아물지 않는
내 삶의 깊은 상처 같아
버리라 해도
마지막 당신의 손길이 담긴 런닝이기에
슬픔을 입고 그리움 품고 산다
 
헤어질대로 헤어진
떨어질대로 떨어진
옷이지만
나에겐 가장 소중한 옷이기에
 
헤어지고 떨어진 곳을
슬픔과 그리움으로 꿰매면 그만이지만
그대의 떨어진 눈은
무엇으로 꿰매야 할지
 
< 시 감상 >
 
구멍난 런닝샤스는 가난의 상징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과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잠을 잘 때도 옆에 두고 있어야 할 애절한 물건입니다.
슬픔과 그리움만으로도 꿰맬 수 없는 그대의 떨어진 눈은 무엇인가요.
아픔이 밀려오면 밀려오는대로 슬픔이 밀려오면 밀려오는대로 순리대로 받아 드리면서 살아간다는 시인의 고귀한 사랑은 지금 어디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가.
 

 

< 6 >

 

눈물 / 김산

 

눈물이 난다

까닭모를

눈물 눈물이

 

깊은 뜰 속에서

작은 햇살 한 조각 품에 안고

이렇게 퍼덕거리고 있는가?

 

산다는 것

부족한 것을 조금씩 메꿰가고

넘치는 것 나눔으로

삶의 균형을 바로 잡는데

 

난 파란하늘 한 조각에도 눈물이

빛바랜 음악 한 소절에도 눈물이

따뜻한 웃음 속에서도 눈물이

눈물 속에 서성이는

님의 모습 속에서도 눈물이

 

꽃보다

님의 그리움으로 핀 꽃 내음이 더 좋은

님의 따스한 마음 잊혀질까 두려워

오늘도 이렇게 눈물

눈물이

제 마음의 빈터를 채웁니다.

 

< 시 감상 >

 

우리는 언제 우는가. 눈물은 슬플 때만 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여리고 순한 사람은 슬픈 일이 아니어도 눈물을 흘린다. 높고 청량한 가을 하늘을 보거나, 달빛이 교교히 뜰에 내리거나, 차가운 겨울 새벽 찻잔 앞에 홀로 앉아 있을 때나, 하얀 눈송이가 소담스레 장독 위에 쌓이는 겨울밤에도 누군가는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찬란한 슬픔의 눈물이 아름다운 눈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요, 예술인인 김산선생님은 고된 육체노동을 하면서 수행으로 정진한다. 그가 흘린 눈물은 슬픔 너머에 있다. 자애와 사랑, 연민의 눈물이다. 오늘도 그는 달 밝은 가을밤의 심연에서 누군가를 위해 애잔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9.7)

 

< 7 >

 

홀로 / 김산

 

가장 고요 할 때

마음은 텅 빈 공간

 

홀로 있는 시간

조금 외롭지만

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묵상은

내 마음 깊은 곳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사랑의 종소리가 되고

두 줄기 흐르는 섬진강이 됩니다.

 

향기 없는 말보다는

향기로운 말로

이 가을 푸른미소처럼

아물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물들게 하소서.

 

홀로 있는 시간

나를 고독하게 만들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바로 보게 하고

깊숙한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양심의 소리

귀 기우리게 합니다.

 

세상에서 빛나는 것은

모두 홀로이듯

홀로 별빛되어

밤하늘 밝힙니다.

 

< 시 감상>

 

우리는 하루 중 어느 때쯤 홀로 있는가. 아직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이른 새벽인가. 아니면 이미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의 시간인가.

 

고요한 시간에 홀로 있으면 마음이 비워진다. 세상의 모든 잡다한 것을 잠재우는 텅 빈 마음의 시간, 시인의 가슴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사랑의 종소리가 울린다. 문득 고달픈 생의 한 켠에서 '푸른 미소'를 짓고 있는 어느 가련한 여인을 생각하며 연민한다.

 

홀로 있는 시간은 왠지 마음이 착해진다. 그래서 묵상하고 성찰하고 마침내 밤하늘의 별이되어 독야청청(獨也靑靑), 홀로 푸르고 푸르다.

 

(2023.9.9.)

 

< 8 >

 

미완성 / 김산

 

때 아닌 가을비가 세상의 탐욕에 찌든 인간에 대한 하늘의 슬픔인가?

비 젖은 오후, 나를 돌아본다.

똑똑하지도 진실하지도 못 하고 그냥 들에 피어난 이름없는 들꽃에 눈 맞추며 쌩글 미소짓는,

어느 야트막한 언덕에 앉아 박 터진 호박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

사람들의 모임보다 침묵을 더 좋아하고 외로움을 사랑하는 사람.

 

사는 동안 기쁘다고 기쁜 것도, 슬프다고 슬픈 것도 아니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에서 시작되고, 눈보라 속에서 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린다.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만 편지다. 하지만

미완성이기에 기대와 희망의 여백이 있는 것.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

 

< 시 감상 >

 

뒤로 묶은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넉넉한 이마를 가진 김산 선생님의 박꽃 미소는 순수함이 깃든 염화미소 같은 것. 노동으로 탄 구리빛 얼굴에 외로움이 물든 비오는 날의 오후.

 

삶은 기쁘다고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프다고 슬픈 것도 아닌 초월적 중용(中庸)은 그가 쌓은 내공의 산물이다. 그는 오늘도 미완성의 인생길에서 희망을 찾아 묵묵히 걸어간다.

 

어느 날 마당에 쌓인 수석들을  보고 ‘누가 몰래 가져가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제가 그 사람한테 전생(前生)에 빚진 것이 많았나 보다.’고 답한 김산 선생님. 마음도 염화미소.

(2023.9.22)

 

< 9 >

 

의도(意圖), 내 마음의 지도

 

 

자연은 스스로 삼라만상의 원칙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응하기에 자유롭다. 산이 사시사철 변화무쌍하면서도 언제나 늠름하고 매력적인 이유는 자신에게만 온전히 몰입하기 때문이다. 산은 때때로 찾아와 보금자리를 만드는 동물들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환영한다. 수많은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묵묵히 햇빛과 물을 제공한다. 인간들에게 등산을 허락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선물한다.

 

강은 언제나 유유자적하다.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산속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이 모여 자신이 가야할 장소를 향해 항상 흘러간다. 시냇물에게 커다란 바위는 방해꾼이 아니라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재촉하는 도우미다. 강물은 누가 막아서도 혹은 오물을 투척해도 정지하는 법이 없다. 강물은 자신이 가야할 목표점, 바다를 향해 정진할 뿐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도달해야할 목적지를 알고 있다. 매일 그곳에 가기 위한 최적의 길을 발굴해 묵묵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내딛는 한걸음이 모여 목적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저 높은 경지에서 관조해 발견하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활기차다.

 

그 여정은 깊은 묵상을 수련하는 자에게 수여되는 선물이다, 그는 그 길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가야할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지도가 의도(意圖)다. 의도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수행자의 내공이다. 평온한 사람은 마음속 깊이 은밀하게 의도한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생략...)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보니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돈과 재산을 증식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무시한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 중 시간을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긴다. 하루라는 시간을 장악하기 위한 사색, 그리고 사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나침판인 의도는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든다.

오늘은 나의 미래를 위한 절대적인 징검다리다. 오늘은 내가 간직한 의도를 펼칠 절호의 기회다. 의도란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들음으로써 생겨난다. 의도는 자신을 위한 구별된 시간과 장소에서 누리는 최선의 사치인 ‘고독’을 통해 숙성되는 내면의 소리다. 그 음성은 내가 오늘 반드시 행해야 할 임무를 알려준다. 그 음성은 컴컴한 바다 같은 하루를 항해하는 나에게 해도(海圖)를 제공한다.

나는 의도로 바다의 깊이, 해저의 지질을 감지할 뿐만 아니라 암초와 같은 장애물을 제거한다. 나는 오늘 어떤 임무를 행할 것인가? 오늘 하루를 항해할 나만의 의도를 나는 갖고 있는가?

배철현 / ‘정적’중에서

 

< 글 감상 >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뜻의 지도 한장 정도는 그려 놓고 살지요. 한 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삼라만상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무슨 뜻을 품고 지금껏 살아 왔는지 되돌아봅니다. 저는

20대 초반부터 세상이 참으로 낯설었고 늘 불청객처럼 살다보니 당연히 세상에 낙오가 아닌 어느 외딴 섬처럼 외톨이로 살게 되었습니다. 늘 일상이 혼자였고 고독이었습니다.

 

제 주변사람들은 앞 다투어 출세하여 승승장구 하는데 전 돈. 권력. 명예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보니 제 가족들이 저 보다 더 애를 태웠지요. 제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헌날 방구석에서 벽면만 바라보는 3년의 세월. 제 어머니께선 산속에 혼자 가서 약 먹고 죽으라고 할 정도로 저는 세상 속에 낙오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배철현선생의 말씀처럼 인생은 이 세상에 어떤 뜻으로 오게 되었나,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미로같은 마음지도의 터널을 뚫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였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중국을 걸쳐 티벳 인도 터키등 3년의 긴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서울로 와서 마로니공원에서 생활하게 되었지요. 낮이나 밤이나 관(棺)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낮에는 관을 세웠지요. 관을 세우다 보니 저도 하루 10간 정도 서있었고 밤에는 관 위에 앉아서 사람이 다 사라지면 관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였지요. 6개월 정도 하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제 어머니와 아내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더군요. 그때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지금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 하자”고 어머니와 아내가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니 제가 지은 업보이기에 제가 책임을 지는 것이 부자지간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서울에서 저는 책과 글, 그림 그리고 수석을 탐석 하다가 15년 전에 구례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살다살다 지금은 막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배철현선생의 글을 보니 지난 날 제 인생의 미로같은 마음지도를 다시 한 번 꺼내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2023.10.4.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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