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10

레이차를 만들며

레이차를 만들며 아침마다 레이차擂茶를 한잔 마신다. 레이차는 풀을 갈아 마시는 차이다. 이렇게만 쓰면 자연으로 돌아가다 못해 아무 풀이나 뜯어먹는 지경에 이르렀나 싶겠지만 레이차는 중국의 오랜 전통이 축적된 세련된 음료이다. 자연친화적일 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기 시작한 첨단 유행식품이기도 하다. 레이차의 '레이'는 한자로는 갈 뢰擂를 쓰는데 손 수手옆에 천둥 뢰雷가 합쳐진 글자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천둥차밥thunder tea rice’ 으로 불린다. 찻물에 곡류를 넣어 한 끼 식사처럼 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통 녹차가 찻잎을 우려서 마시는 데 반해 레이차는 먹을 수 있는 온갖 풀과 나뭇잎으로 만든다. 녹차는 이뇨작용을 일으키기 때..

예(藝) 안에서 놀다

예(藝) 안에서 놀다 '유어예(遊於藝)'라는 말을 좋아한다. 놀기는 놀더라도 '예' 안에서 놀면 후유증이 적다. 그 예가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공간이 원림이라고 생각한다. 원림은 한자문화권의 상류층과 식자층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공간이다. 나는 원림을 좋아해서 시간만나면 중국의 졸정원(拙政園)을 비롯한 전통 정원들을 보러 다녔다. 특히 양주의 원림 중에서도 개원이 취향에 맞았다. 일본 교토의 정원만 해도 볼만한 곳이 금각사 정원을 비롯하여 20여 군데가 넘는다. 문제는 이러한정원(원림)들을 조성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가산가수(假山假水,인공으로 조성한 자연)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원림은 돈이 적게 들면서도 그 효과는 크게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연에 있는 진산진수(眞山眞..

윤보미나 / ‘차야 티클라스’를 읽고

윤보미나 / ‘차야 티클라스’를 읽고 성장 배경 윤보미나, 이름 잘 지었다. ‘봄이 오려나’고 생각하면 설렘이 있고, ‘봄이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온기가 돈다. 보미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과 함께 하고 있다. 특이 가족끼리 독서 토론을 하는 보기 드문 가족이다. - 집안에 목욕탕과 화장실이 있었고 자가용도 오토바이도 있었고 텔레비전, 전화와 전축도 있었고...그 시대에 책이 많은 것이 부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에 계신 엄마와 자식들이 Zoom을 통해 얼굴을 보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을 먹고 그 주의 책을 한 켠에 끼고 슬리퍼를 신고 서재로 가서 우리들은 태평양을 건너서 줌으로 독서모임을 한다. 아니 지적 수다를 떤..

걸명소(乞茗疏)

걸명소(乞茗疏) 차를 마시면 마음이 중정(中正)에 앉게 된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적당하고 곧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백(李白)은 "옥천사의 진(眞) 스님이 차를 마신 덕에 나이 여든에 이르렀지만 얼굴빛이 복숭아와 오얏꽃 같았다"고 했고, 장자(莊子)는 찻잎의 푸른 윤기를 빙설(氷雪)의 흰빛에 비유했으니 좋은 차는 마음의 중정에 도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몸의 맑음에도 도달하게 하는 효험이 족히 있을 것이다. 내가 마시는 차는 대개 구걸해서 얻은 것이다. 지방의 지인들이나 산사의 스님들로부터 얻은 것이다. 차를 구걸해서 얻는 것이 큰 허물은 아닐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백련사에 주석했던 혜장 선사에게 차를 구하는 글, ‘걸명소(乞茗疏)’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걸(乞)'은 구걸한다는 뜻이고,..

마더 앙뜨와네뜨

앙뜨와네뜨 Antoinette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 사실 이 말은 마리 앙뜨와네뜨가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단지 승자가 역사를 기록하는 관례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나온 수많은 루머들 중 하나이다. 베르사이유궁 옆에 킹스왕립농장에서 나는 7가지의 허브를 다즐링 홍차에 블랜딩해서 나온 럭셔리 한정판 홍차이다. 장미와 과일을 블랜딩한 홍차들이 코로나로 인해 약성을 지닌 허브로 대체되면서 나온 대표적인 차이다. 향수를 만드는 프랑스의 조향사들이 레시피를 만들어서인지 후각적으로도 힐링효과가 뛰어나고 맛도 효능도 탁월하다. 프로방스의 회오리 바람향기를 표현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호흡기에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허브들의 하모니가 강한 조화를 이루면서 붙여진 찬사이다...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이슬이 막 가시기 시작한 아침나절 구릉은 태양을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 초록의 이불 속으로 하늘의 빛이 타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 포개어진 틈새 옆으로 흘러내린 녹색 차밭이 사면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산줄기를 내려오는 이랑곡선은 부드럽게 계곡 아래로 이어졌다. 신의 선물로 알려진 항저우 롱징차(용정차) 벌판은 그렇게 시간의 커튼을 열어 주었다. 시후롱징(西湖龍井)은 중국 10대 명차 중에서도 으뜸이다. 치먼 홍차, 푸얼차, 모리화차 등을 제치고 언제나 최고를 차지해 왔다. 오월 하순의 차밭은 짙푸른 색으로 변해있었다. 청명 이전에 어린잎을 따내고 두어 번 더 수확한 뒤였다. 항저우 시내에서 30분 거리를 달려왔다. 롱징차는 겹겹이 둘러싸인 항저우의 산과 호수 비경 속에서..

초의(草衣)와 차

초의(草衣)와 차 차는 살아 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 그래서 찻잔 속의 자유는 오직 개인의 내면에만 살아 있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요한 소승의 자유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해석하거나 설명하거나 계통을 부여하려는 논리의 허세가 없다. 차는 책과 다르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과장하거나 증폭시키려는 마음의 충동이 없다. 차는 술과도 다르다. 책은 술과 벗을 부르지만 차는 벗을 부르지 않는다. 혼자서 마시는 차가 가장 고귀하고 여럿이 마시는 차는 귀하지 않다.(동다송) 함께 차를 마셔도 차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차에 관한 초의(草衣, 1786~1866)의 글들은 낙원이 없는 세상 속에 낙원을 세우기 위한 타협처럼 읽힌다. 그의 타협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지만..

전통 차 문화

전통 차 문화 조선 후기 차 문화를 보여주는 현재 심사정의 ‘송하음다’(松下飮茶·부분), 지본담채, 28.3×5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조선 후기 대표적 지식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유배 중이던 1805년 겨울, 혜장 스님(1772~1811)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차를 구걸하는 내용의 ‘걸명소’(乞茗疏)다. 다산은 “요즘 차에 빠져 있다”며 “목타게 바라는 내 뜻을 생각해 차를 보시하는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말한다. 전통차를 즐기는 다인(茶人)들과 차 연구자들 사이에 유명한 편지다. ‘걸명소’에서 다산은 “육우의 다경 세 편을 통달하고, 노동이 말한 일곱 잔의 차를 다 마시고 지낸다”고도 했다. ‘육우의 다경’은 당나라 문인 육우(733?~~804)의 저서 ‘다경’(茶經)이다. ..

차를 마심

啜茶 二首 (철다) (이수) 자는 禮伯(예백), 호는 日峯(일봉) 헌종 12년 丙年(1846.4.21.)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 출생(1914.1.23), 별세(69세) 노사 기정진 선생 문하, 성균관 장의, 유학자, 서예가,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외종 형 1895년 (고종 32년 乙未年) 啜茶 二首 지음 일봉유고 540首 한시를 남김 譯者小考(역자소고) 일봉유고 고시 540수 중 철다 이수는 한국의 ‘3다 경전’(다부, 다신전, 동다송)에 나타난 차의 정신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다부에 수록된 6덕(수수, 병이, 기청, 심일, 선, 예)이 시 내용에 잘 표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5자 각운(茶, 加, 家, 涯, 佳/차를 더하면 집안이 평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