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에 관하여

윤보미나 / ‘차야 티클라스’를 읽고

송담(松潭) 2023. 8. 10. 14:00

윤보미나 / ‘차야 티클라스’를 읽고
 
 

 

< 1 >
 
성장 배경
 

 
윤보미나, 이름 잘 지었다. ‘봄이 오려나’고 생각하면 설렘이 있고, ‘봄이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온기가 돈다. 보미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과 함께 하고 있다. 특이 가족끼리 독서 토론을 하는 보기 드문 가족이다.
 
- 집안에 목욕탕과 화장실이 있었고 자가용도 오토바이도 있었고 텔레비전, 전화와 전축도 있었고...그 시대에 책이 많은 것이 부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에 계신 엄마와 자식들이 Zoom을 통해 얼굴을 보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을 먹고 그 주의 책을 한 켠에 끼고 슬리퍼를 신고 서재로 가서 우리들은 태평양을 건너서 줌으로 독서모임을 한다. 아니 지적 수다를 떤다. 다음 달은 대보름달이라고 얘길 해주는 훌쩍 뜬 기운 달을 쳐다보면서 책을 끼고 올라오는 오른팔 곁이 귀하다.
 
- 나에게 있는 좋은 습관 중의 하나가 늘 책을 옆에 두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어릴 적부터 지극히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리 집안의 환경이었다. 엄마도 언니도 오빠도 늘 우리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었다.
 
 

< 2 >

 

보미나의 돈에 대한 생각
 
 

보미나가 왜 부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부자들은 자린고비요 인색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싫어하고 오직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지리멸렬 하다’고 평가절하 했는데 이는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무능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한 편견임을 알았다. 돈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보미나의 소리를 들어보자.

 

- 죽을 때까지 돈 때문에 더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수익의 1프로를 기부하고 있으며 딱히 아픈 데가 없고 자기관리를 잘했다는 말을 들으며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관계적으로 비교적 무난하고 자존감은 항상 기준치를 유지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꿈같은 자유를 어느 날부터인가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이야기 했다.
 
-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돈을 경시하고 정말 좋아하면서도 ‘돈돈 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것이 미덕인줄 안다. 영리한 돈이 그렇게 자기를 대하는 사람을 좋아할까?
나는 한마디를 할 때도 어디선가 듣고 있을 돈의 심기를 헤아리려고 애썼다. 내가 돈을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했다. 돈만큼 좋은 게 어디 있고 돈 쓰는것 만큼 기분 좋은 게 어디 있으며 돈 버는 것만큼 모든 걸 다 걸고 하는 게 어디 있으며 돈이 될 거 같은 것만큼 흥미로운 게 어디 있을까? 그 마음은 나의 진심이었다.
 
- 누구나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돈 생각을 한다. 타이밍이 문제다. 내가 본 부자들은 늘 돈 생각을 했다. 이것은 돈이 될까? 투자를 해도 될까? 저곳은 장사가 될까? 이 메뉴는 많이 팔릴까? 그들은 항상 돈 생각을 했고 돈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돈을 쓸 때는 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값을 낼 때도 서로 지갑을 던졌다. 비싸냐 싸냐를 따지지 않았고 벤츠냐 아우디냐만을 고민했지 그 가격이 얼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 내가 본 가난한 사람들은 늘 돈 생각을 하는 것을 경멸했다. 그렇게 '돈돈 하지 말라'고 했다. 돈이 그리 중요하냐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그들은 평소에 전혀 안 하던 돈 생각을 막상 돈을 쓸 때는 심하게 했다. 인터넷은 더 쌀까. 이건 비싸서 못 사겠는데 옆집으로 가 보자. 담에 돈 생기면 사야겠다. 밥값을 낼 때면 서로 구두끈을 묶고 급한 통화는 그때 꼭 했다.
 
- 나는 일찍이 알아챘다. 부자들이 언제 돈 생각을 하는지를 그래서 나도 평소에 돈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고 습관을 들였고 실행했다. 돈을 쓸 때는 나에게 필요한지 예쁜지 행복한지만을 따졌다. 한 살이라도 어리고 예쁠 때 돈을 벌고 싶었다.
 
- 돈은 많을수록 좋고 쓰면 좋고 베풀면 더 좋았다. 벌릴 때는 그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그것은 자신이 인정받는 방법이기도 했다. 세상을 대할 때 뒷심이 되어주었고 든든한 자신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큰 자유를 주었다.
 
 

< 3 >
 
차의 명인(名人), 손색없는 문장가
 

 
선암사 선각당의 대표와 (사)한국전통차보존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선암사의 차를 알리고 보존하는데 앞장섰던 보미나의 수려한 문장은 ‘신(神)이 마시는 차’라는 아침이슬처럼 맑고 영롱하고 수려하다. 그래서 이제 보미나는 명실상부한 ‘작가(作家)’이다.
 
- 잘 익은 물에서 갈빛이 도는 녹색의 용이 몸을 풀면서 순후하고 묵직한 향기와 함께 달끈함이 감도는 오렌지 빛 차가 우러나왔다. 목넘김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입안을 가득채운 과일향 사이로 유럽스타일의 블랜딩한 차에서는 감이 오지 않는 야생의 바람소리가 들려온다.(목책철관음)
 
- 이 차를 우려마시면, 거친 황야나 설산을 종일 헤매다가 어느 따스한 움막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 불을 쪼이는데 건네주는 한잔의 따스한 차같은 느낌이 든다. 생경스럽고 매운 느낌까지 나는 향신료의 다양한 향은 삶의 번뇌를 의미하는 것도 같고.
갑자기 오싹하게 추워져서 화가 날 것 같은 어느 날, 뜨겁게 마시기에 좋은 홍차이다. 그러면 이내 화가 풀리는 것 같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
 
- 달콤한 남프랑스의 꽃향과 운남전홍의 기품있는 맛이 조화를 이루어 맑고 눈부신 오월의 환희를 홍차로 표현햇다.( 퍼스트 오브 메이)
 
- 오렌지 빛 탕색에 달달한 꽃향이 향기롭다. 묵직하고 품위 있는 쓴맛을 가졌지만 목넘김은 한없이 부드럽다. 벼르던 책을 마주하고 한잔을 우려내면 등 뒤로 차마 고도의 바람소리가 들린다.(운남전홍)
 

 
< 4 >
 
어린왕자와 함께 마시는 사막의 홍차
 

 
별이를 덜컥 입양하고, 날마다 자라나는 별이를 아파트에서는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큰 강아지와 가족이 된다는 것은, 강아지 집을 장만 하는 것 보다 우선 되어야하는 게 우리집을 먼저 사야 했습니다.
 
화수목 마을에 집을 보러왔을 때, 마을의 맨 꼭대기인 힐탑에 위치한 그 집은“강아지를 입양 한다면 절대 목줄을 묶어 키우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생각에 부합한 널찍하고도 아름다운 공간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하얀색의 앞쪽 벽에 어린왕자와 여우 그리고 별이를 그려 넣는 것 이었습니다.
 
산책하는 마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별이 아빠가 저 어린왕자를 닮았구만, 두상이 딱 저리 생갰드랑께"
“아따 그라믄 옆에 여우가 보미나 당가? 뽀짝 옆에 강아지는 그 송아지 만한 별이구만"
"보미나가 여우냐고? 아따 보미나는 백여시제 백여시 ㅋㅋ"
 
어린왕자와 여우가 함께 하는 티타임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마시는 망망한 오후의 홍차 왠지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 않나요?
 
 

< 5 >
 
유쾌한 보미나를 만나러 가는 날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보미나는 높이 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지구별을 돌고 돌았으니까. 예전에 젊은 여대생들의 로망인 슈튜어디스로 출발, 20대 후반 대한항공에서 퇴직한 후에도 남편과 손잡고 세계 30개국 이상을 여행하였고 지금도 틈만 나면 차 생산지 등을 답사하기 위해 하늘을 난다. 혹여 보미나 앞에서는 세계 문물과 문화를 함부로 논하지 말라. 고수 앞에서 번데기 주룸잡기다.
 
우리 동네 이웃 여섯 명이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점심식사를 하고 차야에 간다. 멤버는 노인회장(81세)과 나를 포함한 70대가 넷, 60대 중반이 1명이다. 자칭 ‘미곡마을 원로회의’모임인데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야로 가자고 하면 모두들 안색이 환해진다. 보미나 팬클럽 회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녀의 젊음을 흠모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홍차의 맛도 모르지만 유쾌한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은 소풍가는 날이다.
 
(2023.8.8. 입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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