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20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예수 오신 날입니다. 간밤 예수께서는 어디로 내리셨을까요. 그냥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내릴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늘에는 주술사들의 삿된 주문이 떠돌고, 땅에는 음모의 살기가 자욱합니다. 더욱이 거룩한 날에도 친위쿠데타를 옹호하는 무리가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들이 감히 십자가를 들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계엄령 선포가 하나님의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악을 쓰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을 선동하는 사탄을 향해 그저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십자가 군병’이 될 수 없건만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어쩌다 그리스도교가 아스팔트 위로 끌려나와 극우세력의 뒷배가 되었을까요. 이상한 것은 이런 포악한 행태를 다른 교회들(특히 대형교회)..

명칼럼, 정의 2024.12.25

탄핵 골든타임,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함

탄핵 골든타임,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함  자유를 내세웠지만 내심으론 독재자를 꿈꾸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다. 위대한 대한국민들이 저항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한 결실이다. 헌정의 중대 고비마다 민주화를 직접 쟁취해온 국민이 거둔 또 한 번의 승리다. 군과 경찰의 봉쇄시도에도 계엄해제의 고삐를 당겨 국민대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국회도 칭찬해야 마땅하다. 아직도 내란죄 피의자의 손을 놓지 못하고 내란 방조의 굴레를 자임하고 있는 국민의힘 다수 국회의원들을 제외하고. 이번 사태를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내란의 현실을 회피하면서 개헌론을 꺼내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내란혐의자들에 대한 조사와 책임추궁에 집중해야 할 중대한 ‘헌법의 순간’에 섣부른 개헌론은 경계해..

명칼럼, 정의 2024.12.20

‘우리’ 자신에게로

‘우리’ 자신에게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김덕영 감독의 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4·19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 교육에 헌신해서 국민을 자각하게 한 덕분에 가능했다.” 자기도취자들의 계보일까.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12월3일 이후 한 말 중에서 “(내가) 국회를 봉쇄하지 않아서 계엄 해제가 가능했다”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4·19도 계엄 해제도 자신들의 치적이라는 논리다. 세상 모든 힘이 자신에게만 있고, 따라서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러한 확신은 어떻게 해체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변화가 가능한가 아니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인간도 있는가라는 ‘교정학적(矯正學的)’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이후 12·12 담화문, 탄핵소추안..

명칼럼, 정의 2024.12.18

기민과 탄핵

기민과 탄핵   2016년부터 시작된 ‘촛불시위’에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다. 이듬해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촛불’은 전국 각지에서 장기간 대규모로 이루어진 자발적 힘이었다. 당시 ‘여론 주도층’은 이 집회의 동력과 원인에 대해 많은 토론과 분석을 시도했다. 구한말 만민공동회가 역사적 기원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1980년대 ‘변혁 이론’ 중 하나였던 제헌의회 그룹(CA)의 이론적 전제는, 일반 대중은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있으므로 해방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직업 혁명가의 지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대중 추수(追隨)주의였다. ‘촛불’은 이들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역사다. 8년 전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귀가하지 않고 콘서트를 즐..

명칼럼, 정의 2024.11.20

100세 시대, ‘생애주기’를 창안하라!

100세 시대, ‘생애주기’를 창안하라!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志于學), 서른에 자립하고(而立), 마흔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不惑). 오십에는 천명을 알고(知天命), 육십에는 귀가 순해지며(耳順), 칠십이 되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欲不踰矩). 주지하듯, 공자가 구현한 생애주기다. 그런가 하면, 이런 생애주기도 있다. 학습기(스승을 찾아 베다의 진리를 배우는 시기), 가주기(결혼과 직업을 통해 사회적 다르마(의무)를 실행하는 시기), 임서기(숲으로 가서 명상과 성찰에 들어가는 시기), 유랑기(천하를 유행하며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 이것은 아슈라마, 곧 인도의 힌두교가 제시하는 생애주기다. 공자와 힌두교 모두 BC 5세기 전후에 등장한 영적 비전이다. 동의보감..

명칼럼, 정의 2024.10.14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아름답고도 처연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레베카 홀 감독의 이다. ‘할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20년대 흑인 문화의 부흥기. 그러나 차별만은 여전히 엄혹하던 시절의 뉴욕. 백인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한 외모를 가진 두 흑인 여성의 다른 삶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관계의 빛과 그림자, 선망과 질투, 허위의식 같은 내밀하고 심층적인 서사에 인종과 계급, 젠더성 같은 무게 있는 주제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늘 정치·사회적 시선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다소 투박한 흑인 여성 클리셰에서 벗어나 섬세한 지성과 관능미를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파격 또한 신선하다. ‘패싱’의 일반적 정의는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신분이나 정체성을 속이고 구성원인 ..

명칼럼, 정의 2021.12.01

‘토지공개념의 추억’ 현실에서 되살리자

‘토지공개념의 추억’ 현실에서 되살리자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과 다름없다. 결국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일어난다.” 이 인용문은 1854년 인디언 추장 시애틀이 자신을 찾아온 미국정부 관리에게 한 연설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은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은 들소가 많은 목초지대 땅을 빼앗고 인디언을 살기 힘든 ‘보호구역’으로 몰아넣는 중이었다. 인디언의 먹을거리를 없애려고 들소도 멸..

명칼럼, 정의 2021.10.26

아아, 光州여!

아아, 光州여! 金 準 泰 아아, 光州여 무등산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靑春의 都市여 아아, 우리들의 都市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罪人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나는 또 당신의 全部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아아, 光州여 무등산이여 白衣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靑春의 都市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이 나라와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저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 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

명칼럼, 정의 2021.05.19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 김도향 가수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노래가 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그렇게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날마다 찰지게 살아도 모자란 시간, 표도 없이 듬성듬성 보냈으니, 바보는 바보다. 이 바보들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하나. “그동안 내가 진짜 바보처럼 살았더라고요. 친구 하나는 아파트 하나 잘 샀다가 3년 만에 1억원 넘게 벌었어요. 또 다른 이는 길도 없는 산을 사더니 몇 년 만에 수억 벌었대요. 친정아버지는 논밭에서 땀 흘려도 일 년에 천만원도 못 버는데 말이죠. 나 역시 바보처럼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몇 푼 저축 못해요. 빚만 안 져도 다행이지….” 둘. “평생..

명칼럼, 정의 2021.04.19

주거냐 혁명이냐

주거냐 혁명이냐 지난 2월3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국가별 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생산성이나 연구개발, 첨단기술 등을 따지는 모양인데 지난 9년 동안 일곱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를 ‘완전한 민주국가’의 그룹으로 발표하였다. 시민의 권리, 선거절차, 정부기능, 정치참여 등을 따져 전 세계 167개국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강조해 온 미국을 2등급인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매겼다니, 민주주의 성취를 위한 투쟁의 역사가 아직도 생생한 우리로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선진적이라고 하는 증표가 요즘 들어 속속 나..

명칼럼, 정의 2021.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