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66

유현준 / ‘인문건축기행’(을류문화사)중에서

유현준 / ‘인문건축기행’(을류문화사)중에서 하이테크 건축 ‘퐁피두 센터’ 디자인을 처음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나도 학창시절 이 건물을 보고, 짓다 만 창고 같은 이 건축물을 왜 그렇게 칭찬하는지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축물의 외관은 우리가 흔히 공사 현장에서 보는 쇠 파이프로 만들어진 건설 보조 설비들처럼 보인다. 그뿐 아니라 한쪽에는 각종 설비 파이프라인들이 노출되어 있다. 마치 피부가 벗겨진 채 내부의 근육과 핏줄과 뼈가 다 노출된 인체 해부 모형 같은 건축물이다. 이렇게 건축물의 구조체와 기계 설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스타일을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한다. 철골 구조체가 그대로 드러난 ‘에펠탑’도 큰 의미에서는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리에 ‘에펠탑’이..

안도 다다오

아주마 하우스 1976년 권투 선수 출신 건축가가 자연을 대하는 방법 안도 다다오 권투 선수 출신 건축가 일본 오사카 출신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일반 건축가들과는 다른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일단 그는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프로 권투 선수 생활을 했다. 안도는 고등학교때 프로 권투 선수를 꿈꾸면서 연습했고, 태국 방콕 해외 원정 경기를 갈 정도의 열정을 보였지만, 얼마 후 당시 동양 챔피언 선수의 실력을 곁에서 지켜본 후 엄청난 신체적 재능 차이를 느끼고 권수 선수를 그만두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는 것을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후 실업자로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이 안도에게 인테리어 일을 하나 맡기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건축에 ..

알베르토 자코메티(조각가, 1901~1966)

걷고, 걷고, 또 걷는 인간들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가, 1901~1966) ‘고도’와 ‘걷는 사람’ 사뮈엘 베케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3)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삶의 수수께끼를 모두 풀었다”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작품엔 남자 두 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앙상한 나무 곁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두 남자는 나사 몇 개가 빠진 기계처럼 어수룩하다. 어제 있었던 일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둘의 대화는 대부분 동문서답이다. 하고 싶은 말만 내뱉을 뿐이다. 고도를 기다리다 무료해진 그들은 죽고자 결심한다.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는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는 이런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고도가 ..

유한계급론의 살아 있는 증거, 베르사유 궁전

유한계급론의 살아 있는 증거, 베르사유 궁전 앙리 4세가 문을 연 부르봉 왕가의 권력 중심지는 루브르 궁전이었는데, 루이 14세가 1682년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사를 했다. 파리를 버린 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을 파리의 정치적 공간으로 포섭한 것이다. 루이 14세가 혼자 힘으로 궁전을 지은 것은 아니다. 안정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고 왕권을 크게 강화했던 할아버지 앙리 4세와 아버지 루이 13세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크고 값비싼 궁전은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이 보여주는 유한계급의 문화양식은 루이 14세 개인이 아니라 부르봉 왕가 전체가 창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통치했던 앙리 4세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성격이 밝고 매사에 긍정적..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예술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예술 “시간 앞에 서글프지 않은 것은 없다.” 사진작가 강운구 선생의 명언이다. 시간을 묻힌 모든 것은 아름답다. 시간은 기억이며 잡을 수 없는 환영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늙는다. 잔인한 시간은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한때 벌어진 일들은 시간과 싸우지 못 한다. 일일이 혼적을 남기기엔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간다. 강운구 선생의 사진을 보면 그가 무엇을 찍고자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는 평생 서글픈 대상을 항해 카메라를 겨웠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을 이 땅의 풍경을 담았다. 대단할 것도 그렇다고 폄하할 것도 없는 이 나라 백성들과 마을은 사각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희미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렇게 남은 우리나라의 옛 시간은 애달픈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의 사..

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이중섭 (사진출처: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마치 살아있는 듯한 소를 어떻게 그렸을까. 또 무슨 생각으로 소라는 대상을 선정해서 그렸을까. 그리고 굵고 거친 터치로 그린 소의 그림에 마음이 뺏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중섭 화가의 많은 것이 수수께끼였다. 역사의 파도 위에서 뒤틀렸던 한 개인의 삶을 뒤늦게 돌아본다는 일은 슬프다. 이 세상에 던져진 메시지를 그때의 시간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몇 번을 방문했던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앞이었다. 흘러가버린 화가의 기억을 더듬는 늦겨울 오후는 빠르게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바다만 고요했다. 맑고 투명해서 더욱 처연하고 바람은 불어도 공기는 포근했다. 파도 소리와 함께 벼랑을 향해 아낌없이 쏟아지는 폭포의 고함이 엄청나고, 그..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인간에게 암흑은 평화보다 공포에 가깝다. 고립무원의 절망감이나 존재가 비존재 속으로 침몰하는 것 같은 느낌이 그렇다.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가상현실 미술관으로 들어서며 좁고 캄캄한 공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내리는 빛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발원지다. 손으로 푸르스름한 면을 만져 보았지만 텅 빈 공간이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안에 거대한 방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놀라움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강렬하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빛은 잠깐 사이에 나를 완전히 다른 사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간성은 이미 지워져 속세와 ..

공이 굴러간 곳에서 니체를 다시 만나다

공이 굴러간 곳에서 니체를 다시 만나다 그늘 속 어른과 빛 속의 어린아이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그림이 있다.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의 공, 사선으로 나뉜 구도를 따라 화폭에는 두 가지 세계가 펼쳐진다. 그림자의 세계와 빛의 세계, 정(靜)의 세계와 동(動)의 세계,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그림 안에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뒤로는 푸른색과 흰색의 긴 옷을 단정히 입은 여성들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팔락거리는 짧은 옷을 입은 한 소녀가 보인다. 어른들이 선 곳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이 어른들은 나무처럼 서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뒤쪽에 조그맣게 배치된 탓에 그 소리가 더더욱 들릴락 말락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와 대비되는 밝..

이진민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중에서

철학과 미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들이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고? 미술은 언어 예술이 아닌 시각 예술이라서 우리에게 '생각' 보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미술을 볼 때 생각에 잠깁니다. 작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제목을 보고, 작품을 다시 보고, 찬찬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작품을 눈에 담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서는 엄청난 이야기가 뻗어나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미술관에서 생각을 합니다. 철학자의 잠언을 곱씹으면서 생각에 잠기듯 미술가의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그림은 대체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좋은 생각의 도구가 됩니다. 그림 한 장으로 우리는 머릿속에..

마음

마음 사진 출처 : 월간조선 집이 없어도 지구는 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집을 통해 이 지구상에서의 존재 의미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걸 존재의 가치라고 부를 일이다. 지구는 여전히 무심하게 돌 것이다. 우리는 그 순환에 맞취 살고 있다. 어떤 여행이든 순례든 그 뒤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가장 긴 순례, 지구 위에서 생명체로서의 순례를 마치면 우리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간다. 지구는 돌고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그게 생명체에게 지정된 숙명이다. 사람이 집을 짓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집'이 담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집’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공간이다. 그 마음은 보이지도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