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동다송(東茶頌)

송담(松潭) 2019. 12. 16. 18:05

 

동다송(東茶頌)

 

 

 우리시대 동다송 이미지 검색결과"

 

 

< 1 >

 

동다송(東茶頌)은 어떻게 저술되었을까

 

 

 동다송(東茶頌)은 초의선사(1786~1866)의 저술로, 한국 차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차에 대한 전문서이다. 해거도인 홍현주(1793-1865)가 차에 대한 의문, 다시 말해 차의 역사와 문화, 특성을 초의에게 물었기에 이 글이 나오게 되었다. 당시 해거도인의 이러한 요청을 초의에게 전달한 인물은 진도목사 변지화이다. 그는 초의가 저술한 이 글을 해거도인에게 전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837년 여름, 초의가 이 다서를 저술할 당시의 표제명은 <동다행(東茶行)>이었으나 변지화가 사람을 시켜 이 글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자와 탈자, 문헌상의 오류를 발견하여, 초의에게 다시 정정할 것을 요청한다. 이후 초의는 이 책의 표제명을 동다송(東茶頌)라 했다.

 

< 2 >

 

 대흥사 초의스님의 음다법은 대략 92에서 차를 달여 뜨겁게 마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후손 응송스님도 평소 "차는 찬데 뜨겁게 마셔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필자 역시 이 음다법에 근거하여 전승된 제다법의 연구에 매진했는데, 요즘에야 뜨겁게 차를 마시는 것이 옳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차의 활발한 기운은 뜨거운 음다법에서 드러난다. 노동(盧仝)<주필사맹간의기신차>에서 첫째 잔은 입술과 목을 적셔주고 둘째 잔은 고민을 씻어주고 셋째 잔은 문재(文才)를 일으켜 문자 오천 권을 이루고 넷째 잔은 가볍게 땀이 나 평생의 불편한 일이 다 모공으로 흩어진다. 다섯째 잔은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은 신선과 통하니 일곱 잔을 다 마시지 않아도 양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난다.”고 한 것은 차를 마신 후 일어난 신체의 현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차에는 진정 이런 묘미(妙味)가 있다. 그러나 이는 우연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의 투명한 정신, 그리고 정성만이 이룰 수 있는 세계이며 결국 인간이 차를 통해 이루어낸 조화이다.

 

< 3 >

 

 

 항간에서는 차를 만드는 법으로 구증구포(九蒸九?))를 말한다. 이는 귤산 이유원이 임하필기<호남사종>다산 징약용이 강진 보림사 죽전차를 얻어, 사중의 승려들에게 구중구포의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 것에서 연유되었다. 구증이라든가 구포에서 구()라는 의미 때문에 아홉 번을 찌고 말려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차가 접물성(接物性)이 강한 잎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미는 차의 본성을 지극한 곳까지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라 짐작된다.

 

본래 구()는 양수(陽數)의 극()이므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기점을 장악하라는 의미라면 구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를 차원 높게 이해한 것은 아닐까. 명차를 만드는 비법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일이며, 화력(火力)의 완급(緩急)을 어떻게 장악하는가에 달렸다.

 

< 4 >

 

추사의 편지 한 통

- 초의와의 우정은 편지보다 차를 통해 -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금강산에서 가져온 물을 얻었다. 투명한 물빛은 수정처럼 맑다. 주변의 산하가 오염되지 않은 듯, 자연이 품어낸 물맛 그대로다. 금강산이 주는 이미지와 함께 맑고 깨끗한 느낌, 첫눈에 명천(明泉)임을 알겠다. 다포를 다시 깔고 다관이며 찻잔을 준비했다. 마음도 차분해지고 주변도 덩달아 고요하다. 좋은 물을 얻었을 때 버릇처럼 해오던 일이다. 물을 보내준 이의 정성이나 금강산에서 예까지 온 물의 인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禮義)이다. 물이 끊는다. 일루(一縷) 이루(二縷) 김이 피어오르고, 이내 방울방울 구슬이 인다. 격랑이 인 듯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뒤, 사납게 소리를 내며 끊던 물도 점차 평정을 찾은 듯 잠잠하다. 이때가 차를 다루기 제일 적당한 온도, 대략 93이다. 금강산 물과 차가 어떤 조화를 이루어낼지 다소 긴장감이 돈다. 차를 호사(好事)로 다루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다. 차를 마신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럽던 차향이 숨을 쉴 때마다 들고 난다. 달달한 맛과 향, 상쾌한 느낌, 눈이며 머리까지 시원하다. 청향이란 이런 것인가. ! 물이 차의 몸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경지로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차의 덕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물, 옛 사람, 물 고르기 추상(秋霜)같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법제(法製)된 차를 다루어보면 원천이 가지고 있는 속내를 환하게 드리내는 통에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을 맛볼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청탁(淸濁)뿐만 아니라 원천(源泉)이 담고 있는 기질(氣質)까지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 엄정함이 유리처럼 투명하다.

 

 말년에 과천(果川) 계셨던 추사 선생이 집 주변의 샘물을 시험하셨다. 차에 대한 안목이 출중했던 그가 품천(品泉)에 대한 언급이 없을 리 있겠는가. 일찍이 추사 선생이 <태화쌍비각>에서 완원 선생에게 용단승설을 대접 받은 후 자신의 호를 승설도인이라 불렀던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추사께서 초의선사에게 관악산 물을 시험해 보자고 독촉했던 사실이 <완당선생전집> 여초의편에 들어있다.

 

 스님이 보낸 편지와 차도 받았습니다. 내가 사는 곳의 물맛은 관악산 줄기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두륜산의 물과 비교하여 어떤 것이 더 좋은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서너 가지의 공덕이 있는 듯합니다. 빨리 차와 물을 시험해 보았으면 합니다. 좋은 차는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쁜 인연입니다. 이는 차가 그런 것이지 편지가 그런 것이 아니니 차가 편지보다 나은 것인가?

 

 초의선사와 좋은 인연이 차 때문이지 편지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 추사 선생의 해학이 번뜩이는 대목이다. 붕우(朋友)의 사귐은 보인(輔仁)이 우선이건만 무변(無邊)의 허용, 속기(俗氣)없는 시원함, 스승을 삼아도 좋겠다.

 

 

< 5 >

 

 

 물을 끓일 때, 물이 생수인가 아니면 수돗물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끓이는 법이 다르다. 만약 갓 길어온 샘물이라면 물 꿇는 소리가 경쾌해진 후 삼십 초 정도를 더 끓인다. 만약 수돗물을 사용할 경우라면, 물이 꿇기 시작하면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놓고 끓이다가 격랑이 일고 소리가 기세등등해지면 뚜껑을 닫고 일 분여 남짓 더 끊인다. 이때 뚜껑을 열고 끓이는 것은 수돗물에서 나는 소독냄새를 날려 보내기 위함이요. 생수보다 끓이는 시간을 더 두는 것은 무거워진 물을 순숙(純熟)하기 위함이다. 경우에 따라서 생수라 할지라도 물의 경중에 따라 끓이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것은 물을 끓일 때 생겨나는 생기(生氣)의 다양한 변화 때문이다. 차를 정중(正中)하게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감지할 수 있다. 한편 차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활활(活活)한 차의 기()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채다(採茶) 시기의 중요성이나 제다(製茶)의 궁극적인 원리도 기()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차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 기에 대한 문제였다. 옛 사람들의 문헌에서 다구를 정갈히 다루는 이유나 품천(品泉)에 대한 논의도 결국 차의 기운을 잘 드러내기 위한 것이요, 탕변(湯辯)에 대한 수많은 언급도 차의 내밀(內密)한 기운을 드러낼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기 위함이었다. 차를 선 수행에 적극 응용했던 선사(禪師)들은 차의 활활한 기운을 수행에 이용했던 것이다.

 

< 6 >

 

 얼마 전 최한기(1803-1877)추측록<기열생풍>을 읽었다. 뜨거운 차를 따르면 잔의 표면이 용틀임하며 이는 것은 바로 차안의 기운이 움직여 바람을 일게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물리(物理)를 관찰하는 발상이 하도 기발하여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다.

 

 기운이 움직이면 바람이 인다. 기운이 움직이는 것은 땅이 열기를 뽑기 때문이다. 끓는 물이 찌꺼기를 가라앉히면 위 아래로 뒤섞인다. 뜨거운 바람을 따라 움직이다가 물이 식으면 열이 식어서 바람도 일지 않는다. 찌꺼기가 없어져 아래로 가라앉음이라. 그러므로 바람은 열기에서 생긴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차를 달여 잔에 부어 열기가 일어나는 자취를 가만히 살펴보면 종횡으로 무늬가 생긴다. 마치 바다 표면에 생기는 무늬를 보는 것과 같다. 차가 식으면 그 흔적도 점점 없어진다.

 

< 7 >

   

 햇차가 주는 경이로움이나 풋풋하고 싱그러운 차향을 맨 먼저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특권 중 하나다. 갓 만든 차는 겉멋이 든 소녀처럼 수줍은 듯하다. 하지만 차가 지닌 기미(氣味)와 열감(熱感)은 강개(慷慨)한 의사(義士)처럼 당당하다. 차를 달인다. 코끝을 감도는 순향(順香),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등으로 퍼지는 따뜻한 기운, 촉촉이 땀이 날 듯 이내 몸이 가뿐해진다.

 

 

< 8 >

 

 <동다기>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은 우리 차의 효능이 중국에서 나는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색··기운.맛이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다서>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뛰어나고, 몽산차는 약효가 뛰어나다. 우리 차는 아마도 두 가지를 겸했다. 만약 이찬황과 육우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내 말이 옮다고 여기리라."

 

 차를 마시면 늙음을 떨치고 아이로 돌아가는 신묘한 증험이 빠르니

 팔십에 얼굴빛이 붉은 복숭아꽃과 같음이라.

 나에게 있는 좋은 샘물, 수벽, 백수탕을 만들어

 어떻게 남산으로 가져가 해옹에게 올릴까.

 

 <만보전서>"차에는 진향, 난향, 청향과 순향이 있다. 걷과 속이 같은 것을 순향이라 하고, 설익거나 너무 익지 않은 것은 청향이요, 불기운이 고른 것은 난향이요, 곡우 전 신묘한 기운을 갖춘 것은 진향이니 이것을 차의 네 가지 향이다"라고 하느니라.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사오십리 퍼져 있다. 우리나라 차밭으로는 이보다 더 넓은 것이 없다. 화개동에 옥부대가 있는데, 옥부대 아래에 칠불선원이 있다. 이곳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항상 늦게 딴 큰 잎을 햇볕에 멀려 삭정이(말라죽은 가지) 나무로 불을 때서 나물죽처럼 끓인다. 차가 진하고 턱하며, 색이 붉다. 맛이 매우 쓰고 떫다. 다시 정확하게 말하면 천하의 좋은 차가 미숙한 솜씨로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차가 몸에 들어감에

 귀와 눈으로부터 온몸으로 퍼져서 막히고 답답한 것이 사라짐이라.

 더구나 너의 신령한 뿌리는 신선산에 의탁했으니

 신선처럼 맑은 차는 그 품격이 다름이라.

 

 

< 9 >

 

다신전은 어떻게 편찬되었을까

 

다신전(茶神傳)은 차의 이론서이다. 초의선사에 의해 편찬된 이 책은 조선 후기 차문화의 일단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쉽게도 이 다서는 한국 차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아니다. 명대 장원의 다록을 우리의 현실에 맞추어 재편집한 것이지만 초의 자신의 차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드러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초의는 그가 시대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차의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고, 그의 이러한 의지는 조선 후기 차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다. 따라서 그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는 후일 한국의 차문화를 재론할 수 있는 근거, 즉 방계 자료인 다신전동다송을 남겼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차 끓이는 법

 

 물이 잘 끓었는지를 살펴 바로 차를 달이기 시작한다. 먼저 조금 넉넉히 끓은 물을 다호에 부어 냉기를 없앤다. (다호에 부었던 물을) 따라버린 후, 차를 넣고 (차를 잔에) 따를 때에는 중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차를 너무 많이 넣으면 차맛이 쓰고 향이 드러나지 않고, 물이 (차의 양보다) 너무 많으면 차색과 기운이 엷어진다. 다시 다호를 쓴 뒤에는 맑은 물로 다호를 씻어 (다호를) 청결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다호를 관리) 하지 않으면 차향이 줄어든다. 다관을 너무 뜨겁게 하면 차의 향과 맛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호가 깨끗하여야 수성이 신령하게 드러난다.

 잠시 차와 물이 이울어져 (차가 적정하게 우러나기를) 기다린 연후에 거름망에 걸러 마신다. 차를 너무 빨리 따르지 않아야 한다. 마실 때에는 (차를 식혀)늦게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너무 빨리 (잔에) 따르면 차의 색향미가 드러나지 않고, 차를 식혀 천천히 마시면 묘한 차향이 먼저 사라진다.

 

 차의 색

 

 우린 차빛은 투명한 연두색을 띠는 것이 가장 좋다. 우려낸 차빛이 연한 연두색을 띠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누렇거나 검거나 붉거나 칙칙한 차색은 모두 좋은 차가 아니다. 맑은 구름처럼 투명한 차빛을 띠는 것이 가장 좋고, 녹색 차빛은 그 다음이며, 누런 차빛을 띠는 것은 하품의 차이다. 새로 길어온 맑고 신선한 물을 알맞은 불에 끓이는 것은 차를 달이는 오묘한 기술이다. 옥같이 맑고 투명한 차가 물에 드러난 것을 찻잔에 담았으니 절묘한 재주라 하겠다.

 

 박동춘 / ‘우리시대 동다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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