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23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한때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야 날개를 펴듯,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비밀을 먼저 손에 쥐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자신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천명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로, 다시는 군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문민통치의 시대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고 관치를 넘어 공정한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 선거 때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명칼럼, 정의 2024.04.28

그러나 문학은 기적적이다

그러나 문학은 기적적이다 나는 너다 44 황지우 1980년 5월 30일 오후 2시, 나는 청량리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았다. 그 문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에서 사람들은 나를 힐끗힐끗 쳐다만 보았다. 가련한지고. 서울이여. 너희가 바라보는 동안 너희는 돌이 되고 있다. 화강암으로 빚은 위성도시여. 바람으로 되리라. 너희가 보고만 있는 동안. 주주의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웁시다. 최후의 일인까지! 내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내 소리를 못 듣느냐? 아, 갔구나. 갔어. 석고로 된 너희 심장을 내 꺼내리라. 나에게 대들어라. 이 쇠사슬로 골통을 패주리라. 왜 내가 너희의 임종을 지켜야 하는지! 잘 가라. 잘 가라. 문이 닫히고 나는 칼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로 갔다. 파란 유황불의 화..

명칼럼, 정의 2022.11.28

6월이 다가 오고 있다

6월이 다가 오고 있다 지 교헌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한국전쟁 조형물. 사진출처 : 2010.6.20 경향신문 세상에는 슬픈 일도 많다. 그것은 나의 슬픔일 수도 있고 남의 슬픔일 수도 있다. 남의 슬픔도 내가 슬퍼하면 나의 슬픔이 될 수 있어서 굳이 남의 슬픔이라고 외면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정신적 고통이나 슬픔을 맞이하여도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듯하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쓰라린 고통이 없으면 슬픔을 모르고 지나기도 하고 어른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넘기고 만 것 같다. 다 같은 일이라도 정신적 고통이나 슬픈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충격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영국출신의 세계적 ..

명칼럼, 정의 2022.06.21

환상적인 작별

환상적인 작별 -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총리 - 독일은 6 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 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가 나라를 18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고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Angelika Merkel)이며 6 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 된다. 메르켈은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 일을 넘겼고 독일과 ..

명칼럼, 정의 2022.02.26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아름답고도 처연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레베카 홀 감독의 이다. ‘할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20년대 흑인 문화의 부흥기. 그러나 차별만은 여전히 엄혹하던 시절의 뉴욕. 백인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한 외모를 가진 두 흑인 여성의 다른 삶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관계의 빛과 그림자, 선망과 질투, 허위의식 같은 내밀하고 심층적인 서사에 인종과 계급, 젠더성 같은 무게 있는 주제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늘 정치·사회적 시선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다소 투박한 흑인 여성 클리셰에서 벗어나 섬세한 지성과 관능미를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파격 또한 신선하다. ‘패싱’의 일반적 정의는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신분이나 정체성을 속이고 구성원인 ..

명칼럼, 정의 2021.12.01

‘법조 공화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법조 공화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한국은 민관 합동으로 세운 ‘법조 공화국’이다. 고소·고발과 ‘정치의 사법화’가 왕성하게 일어나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나라가 아닌가. 법을 사랑하지 않으면 대통령 되기도 힘들다. 지난 6월 중앙일보는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의 상위권을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홍준표, 추미애, 최재형이 그러하며, 이외에도 정세균, 이광재, 원희룡, 황교안 등 죄다 법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대부분 법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이 16대 국회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 19대 42명, 20대 49명, 21대 46명 등 늘 전체 의원의 15~20%를 차지해왔다.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당들은 인재 ..

명칼럼, 정의 2021.11.17

‘토지공개념의 추억’ 현실에서 되살리자

‘토지공개념의 추억’ 현실에서 되살리자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과 다름없다. 결국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일어난다.” 이 인용문은 1854년 인디언 추장 시애틀이 자신을 찾아온 미국정부 관리에게 한 연설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은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은 들소가 많은 목초지대 땅을 빼앗고 인디언을 살기 힘든 ‘보호구역’으로 몰아넣는 중이었다. 인디언의 먹을거리를 없애려고 들소도 멸..

명칼럼, 정의 2021.10.26

제헌절(制憲節)을 맞이하며

제헌절(制憲節)을 맞이하며 지 교 헌 아직도 코로나19가 창궐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불안한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안정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기업인들은 기업인들대로,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고충을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고 있다. 이러한 불안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나도 휩쓸려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이다. 무심코 달력을 바라보니 7월 17일이 제헌절이다. 제헌절은 문자 그대로 헌법(憲法)을 제정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헌법은 광의로 해석하여 국가조직법이요 인권보장법이라고 볼 수도 있고, 협의로 해석하여 국가의 기본질서를 규정한 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근대적 입헌주의적 헌법은 국가권력의 조직과 제한에 관한 근본적 규범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명칼럼, 정의 2021.07.16

아아, 光州여!

아아, 光州여! 金 準 泰 아아, 光州여 무등산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靑春의 都市여 아아, 우리들의 都市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罪人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나는 또 당신의 全部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아아, 光州여 무등산이여 白衣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靑春의 都市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이 나라와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저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 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

명칼럼, 정의 2021.05.19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 김도향 가수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노래가 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그렇게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날마다 찰지게 살아도 모자란 시간, 표도 없이 듬성듬성 보냈으니, 바보는 바보다. 이 바보들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하나. “그동안 내가 진짜 바보처럼 살았더라고요. 친구 하나는 아파트 하나 잘 샀다가 3년 만에 1억원 넘게 벌었어요. 또 다른 이는 길도 없는 산을 사더니 몇 년 만에 수억 벌었대요. 친정아버지는 논밭에서 땀 흘려도 일 년에 천만원도 못 버는데 말이죠. 나 역시 바보처럼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몇 푼 저축 못해요. 빚만 안 져도 다행이지….” 둘. “평생..

명칼럼, 정의 202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