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마더 앙뜨와네뜨

송담(松潭) 2021. 11. 22. 07:15

 

 

앙뜨와네뜨 Antoinette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 사실 이 말은 마리 앙뜨와네뜨가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단지 승자가 역사를 기록하는 관례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나온 수많은 루머들 중 하나이다.

 

베르사이유궁 옆에 킹스왕립농장에서 나는 7가지의 허브를 다즐링 홍차에 블랜딩해서 나온 럭셔리 한정판 홍차이다. 장미와 과일을 블랜딩한 홍차들이 코로나로 인해 약성을 지닌 허브로 대체되면서 나온 대표적인 차이다.

 

향수를 만드는 프랑스의 조향사들이 레시피를 만들어서인지 후각적으로도 힐링효과가 뛰어나고 맛도 효능도 탁월하다. 프로방스의 회오리 바람향기를 표현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호흡기에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허브들의 하모니가 강한 조화를 이루면서 붙여진 찬사이다.

 

삶을 지켜내고 싶은 민중들의 바람이 홍차 속 어느 향기에 배어있는 듯 간절한 느낌마져 든다. 슬픈 느낌이 공감을 끌어내기엔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인지 마시는 사람마다 차를 충분히 구할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당장 프로방스를 갈 계획이 없다면 이 한 잔의 홍차로 잠시 다녀올 수도 있다.

 

* 마리 앙뜨와네뜨

 

 

루이 16세에게 시위에 강경하게 대처하도록 해 프랑스 혁명과 왕정타도로 이어진 민중 소요사태를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1789년 혁명 세력의 인질로 잡혔다가 탈출을 시도했으나 도중에 잡혀 파리로 돌아왔다. 신성 로마제국 황제인 오빠에게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켜 자신을 살려달라고 편지를 보냈다가 발각되어 프랑스인의 분노를 샀다. 결국 왕정 타도 후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처형된 뒤 그해 10월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다음백과)

 

 

로즈포총 Rose pouchong

 

영국의 정원은 로얄정원과 서민정원으로 나눌수 있는데 서민정원의 대표적인 양식은 선큰가든이다. 실용성을 중시해서 1년초 중심으로 야생화와 허브를 심고 그것을 부엌의 식재료로 사용했다. 특히 영국의 국화인 장미는 향수의 재료나 약재로 씌였는데, 꽃들과 허브들을 바람이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경계석을 쌓고 그 안쪽의 움푹 패인 곳에 가든을 조성하는 선큰가든을 선호했다.

 

영국의 홍차들은 장미가향 홍차가 많다. 꽃의 향기가 너무 화려해서 차의 향기에 비해 블랜딩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왕왕 있는데, 본연의 향을 안으로 숨기고 은은하게 차의 향을 돋보이게 하는 장미홍차가 로즈포총이다.

 

중국 안후이성의 대표적 홍차인 황산모봉을 기문제다법을 만든 기문모봉에 장미꽃잎을 한 겹 두 겹 쌓아 자연스럽게 향이 배게 만든 정성스러운 차다. 기문모봉의 묵직함에 장미의 사랑스러운 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차를 다 마셨을 때 티팟에 남아있는 잔향이 매혹적이다.

눈을 감으면 장미가 만발한 오월의 정원에 앉아있는 것만 같다.

 

 

모르겐타우 Morgentau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차 한 잔에 정원을 담아낸다면 그것이 모르겐타우가 아닐까? 이국적인 차 틴을 열면 풀잎처럼 싱싱한 센차에 현란한 꽃잎들이 피어난다. 그곳에 물을 부으면 싱그런 초여름의 향기가 난다.

 

일본을 대표하는 녹차인 센차는 정원의 베이스가 되는 그린의 파릇함을 연상시킨다. 그 사이로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의 꽃잎들이 달콤한 향을 머금고 틈틈이 박혀있다. 기억하는 모든 여름꽃들이 그 찻잔 속에는 피어있다. 한 모금을 넘길 때마다 정원의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아침이슬이라는 뜻의 모르겐타우를 마시면서 막걸리집에서 취기가 동하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바락바락 불러댔던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생각났다. 그때는 매사에 열정은 있었으나 평화가 없었다. 저 넓은 광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들은 왜 그리 날이 서 있었는지...

 

그런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오늘의 이 아늑한 행복은, 그 시간들이라는 베이스에 최선, 도전, 무모, 패기, 좌절, 희망, 미래, 그래도 계속되는 꿈이라는 꽃잎들이 블랜딩되어 마침내 마주한 인생이라는 오후의 홍차이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불렀던 아침이슬을 늘 아침 한잔의 차로 마신다. 그러고 보니 소주한잔도 이슬이 아니었던가? 아침만 존재하는 세상에 오니 온통 이슬뿐이네. 우리엄마는 가끔은 소주 한잔도 힐링이 된다고 하셨다.

 

 

목책철관음 木柵鐵觀音

 

 

올봄은 어수선한 가운데 철관음 농사가 잘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 차품은 으뜸이다. 타이베이 목책에서 3대째 철관음을 만드는 차농이 제다한 차이다. 대를 물린다는 것이 좋은 이유는 마지막 한 잎까지도 노하우가 전해진다는 것이다.

 

건차에서는 오렌지 복숭아 리체의 향기와 홍배에서 오는 구수한 향이 섞여있다. 그것은 오묘하고도 고급차다. 잘 익은 물에서 갈빛이 도는 녹색의 용이 몸을 풀면서 순후하고 묵직한 향기와 함께 달끈함이 감도는 오렌지 빛 차가 우러나왔다. 목넘김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입안을 가득채운 과일향 사이로 유럽스타일의 블랜딩한 차에서는 감이 오지 않는 야생의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중국의 남방을 여행하면서 모양도 맛도 생경스러운 여러 가지의 과일을 보았다. 해바라기처럼 노란수박도 있었고 국화빵처럼 꽉 눌린 복숭아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말도 못하게 단향이 났었다.

 

목책철관음을 차분히 우려내어, 첨잔 때마다 더 진해지는 그 차를 마시다보면 강남시장의 과일을 한 바구니 먹은 느낌이 든다. 입안에 감도는 과일향은 한참동안 머무르면서 힐링이 된다. 그러니 가성비가 참 좋은 것이다. 우리엄마는 두 번째로 이 차가 좋다고 하셨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 Alecandra David Neel

 

 

지구별을 다 돌아본 나에게 아직 미지의 땅이 바로 티벳이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는 익숙하지만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00 여년 전 추운 어느 날, 백인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땅을 밟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마담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이다.

 

용기있는 모험과 도전으로 19세기 프랑스 최대의 탐험가로 꼽히며, 여행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여러권의 책들과 번역으로, 티벳학을 서구에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르종 드뇌르 훈장을 받은 선각자였다. 당시 티벳은 수백년 동안 외국인들의 접근을 허락지 않던 금단의 땅이었고 만년설의 험준한 산맥들로 둘러싸여있는 신비의 나라였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은 담대하고도 고달픈 탐험으로 일관된 수도자의 삶을 표현한 홍차이다. 기문홍차에 시나몬과 생강과 티벳의 여러가지 향신료를 넣고 고원의 꽃향기도 담았다. 그래서인지 이 차를 우려마시면, 거친 황야나 설산을 종일 헤매다가 어느 따스한 움막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 불을 쪼이는데 건네주는 한잔의 따스한 차같은 느낌이 든다. 생경스럽고 매운느낌까지 나는 향신료의 다양한 향은 삶의 번뇌를 의미하는 것도 같고 갑자기 오싹하게 추워져서 화가 날 것 같은 어느 날, 뜨겁게 마시기에 좋은 홍차이다. 그러면 이내 화가 풀리는 것 같다.

 

 

퍼스트 오브 메이 First of May

 

 

자연은 서두르지도 게으르지도 않는다. 오월이 오면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이 또한 풀이다. 보미나의 이른 아침 퍼스트 루틴 30분씩 텃밭에 풀 뽑기 (1주일째 지속ing~)

 

"그것 좀 뽑는다고 너른 밭에 표시나 나겠냐?" 만은 하는 마음이지만 한 바구씩을 채울 때마다 이 풀은 어디선가 분명 뽑힌 것이고 그만큼 밭의 한쪽들은 건강해지는 중이며 말도 못하게 솟구치는 자존감으로 기고만장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의 기운은 얼마나 소중한가?

 

‘나하나 외친다고 세상이 바뀌겠냐’만은 외치면서 나는 바뀐다는 거. 그 바뀐 나로 살아가는 나와 상관있는 세상은 적어도 말도 못하게 바뀐다는 거. 나는 일찍이 알아챘다.

 

아직은 풀을 이겨내는 오월의 텃밭은 어느 꽃밭보다 아름답다.

 

퍼스트오브메이'는 프로방스의 일 년 중 오월에 피어나는 여섯 가지의 꽃잎을 봄에 만든 전홍홍차와 블랜딩한 플레이버리 티이다. 달콤한 남프랑스의 꽃향과 운남전홍의 기품 있는 맛이 조화를 이루어 맑고 눈부신 오월의 환희를 홍차로 표현했다.

 

주로 축제나 기념할만한 날에 스페셜 티로 마시는 품위 있는 차이다. 우리들은 성모성월축일에 줌으로 로사리오기도를 함께 바치고 이 차를 마셨다.

 

윤보미나 / ‘마더 앙뜨와네뜨’중에서

 

 

언니야 화전놀이 가자

 

 

집주위 산기슭이 모두 쑥밭이다. 잠시 캐면 저녁밥상의 바지락 쑥국이 되고 허리가 아프게 캐면 두고두고 먹을 쑥차가 된다. 내친김에 쑥 인절미를 해 달라고 해서 조만간 작정을 하고 캐야겠다. 하루하루 햇볕 받고 이슬만 마셔도 눈에 보이게 쑥쑥 올라오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바빠지고 애가 툭 터진다. 여릴 때가 뭘 해도 맛있고 부드러우니까. 캐다보면 지는 해가 야속 할 때도 있다. 여우꼬리에서 꽤 길어졌는데도 말이다.

 

시간을 쪼개서 할 일이 태산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중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집과 가족들 그리고 함께 하는 다른 생명체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대책 없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죽을 만큼 바빠서 미쳐 생각도 못해봤던 하염없는 자연살이에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모르겠다. 단조로운 아파트에서 이런 시간들을 맞았다면 과연 어땠을까? 호미를 내려놓고서는 그려보곤 한다.

 

진달래를 뜯어서 화전을부치고 쑥을 캐서 국을 끓이고 머위를 뜯어서 쌈을 싸먹고 장끼와 까투리를 쫓는 달이를 토닥이고 아픈 별이와 종일을 함께하고 둘레길에 계단을 하나하나씩 만드는 일은 코로나 특수로 정신없이 많아진 시간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선암사에서 찻집을 할 때가 생각났다. 조계산에 겨울이 오면 온 산의 물이 다 얼어붙어서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게 꼬박 세 달이다.

 

여전히 하는 짓마다 하는 말마다 귄떼기다.

귄떼기 : 언니는 예전처럼 예쁘게 손 관리 좀 하지. 손톱 밑에 떼가 까마네. 부잣집 사모님이 손이 그게 뭐야?

손톱밑이까만 보미나 ; 늬는 손톱 밑에 떼만 아니까. 손톱 밑이 까마면 다 떼로 보이는 거야. 머위를 뜯어서 별이 아빠에게 보드랍게 먹이고 싶어서 껍질을 벗기면 이렇게 손끝에 머위물이드는데 당연히 그 위에 얹힌 손톱은 까매 보일 수가 있지. 더구나 늬는 마음도 까마니까. 그런데 이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슴푸레 자색 빛이 돌지 않니? 그건 머위물이란다. 알겠냐. 이 귄떼기야.

 

코로나특수로 쑥밭도 두릅나무도 머위 순들도 우리 집 새로운 마트로 런칭이 되었다. 새벽배송도 밤새배송도 다 필요 없고 별이 달이 산책시키면서 가서 뜯고 캐면 된다. 얼마나 싱싱하고 얼마나 향긋하고 얼마나 맛있는지.

 

별이 아빠가 집 뒷산으로 가는 나무계단을 하루에 10개씩 만들고서 내려오면서 산기슭에서 두릅을 한 움큼 따 왔다. 데쳐서 초장에 찍어 막걸리를 한 사발 걸치는데 그 옆에 복숭아꽃이 만발이다. 한 잎 한 잎이 맑은 봄 하늘에 날린다.

 

그러면 시가 절로 나온다.

 

桃花流水香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뾰루지를 부탁해

 

 

먹으면 찐다. 안 먹으면 빠진다. 아프면 나만 손해다. 늙으면 죽는다. 내가 생각하는 변치 않는 진리들인데, 여기에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난다가 따끈하게 업데이트되었다. 나에게도 사실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일찍 자는 것이 더 힘들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절 집살이를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시계를 돌렸을 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 큰스님은 이미 하루의 절반을 보내고 계실 때가 태반이었다.

 

“스님 저는 정말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요. 아침에는 일을 시키지 말아주세요. 저도 왜 일찍 일어나고 싶지 않겠어요.

큰스님은 "일찍 깨려면 일찍 자는 게 먼저” 라고 하셨고

"그것은 더 힘든 일이거든요. 자고 싶어도 그 시간엔 결코 절대로 왜 그러는지 잠이 안온다구요."

“그 시간에 하는 건 다 뻘짓이다. 해 뜰 때 눈떠서 일찍 일어나서 뭘 해야 온전한 짓을 하는 거여. 늬만 자고 있지 누가 시방까지 들들 자고 있냐!”

"에구에구 스님 제 친구들은 여태 다 안 일어났어요. 그중 제가 가장 빨리 일어난 거여요. 사바세계를 너무 모르시네요.”

“새벽에 3일만 일찍 깨봐라. 어두워지면 자고 싶은 생각이 안 나는가? 늬가 자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이미 아침이다. 그것은 몸에도 정신에도 좋을 게 없어”

"에구에구 또 잔소리 하시네. 차가 식습니다. 스님. 잠자는 양으로는 서로 비슷해요. 총량의 법칙에서는 저도 게으른 게 아니라고요."

 

그때는 정말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알았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긴 시간이 흐르고 나는 또 자라난 걸까? 이제야 아니 이제라도 다행히 그나마 운이 좋게도 그리 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댓발에 일어나는 게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는 기적이 빈번하다.

 

아주 이른 아침. 있는지도 몰랐던 시간들. 아득하게 어둠속에 머물렀던 그때. 박차고 일어나보니 무척 창조적이고 쓸모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어스름하게 동이 터 오는 참신한 세상의 주인이 되면서 나는 또 많은 것 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Early bird의 특혜는 상상 이상 이었다. 단순히 좋은 습관을 넘어서는 가슴 뛰는 목표가 생겼고 새록새록 아이디어가 생기면서, 진중하게 컨셉을 고민 중이다.

 

오늘 아침은 계획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이제 노고단을 다녀와서 10시가 못되어 자리에 눕고는 바로 잠들어 버린 탓이다. 별이 달이와 굿모닝을 하고는 들어왔더니 한 이불을 덮는 사람이 깨어 있다.

"어머, 나 때문에 깬 거야?” 했더니 눈도 못 뜨면서 엉덩이에 난 뾰루지를 하나 짜 주라 한다.

"아니 이 새벽에 웬 수술?" 하지만 그 까깝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잠시도 지체 할 수가 없는 일 아닌가.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짜야하는게 뾰루지인 것을.

 

수술조명을 밝히고 뾰족 핀과 소독약과 거즈 그리고 그리고 돋보기 (잠시 살짝 좌절......)

"돋보기 어디 있어? 그게 없으면 집도가 힘들지” "응 여기" "담부터는 돋보기까지가 수술준비야 준비해서 의사 불러 알았지?"

“자 까보세요. 힘 빼고 도대체 어디야? 이렇게 꾸쩍시러운데에 나서는 아유, 진짜 힘드네. 엉덩이 힘빼세요 환자분”

"힘뺐어 그거 다 둔근이야” "의사 앞에서 어디 근육타령이야 힘들어가서 뾰루지가 안 잡힌다고 힘빼세요”

"아야 찔렀어? 짰어?" "응 지금 피 빼고 있어요. 힘 빼라고요.” "진짜 아픈데 너무 시원하다.

절대 내가 짤 수 없는 곳 이어서는 휴우"

"네 환자분 깟던 거 덮으시고요. 소독은 심하게 해서 덧날일 절대 없고요. 댓발 응급실은 세배 요금입니다”

"의료보험 안 되나요? 너무 비싼데.”

“야매라서 보험적용 따위 없습니다. 카드는 당근 안 되고요”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 가지를 해 봤지만 처음 해 본 일인데 서로가 무척 뿌듯하고, 유익하다는 느낌이 마구 밀려온다. 얼마나 까깝했으면 네 시 반에 일어나서 짜 달라고ㅋㅋ 난 또 뾰루지 짜는 것은 열일 제치고 하고 싶은 너무 좋아하는 일이니까 랄라~

 

가뿐히 새벽수술을 잘 마치고, 난 이제 순천만정원 갈건데 핑크뮬리가 환상의 절정인데 “오늘은 자기도 함께 가을 속으로?” 했더니 숨도 안 쉬고 “이불속으로” 하면서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6시면 정원의 아침이 밝아온다. 단백질 쉐이크 한 잔 마시고 그 아침 속으로 핑크뮬리의 가을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작지만 풍경이 그럴싸한 창가

 

 

작지만 풍경이 그럴싸한 창가

그곳에 놓인 소담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편지를 보내고 싶다.

에밀리디킨슨의 시나 타샤튜더의 삽화는

모두 그런 아주 작은 책상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엄마도 딱 그만한 책상에 앉아 성경도 읽고 메모도 하고 수많은 자식들에게 카드를 보내신다. 자식이5명, 곁식구까지 10명, 손주가 12명, 강아지 손주가 2마리이니 카드를 챙겨서 보낼라치면 상당히 바쁘신데 별이 달이에게도 카드를 보내주시는 섬세한 외할머니이시다. 생일카드에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거기다가 간간히 입학 졸업까지 축하해 주시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각자 받는 우리들은 잊을만하면 한번이지만 엄마는 세계적으로 상당히 커다란 패밀리 네트워크를 가지고 계시니까 거의 할머니의 낙이자 job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엄마는 항상 내일 도시락 반찬으로 뭐가 좋은지를 물어 보셨다. 각자에게 물어보시고는 두 끼 분의 도시락을 국까지 담아서는 원하는 것을 싸 주셨다. 둘이 먹는 밥 세끼가 큰 고민 중의 하나인 요즘의 삶에서 그 옛날 도구도 시설도 마땅찮은 그 부엌에서 엄마가 하신 일들은 진정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여중을 다니고 언니가 여고를 다닐 때가 있었다. 학교는 나란히 있었고 교문은 따로 이었다. 엄마는 항상 따뜻한 국과 함께 오전 11시 반쯤 도시락을 여고 수위실에 두고 가셨다. 나의 임무는 여중에서 여고로 건너가서 온 동네가 시끄럽게 공부를 잘 하는 언니 도시락을 2층 교실에 다소곳이 배달하고, 내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일이었다. 이 시골에서 자식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일이 어찌 만만 했겠는가. 우리 엄마만의 근성과 사랑이 있었고, 그것은 여실히 전달이 되었다.

 

엄마는 공부하라고 한 번도 나에게는 닦달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자율을 존중하는 우리 엄마의 교육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자식 봐 가면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언니는 잠 온다고 한겨울에 방에 불도 안 때주고 낮에는 상추쌈을 먹어본 적이 없으며, 과외에 독선생에 많이 시달렸다고 했다. 나는 항상 뜨신 방에서 배 깔고 엎어져서 보고 싶은 책 다 보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고 텔레비전도 소년신문도 챙겨 가면서 봤었는데, 같은 집 무척 다른 삶이었구나. 하긴 서울대는 절제가 많을수록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건 맞으니까.

 

도시락을 갖다 주면서 오다가다 선생님들을 마주치면 꼭 “늬가 준희 동생이구나! 준희 동생" “동생도 똑똑하게 생겼네!” 그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사실 난 그만큼 똑똑하지도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똑똑한 언니 오빠에 항상 묻어서 다녔다. 둘 다 성모유치원에서 남초등학교로 엘리트코스를 밟으면서 졸업할 때면 교육감상은 기본 이었다. 언니나 동생들이 너무 똑똑해서 상대적으로 엄청 열등감을 느끼고 쫄 아서 살았다는 친구들을 왕왕 보는데 나는 한번도 언니 오빠 공부 잘 한다고 위축된 적이 없다. 되레 늘 자랑스러웠고 ‘그건 늬가 잘 하는 일이고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이 있겠지'가 나의 주관이었다.

 

언젠가 나는 언니에게 얘기했었다. "언니 늬가 공부를 잘 하는 건 여러 가지 중의 한 가지를 잘하는 거야. 그것이 모든 것을 다 잘 한다는 건 아니야. 네 방 청소도 내가 다 해주잖아. 나는 청소도 늬 보다 잘하고 수만 가지로 잘하는 것이 많은데 왜 다 늬만 똑똑하다고 하는지 쩝…”

 

언니는 성향상 그리 잘난 척은 안 했지만 시험을 봐서 자꾸 틀리고 많이 틀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하나도 안 틀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수학문제를 풀 때면 그것은 분명 신의 영역이었고 그때 언니는 신이었다. 우리언니는 평생 나의 친구이자 나의 백과사전이다. 네이버가 없던 시절 뭐든지 막히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즉시 명쾌한 답이 튀어 나온다. ‘역시 고수는 간결하고 신속해'

 

언젠가 큰스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내가 너무 잘난 척을 하면서 얘기 중에 “우리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죠” 했을 때 스님이 훅 치고 들어오셨다. "근데 보살님 유비쿼터스가 정확한 뜻이 뭐죠?" 순간 말이 막히면서 숨까지 막히는 거 같았다. "스님 잠시만요” 하고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바로 '전지전능' 이라고 대답 했다. 스님이 찾는 도중에 그 대답을 듣고는 "그분 도대체 누구예요? 너무 정확하셔서는"하셨다. 우리 언니의 매력은 테를 전혀 안내면서도 참 똑똑하다는 것이다.

 

빗소리가 듣기 좋다. 우리 집 커다란 창가로 수선화가 피어서 너무나 사랑스럽다. 매화보다 늘 먼저 피는 것 같다. 별이 옆에서 잠깐 졸다가 일어나니 촉촉하게 마당이 젖어 있다. 이런 날 엄마는 꼭 부침개를 부치고 수제비를 끓여서 우리를 부르셨다. 비만 오면 그 음식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두런두런 앉아서 언니랑 동생들이랑 먹었던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올해는 엄마 팔순이다. 모두 같이 모였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어서 잠잠해져야 한다.

 

 

 

그 많던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새들은 알고 있을 텐데

날갯짓을 멈추지 않아 물어보지도 못하고

 

순천만 습지공항에

이맘때면 겨울을 나려고

귀국하는 철새들이 많아서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하고 지들도 바쁜가 보다.

 

날아가면서 재잘대는 소리를 엿들으니

조류독감예방주사도 맞으러 가야 한다고

그래 까치야

예방과 면역이 최선이란다.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이 없이 높았고

메타세콰이어는 사하라사막의 낙타색으로

곱게 물들어가고

숲그늘 밑에서 얼른 피지 않아 애가 타 죽겠던 노란 소국들은

이제 송이마다.

거붓이 져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가는 길마다

내내 혼자서 걸었더니

이곳이 바로 여왕의 정원이구나!

 

시절은 우직하게 아름답지만

백성들 삶이 어려우니

저는 호젓하게 걷고 싶군요!

수행원 따위는 붙이지 마세요.

마차도 필요 없습니다.

두 다리가 나날이 건강해지고 있거든요.

 

요즘 어떻게 사세요?

여왕의 정원에 삽니다.

 

윤보미나 / ‘이 여백은 어디서 왔을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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