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28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생략...) 정당이 입법적 타협을 통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맡기면,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는 오히려 이념적 분열을 심화하고 사법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한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타협과 합의를 생명으로 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타협과 합의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심의의 본질은 훼손되고, 제도적 정당성은 약화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념적 분열을 고착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왜 우리 정치가 이렇게 망가졌는가? 누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초래했는가? 지금의 탄핵정국에서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정치적 악으로 단죄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였지만, 윤석열이 사라진다고 우리 정치가 좋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

명칼럼, 정의 2025.04.02

봄날의 봄볕

봄날의 봄볕   (...생략...) 봄이 오고 있다. 미세먼지로 탁한 봄 하늘을 눈곱 낀 듯 아스라한 시선으로 가만히 올려본다. 밝아진 햇빛이 겨울과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고재현 교수님의 책 에 따르면, 태양 깊은 안쪽에서 출발한 빛은 100만년의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태양 표면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빛은 빼꼼 고개를 내밀고, 곧 걸음을 재촉해 우주 공간을 빠르게 가로질러 지구의 대기를 통과한다. 전자기파인 빛은 내 얼굴에 닿아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흔쾌히 내놓고, 몸을 이루는 입자들의 마구잡이 열운동을 늘려 내 피부의 온도를 높인다. 바로 이때 빛이 볕이 된다. 보낸 것은 빛인데 닿고 보니 볕이 된 따사로운 봄볕에서, 빛이 볕이 된 100만년을 생각한다. 빛은 눈이 보고 볕은 몸이 본다..

명칼럼, 정의 2025.03.27

이 땅의 봄은 헌재에서 피어난다

이 땅의 봄은 헌재에서 피어난다하늘을 이고 있는 산들이 불타고 있다. 거대한 화염이 태양을 가렸고, 시뻘건 화마는 동물들 비명마저 삼켰다. 집채만 한 불더미가 날아다녔다. 천년 동안 기도가 끊이지 않았던 고찰도, 마을을 지키던 당산목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산청, 의성, 울산, 안동, 하동 지역을 굽어보던 산들은 영묘한 자태를 잃고 검은 숨을 내뱉고 있다. 저 숲들은 왜 우리 시대에 사라져야 하는가. 이리저리 불덩이를 던지는 바람은 무자비했다. 언론은 뜨거워진 바다에서 발생한 덥고 건조한 ‘마른바람’이 몰아쳤다고 한다. 마른바람! 비가 오지 않는 마른장마, 눈이 오지 않는 마른강치(강추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른바람이 이토록 무서운 줄은 몰랐다. 지금 남녘을 휩쓸고 있는 바람에 어떤 것이 들어 있길래 ..

명칼럼, 정의 2025.03.26

“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 연합뉴스  (...생략...) 유흥식 추기경이 지난 21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영상담화를 냈다. 12·3 내란 후 사제 등의 시위 참가와 성명은 있었지만, 종교 지도자로선 첫 공개 탄핵 목소리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 추기경은 “우리 안의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며 헌재의 조속한 선고를 요청했다. “사회 지도층이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한 그의 개탄은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는 말로 이어졌다. 이 말에서 단테의 에 나온 “선과 악이 싸울 때 중립을 지키는 자에겐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면 과한 유추일까. 그렇..

명칼럼, 정의 2025.03.24

봇도랑에 물이 차면

봇도랑에 물이 차면  어둡고 으스스하다. 춘분 절기에 접어들었지만 냉기가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습관적으로 뉴스에 눈길이 간다. 뭔가 새로운 소식이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탄식과 울분에 찬 언어가 난무한다. 진영을 막론하고 희망 섞인 예측을 쏟아내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날 선 감정들이 부딪치며 내는 굉음에 귀가 먹먹하다. 광장을 지날 때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날 선 언어에 저절로 낯이 찌푸려진다. 증오와 선동, 냉소와 저주의 언어를 들을 때마다 채찍에 맞은 듯 가슴이 아리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심연이 입을 벌려 우리를 삼키려 한다. 그 심연의 이름은 적대감과 분열이다. 아름다움, 사랑, 자유, 진리, 가족 등 ..

명칼럼, 정의 2025.03.21

하느님 보우하사, 저 법비들을 벌하소서

하느님 보우하사, 저 법비들을 벌하소서 (...생략...) “법비(法匪)는 불리하다 싶으면 순간 법추(法鰍)가 된다.” 2016년 12월 당시 조국(서울대 교수)이 종적 감춘 우병우(민정수석)를 쏘아붙인 말이다. 법비는 법을 악용하는 도적, 법추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법기술자를 뜻한다. 중국말 법비는 1990년대 이 땅에 등장했다. 해방정국 경찰, 박정희·전두환 시대 중정(안기부)·방첩사(보안사) 지나 사정권력을 검찰이 쥐었을 때다. 민주화 산물이자 수혜자, 그 검찰에서 내란 수괴가 나왔다. (...생략...) 농반진반으로, 범털·잡범들이 말하는 ‘3계’가 있다. ‘1도 2부 3백’, 도망가고 부인하고 뒷배 찾으란 말이다. 윤석열도 그랬다. 차벽·인간벽 세워 체포를 피했고, 다 아니라 했다. 그 뒷배..

명칼럼, 정의 2025.03.19

한국 사회에 내전은 없다

한국 사회에 내전은 없다 (...생략...) 한때 술 취한 운전자가 광란의 질주를 했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중앙의 가드레일이 무너진 것은 아니어서 절망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법 기술자를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자 법관마저 흔들리고 그 뒤를 검찰이 순순히 따라간 것은 충격이었다. 검찰의 배후에는 아직 용산에 살아 있는 내란의 잔존 세력이 사법 카르텔을 동원해 내란의 연장을 도모한다는 합리적 의심도 배제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풀려난 내란의 우두머리가 무슨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내전의 위험 구간에 진입했느냐에 대해 나는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30%대 이상의 두꺼운 중도층이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이..

명칼럼, 정의 2025.03.14

왜 진보는 대기업 정규직만 챙기는가

왜 진보는 대기업 정규직만 챙기는가  (...생략...) 2011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슬로건은 “1% 대 99% 사회” “우리는 99%다” “탐욕스러운 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등이었다. 이 시위는 전 세계로 번져 나갔고, 한국에서도 “1%에 맞서는 99% 분노” “1%에게 세금을, 99%에게 복지를” 등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 시위가 벌어졌다.그런데 과연 ‘1% 대 99% 사회’라는 프레임은 옳은가? ‘1% 대 99% 사회’ 프레임의 폐해 영국 출신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리브스의 는 이 프레임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리브스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 3분의 1 이상이 연 소득 10만달러가 넘었다는 점, 그리고 2015년 1월 말 오바마 행..

명칼럼, 정의 2025.03.12

김삼웅의 붓칼

김삼웅의 붓칼  김삼웅 선생이 생애 처음으로 소설책을 펴냈다. 바로 이다. 선생은 평전작가이며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소설 한 편 쓰는 것은 오래된 소망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단재 신채호이다. 어떤 허구도 경계하며 이미 을 출간했지만 다시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단재에게 날아갔다. 김삼웅은 단재를 늦게 알아서 죄송하고, 그래도 알게 되어 행복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신채호는 지식인과 언론인의 전범이고, 학자의 전형이었다. 양명학과 노장사상까지 사설(邪說)이라 내치며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유생들이 막상 나라가 망하자 일제의 은사금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섰다. 저명한 선비들이 공맹의 가르침을 일제에 바치고 일신의 영화를 챙겼다. 무려 700명이 넘었다. 하지만 단재는 엄동에 홀로 푸른 송백이었다. 김삼웅은..

명칼럼, 정의 2025.02.26

집단 망상의 광기서 깨어나라

집단 망상의 광기서 깨어나라  신라의 원효 스님이 을 해석할 때 이런 비유를 들었다. 어느 날 환술사가 뛰어난 환술로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환술로 만든 호랑이가 너무나도 생생해 그는 환술 호랑이를 실물이라고 믿게 되었고, 마침내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 인간의 망상을 경계하는 이 비유는 지금 우리 시대의 교묘한 거짓 선동과 그에 사로잡힌 극단적 확증편향을 떠올리게 한다.  (...생략...) 우리는 동일한 시공간에 비슷한 모습으로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저마다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 심리학에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물을 다르게 본다는 뜻이다. 인간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보고, 천상의 신들은 맑은 수정으로 본다. ..

명칼럼, 정의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