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211

유박(柳璞)과 화품(花品)

유박(柳璞)과 화품(花品)  어느 시대나 덕후는 있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것에 꽂혀 모든 걸 쏟아붓는 열정은 옛날이라고 다를 리 없다. 조선 후기 꽃에 꽂힌 덕후가 있었으니, 황해도 배천의 금곡 출신 유박이다.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 벼슬의 꿈을 버리고 서해 바닷가에 백화암이라는 정원을 짓고 평생을 살았다. 돈만 생기면 꽃에 몰빵하며 외국산 꽃도 마다하지 않았다. 채제공과 유득공 등 당대 문인들도 앞다투어 그의 화벽(花癖)에 관한 글을 남겼다. 당시에는 꽃의 모습과 생리, 운치와 상징성 등을 기준으로 꽃을 품평하는 것이 유행했다. 꽃에 관한 유박의 생각은 직접 집필한 (번역본은 정민 등이 옮김, 휴머니스트)에 실렸다. 맨 앞부분에는 꽃에 등수를 매겨 품평한 ‘화목구등품제’가 등장한다. 또한 22종의 꽃에 ..

‘진보의 경제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보의 경제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역전됐다. 경제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 둔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4%였다. 미국은 1.9%였다. 2023년 처음으로 역전됐다. 미국은 2.1%, 한국은 2.0%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수치다. 사람들은 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성장의 가치를 더 주목하게 된다. 성장은 고용과 직결되고, 고용은 소득과 직결된다.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성장률이 낮아지면 ‘내부 분배 투쟁’이 격화한다. 사회 갈등도 심해진다. 경제성장 그 자체가 중요한 이유다. 진보 쪽 일부에서는 ‘진보적’ 경제성장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넓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실험도 같은 맥락이었다. 예컨대, 문재인 ..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성향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성향  머리가 좋다고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고 공부 잘한다고 다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아주 탁월하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어느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야 그 정도의 학업성취를 이룰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타고난 지능이 곧 학업성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머리 좋은 학생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명문 대학교나 과학영재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평생 동안 ‘머리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사는 복을 누린다. 하지만 명문대를 나왔으나 그리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을 그동안 나는 많이 봐왔다.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는 일단 차치하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성품에 ..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

지교헌 / ‘진리의 주체는 인간이다’(교음사)중에서

공자도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나는 아는 것이 없다’(吾有知超乎酸아 無知也)고 말하고 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른다’ (知者不言 言者不知)고 하였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왜 ‘모른다’고 말하고 노자는 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을까? 사람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사물은 결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나 많다. 글은 사람의 말(言)을 다 나타내지 못하고 말은 사람의 뜻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뜻은 사물의 본질과 실체를 다 나타내지 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도 비슷한 경우라고 보인다. 성인들이 '모른다'고 말한 것은 음식물이나 약물과 같은 비근한 경우를 훨씬 초월하여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기본을 말한 것이지만 하학이상달(下學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램프 증후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램프 증후군 『천일야화』의 이야기 중 하나인 '알라딘과 요술 램프'에서, 주인공 알라딘이 곤경에 처했을 때 램프를 문지르면 요술 램프 속 요정 지니가 나타나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 램프 증후군은 이렇게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 소원을 비는 것처럼, 현대인이 수시로 무의식 속의 걱정거리를 끄집어내서 불안해하고 근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쓸데없는 걱정으로 치부하는 것들을 수시로 진지하게 걱정한다고 해서 '과잉근심 증후군'이라고도 하며, 뚜렷한 주제 없이 잔걱정이 가득한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범불안장애'로 분류되기도 한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 이상의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며, 그 자체는 지극히 정상이다. 많은 전문가는 ‘정보 과잉'이 현대인의 불안을 부추기는 주요 원..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1. 철학에 이르는 길이란 이론을 배우는 과정이아니라, 그 자신과 세계를 위대한 책으로 삼아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김종엽/‘철학특강’중에서 2. 좋은 수필을 쓰기란 싶지 않다. 시적 '서정성’과 소설적 '서사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며, 그 속에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수필의 가치와 힘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수필은 소설처럼 허구적으로 지어내거나 시처럼 축약해서 결정화한 게 아니다. 깊은 우물에서 건져낸 차가운 우물물 한 모금처럼, 오래도록 부엌의 한 구석애서 가족의 아침을 지켜온 이 빠진 막사발처럼, 그렇게 곰삭혀 나온 이야기를 담은 것이 수필이다. 3.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들처럼, 사람에게도 생계를 넘어선 다른 차원의 삶이 있어야 한다..

놀라운 뮤지컬, 해밀턴의 세계

놀라운 뮤지컬, 해밀턴의 세계 카리브해 섬 출신의 마이너리티 소년 이야기로 미국이 들썩거렸다. 건국 초기부터 평등과 자유를 기치로 내건 신생 아메리카에서 차별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다. 촘촘한 유럽 주류사회 이민자 사이의 엄연한 격차도 피부색부터 다른 소년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서인도제도 설탕 섬, 세인트 크루아 S. Croix 의 사생아라는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나 13살 때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그는 동네 유지들이 마련해준 노잣돈으로 뉴욕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공부보다 정치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해밀턴은 재학 중 아메리카 독립군에 입대해 미국을 위해 싸웠다. 이때 조지 워싱턴 장군을 만났다. 인생의 대반전이었다. 그의 부관으로 발탁되어 미국 독..

인간은 왜 개와의 평화협정 위반할까

인간은 왜 개와의 평화협정 위반할까 “개껍닥 갖다 고구마 줘라”라는 엉터리 말에도 나는 소쿠리를 들고 봉당 개밥그릇으로 향하곤 했다. 어릴 적 일이다. 두 귀가 늘어지고 반가우면 등 뒤로 말린 꼬리를 부산히 흔들며 다가서던 개와 나는 마당이 좁도록 뛰며 종일 함께 놀았다.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뜨면 종지에 약지와 중지를 넣고 개밥이 너무 차거나 뜨겁지 않은지 혹은 간이 맞는지 확인하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교 다녀온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그 황구를 마지막으로 지금껏 개와 다시 인연을 잇지 못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가축화되었다는 개의 숫자는 계속 늘어서 현재는 10억마리가 넘는다. 인구 1000명당 약 130마리에 해당하는 값이다. 개의 분포는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1.5도와 2.0도의 차이

1.5도와 2.0도의 차이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5도인데 조금씩 차이가 있다. 재는 방법이나 부위, 시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36.5도 위아래로 1도 범위 안에 있으면 정상으로 판단한다. 체온이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반면 평소 정상 체온만 유지해도 병에 걸릴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지구에 사람이 사는 것도 기온이 적당하기 때문인데, 조금만 더 따뜻하거나 추우면 생명체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 평균온도가 15도라고 보고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2011~2020년)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1850~1900년)에 비해 1.09도 상승했다. 이런 추세라면 20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