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차를 마심

송담(松潭) 2017. 4. 18. 17:43

 

啜茶 二首

(철다)  (이수)

 

 

 

 

 

< 일봉 이교문 선생 >

 

자는 禮伯(예백), 호는 日峯(일봉)

헌종 12丙年(1846.4.21.)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 출생(1914.1.23), 별세(69)

노사 기정진 선생 문하, 성균관 장의, 유학자, 서예가,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외종 형

1895(고종 32乙未年) 啜茶 二首 지음

일봉유고 540한시를 남김

 

 

譯者小考(역자소고)

 

일봉유고 고시 540수 중 철다 이수는 한국의 ‘3다 경전(다부, 다신전, 동다송)에 나타난 차의 정신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다부에 수록된 6(수수, 병이, 기청, 심일, , )이 시 내용에 잘 표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5자 각운(, , , , /차를 더하면 집안이 평생 아름답다.)이 조화롭고 절묘하게 칠다 1수와 2수에 압운되었음은 불후의 명작으로 영원무궁 절찬감동을 줄 것이다.

 

 

 

 

남강 정상현 선생님 내외(2017.4.18)

 

 

 

 

 

남강선생님, 그리고 다실(茶室)을 생각하며

 

 

 

 새벽안개가 녹차밭 골을 휘감다가 운무를 뿌리며 느릿느릿 형체를 잃어 가면, 마침내 도착한 햇살은 찻잎에 올려진 영롱한 물방울을 통과하며 풍요로운 녹색의 세상을 재촉한다. 굳이 회천 앞바다 해풍의 힘을 빌려 차밭의 공기를 불러드리지 않아도 쾌상리()엔 언제나 신선한 녹색바람이 흐른다.

 

 동네 한켠에 고즈넉이 자리한 선생님의 오래된 집과 단아하게 가꾸어진 정원은 한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알뜰하게 살아오신 사모님의 고운 모습과도 흡사하다. 선생님의 서재방 옆에 새로 앉힌 한옥 다실은 건축의 문외한이라도 한 마디 칭송이 가능하다. 천년의 향을 피어낼 장인(匠人)의 손으로 축조된 아담한 다실은 최상급 국산 목재를 사용해서인지 방안에 진한 솔향기가 가득하다. 얼마 전 다실에서 선생님 내외와 함께 다향을 음미한 적이 있는데 다실에 들어서기 전에 내가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들어가 지금 생각해 보니 큰 무례를 범한 것 같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육신의 허기가 아닌 정신의 사치를 위한 시간이고,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행위라고 했으며 건더기가 아닌 향기를 향유하는 일은 신들이 하는 식사법이라고 하는데 그 성역에 내가 세속의 찌꺼기와 악취를 품고 들어갔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남강선생님은 곱게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선생님의 은발은 자연의 순리를 고스란히 받아드리고 있지만, 건강하고 윤기 있는 피부는 선생님의 절제된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차는 물의 온도와 시간, 혀끝으로 감지해 낼 수 있는 부드러운 감촉의 정도, 코끝으로 느낄 수 있는 향기의 은밀함, 그리고 마시는 자의 정결한 마음의 자세까지 갖추어야 한다는데 다실에 정좌하신 선생님은 그런 모두를 갖추신 것 같아 존경스럽다.

 

 나도 남강선생님과 같이 찌꺼기는 남겨두고 향기만 담아내는 찻잔 안의 찻잎처럼, 그렇게 우려지고 걸러질 수 있다면 한 생이 덧없지만은 않을 것 같다.”  (최민자/‘손바닥 수필’P66~67)

 

< 2012. 5. 4 >

 

 

 * 차 관련 자료

 

- <삼국지>에도 효심 깊은 유비가 어머니를 위해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의 보석을 팔아 차를 샀다는 얘기가 나온다. 불가에서는 부처에게 차를 바치는 천수백년을 이어온 헌공다례가 있다. 명절 차례도 다례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 가마솥에 덖고, 옛 문헌대로 아홉 번 볶고 말리는 구증구포 방식으로 차를 만든다는 다인들도 있었다.

 - 좋은 차의 기준이란 것도 향, 맛 등 단계별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시기가 곡우 이전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정도였다. 2007년 농약 파동으로 그나마 불던 차 바람마저 사라져버린 듯하다.

 

- 차는 역사적으로 기호품이라기보다는 공양, 예법, 수행과 연관돼 있다. 신라 때 들어온 차는 주로 상류층이 즐겨 마셨다. 그러다 조선시대 들어 억불숭유 정책으로 차도 홀대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차는 더욱 뜸해졌고, 불가를 통해 맥이 이어져왔다.

 

- 19세기 차 문화가 부활했는데, <동다송> 등을 지은 초의선사는 차와 선은 같다는 다선일여를 설파했다.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 것보다 차를 달여 마시는 과정 자체를 불교의 수련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 한복 차림으로 의관 정제하고, 다구를 데우고, 찻물을 내리는 과정이 고지식하고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차가 곧 도()라는 행위(다도)라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차는 정신문화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최병준/ 경향신문 문화에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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