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걸명소(乞茗疏)

송담(松潭) 2022. 9. 27. 20:24

걸명소(乞茗疏)

 

 

 

 

 차를 마시면 마음이 중정(中正)에 앉게 된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적당하고 곧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백(李白)은 "옥천사의 진(眞) 스님이 차를 마신 덕에 나이 여든에 이르렀지만 얼굴빛이 복숭아와 오얏꽃 같았다"고 했고, 장자(莊子)는 찻잎의 푸른 윤기를 빙설(氷雪)의 흰빛에 비유했으니 좋은 차는 마음의 중정에 도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몸의 맑음에도 도달하게 하는 효험이 족히 있을 것이다.

 

 내가 마시는 차는 대개 구걸해서 얻은 것이다. 지방의 지인들이나 산사의 스님들로부터 얻은 것이다. 차를 구걸해서 얻는 것이 큰 허물은 아닐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백련사에 주석했던 혜장 선사에게 차를 구하는 글, ‘걸명소(乞茗疏)’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걸(乞)'은 구걸한다는 뜻이고, ‘명(茗)’은 차의 싹이라는 뜻이다. '걸명소'의 문장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아침 햇살이 펼쳐지고 일어날 때, 구름이 비 갠 하늘에 밝게 떠 있을 때, 낮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푸른 시냇물에 잠겨 있을 때는 차를 마시고 싶습니다. (…) 아껴왔던 차통 속의 차가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산에 땔나무를 하러 가지도 못하는 아픈 몸이어서 평소의 정분으로 차를 구걸하는 바입니다."

 

 다산은 차를 마시기 좋은 때를 말했지만, 차를 마실 때 만나면 좋은 세 가지의 수려함도 있다. 옛 사람들은 그것을 소나무숲 사이로 떠오르는 달빛,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 눈앞에 솟아오른 앞산 산봉우리라고 했다.

 

 차에 붙인 많은 이름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승설(勝雪)'이라는 이름이다. 이 말은 눈이 많은 혹독한 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발아한 찻잎을 비유한 것으로 추사 김정희의 호이기도 하다. 초의 선사가 홍현주라는 인물을 위해 썼다는 《동다송(東茶頌)》의 첫 장에서 초의 선사는 "좀촘한 찻잎은 싸락눈과 싸워 겨울 내내 푸른 잎이어라"라고 했으니 유사한 맥락에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싸락눈과 싸워 이긴 후에는 차의 향이 흩어지지 않고 더욱 진해진다 했으니, 고통을 빈번하게 만나는 인사(人事)의 경우에도 좋은 말씀으로 여겨 간절하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초의 선사는 차나무의 잎눈이 촉을 내밀며 뾰족이 올라오는 모습을 '신이(矧爾) '라는 말을 빌려 표현함으로써 차나무의 새잎이 잇몸을 하얗게 드러내고 웃는다고 했으니, 우리의 매일매일에도 이와 같은 '신이', 즉 환희가 많았으면 좋겠다.

 

문태준 /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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