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송담(松潭) 2021. 11. 9. 14:13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사진출처 : 컨슈머타임스

 

 

이슬이 막 가시기 시작한 아침나절 구릉은 태양을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 초록의 이불 속으로 하늘의 빛이 타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 포개어진 틈새 옆으로 흘러내린 녹색 차밭이 사면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산줄기를 내려오는 이랑곡선은 부드럽게 계곡 아래로 이어졌다. 신의 선물로 알려진 항저우 롱징차(용정차) 벌판은 그렇게 시간의 커튼을 열어 주었다. 시후롱징(西湖龍井)은 중국 10대 명차 중에서도 으뜸이다. 치먼 홍차, 푸얼차, 모리화차 등을 제치고 언제나 최고를 차지해 왔다. 오월 하순의 차밭은 짙푸른 색으로 변해있었다. 청명 이전에 어린잎을 따내고 두어 번 더 수확한 뒤였다. 항저우 시내에서 30분 거리를 달려왔다. 롱징차는 겹겹이 둘러싸인 항저우의 산과 호수 비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후의 전설과 버무려져 2,000년의 오랜 스토리를 축적해왔다. 900만 인구의 항저우 시내에는 찻집이 8,000여 곳에 이른다. 아시아 최대의 사찰 영은사 숲길의 이끼 낀 기와집 허름한 문간에는 어김없이 찻집이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앉아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대숲 바람을 벗 삼아 마시는 한모금의 롱징차는 언어의 표현을 넘어서는 경지다.

 

초봄에 따낸 최상품 차는 황제의 입술을 적셨다. 시후나 롱징은 물과 관련이 깊다. 시후는 중국 역사의 미인 서시 시스西施에서 온 이름이고 롱징은 원래 롱홍에서 유래했다. 시후 서쪽의 옹자산 기슭 맑은 샘이 롱징龍井이다. 롱징 옆에 절을 짓고 차를 재배하는 스님을 따라 마시기 시작한 게 차의 시작이었다. 그 맛과 향기는 소문으로 중원까지 퍼지면서 차로 생계를 삼는 민초들이 생겨났다. 차밭은 청나라 강희제 때 드디어 공차(公茶)로 인증되었다. 그의 손자 건륭이 이곳을 시찰하면서 맛본 롱징 향취에 반해 벼슬을 내렸다. 18그루의 차나무에 벼슬을 내리고 25가구가 재배하게 했다. 황실에 보내는 로열 티를 계약재배했던 셈이다. 차밭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이 어차단지다. 물론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도 롱징 마니아였다. 차 박물관에는 장찌민의 현판글씨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 차 한잔은 온종일 힘이 넘치게 하고, 점심 차 한 잔은 일을 가뿐하게 해주며, 저녁 차 한잔은 인생의 피로를 쓸어내 준다”라는 중국속담에 그들의 용정차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여린 촉을 따내어 만들어진 차 한 잔에는 음양오행과 시간의 이상을 포용하는 동양의 깊은 사상이 함께 녹아있음을 느꼈다. 롱징차는 최상품 500그램 한 통에 20만 위안(약 3,600만 원)까지 거래된다. 차밭 비탈의 모든 새순을 따내 찌고 볶아 만든 인간 수공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2003년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에 롱징차 종자가 탑재되었다. 우주환경에서 유전자 변이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대륙 사람들은 하늘에서도 롱징차 재배를 원하는 것일까. 내가 중국어 초보이던 시절, 선생님의 엄격한 요구가 있었다. 중원의 역사에서 전해오는 7가지 생활용품 외우기, 장작,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 차가 그것이다. 굶어도 차는 마녀야 사는 게 중국인들이다. 아름다운 포시즌 호텔 호반에서 즐기는 롱징은 천상의 품격이다. 유리잔에 넣은 찻잎이 열수에 꽃이 피듯 찬란하게 펼쳐졌다가 가라앉는 형상을 감상하다가 잔을 들면 이때 혀끝에 와 닿는 롱징 한 모금은 가히 미학적 영역이다.

 

당나라 중엽 이륭상이 기른 제자 루우는 세계 최초로 차 문화집을 집대성하며 이러한 말을 담았다.

 

“차는 지상 최고의 청순을 상징한다. 차를 만들고 차를 달여 마시기까지 청결이라는 이름의 길을 단 한 치라도 벗어나선 안 된다. 기름기 있는 손이나 찻잔이 조금만 찻잎에 닿아도 지금까지의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차의 성인이 만든 다경(茶經)에는 인생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기품들이 고요하게 들어차 있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모든 허세와 사치스러운 유혹에서 벗어나 마음을 말끔하게 한 뒤에 가지는 행복한 의식이다.

 

루우는 그의 저서 『다경』에서

 

“차는 깊은 밤 산중의 한 칸 집에 앉아 샘물로 달인다. 불이 물을 데우기 시작하면 작은 천둥 같은 하늘의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찻잔에 차를 따른다. 부드럽게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둘레를 비춰주고 있다. 이러한 한동안의 기쁨은 도저히 속인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나는 작설차를 즐긴다. 하동에서 올라오는 새순이 그만이다. 참새 혀처럼 작고 어린잎을 따 모아 만든 것이니 그 미지의 맛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사회주의는 차, 자본주의는 커피로 대별되지만 우리의 차 문화 역시 전통이 깊다. 제주와 보성녹차 단지는 날로 번창하고 있다. 물질로 풍요로워진 오늘날, 정신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맑고 깨끗한 차 한 모금은 이승의 복잡함과 영혼의 가난함을 모두 씻어 주고도 남는다.

 

김경한 /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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