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44

야래향(夜來香)

야래향(夜來香) 사진출처 : 크라우드픽 내가 야래향(夜來香: Telosma cordata)을 기르는지는 꽤 여러 해가 되는 것 같다. 공동주택단지 내에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야래향을 발견하여 가느다란 가지를 한 줄기 얻어다가 화분에 심어서 기른 것이다. 그런데 처음 몇 해 동안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여다보았지만그 후로 나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것은 야래향이 내가 기대한 만큼 탐스럽게 자라서 꽃을 피우지 않은 까닭이었다. 야래향은 가지가 너무 가늘고 연약해 보일뿐만 아니라 너무 길게 뻗어서 축축 늘어지는 모습이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비좁은 베란다에 여러 개의 화분을 늘어놓은 형편인지라 위로 향하여 꼿꼿하게 커 오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데 야래향은 나의 기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

청계산 수필 2022.11.03

지교헌 / ‘방황과 고뇌의 세월, 나의 참회록’(교음사)중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제일 불편한 것은 아무래도 신발이었던 것 같다. 운동화나 고무신은 너무나 귀하여 여름에는 '게타'를 신고 겨울에는 짚신을 신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름에 게타를 신고 다니노라면 발에 땀이 나서 미끄럽기도 하고 게다 끈이 끊어지면 갑자기 고치기도 힘들었고 게타가 반대편 발목에 있는 복사뼈(거골)를 때려서 진물이 흐르게 되고 이미 진물이 흐르는 곳을 다시 때리게 되면 얼마나 아픈지 자지러질 지경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겨울이 되어 눈이 쌓여도 게타를 신고 등교하는 수가 있었다. 짚신은 주로 겨울에 신지만, 진 데를 밟거나 눈이 내리면 물기가 스며들기 때문에 양말이나 버선이 젖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시골길 시오리라는 것이 실제로는 8km 이상이나 되는데 짚신은 아무리 조심해 신어..

청계산 수필 2022.10.28

사범학교 입학시험

사범학교 입학시험 사진출처 : 청주교육대학교(구글이미지) 나는 1947년 9월 3일, 6년제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형제들 중에서 처음으로 일류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온 집안의 경사이기도 하였다. 내가 사범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였을 때 어떤 사람은 '벼슬'하였다고 나를 칭찬해 주었다. 당시 내가 살던 새마을(화하리 신촌)은 방죽마을을 합하여 약 50호의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사범학교에 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범학교는 다른 중학교에 앞서 특차로 신입생 선발시험을 실시하였고 국민학교에서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이 아니면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마을에는 청주상업중학교와 농업중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청주사범학교에는 최재룡과 내가 처음으로 입학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략...

청계산 수필 2022.10.25

교수는 쩨쩨해

교수는 쩨쩨해 재경향우회가 발족되었으나 인원도 적은데다가 회칙도 정비되지 못하고 사업도 계획되지 못한 형편이다. 향우회의 목적은 고향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첫째요 향우끼리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둘째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와 있는 향우는 수백 명이나 된단다. 우선 160명에게 발기총회의 안내장을 발송하였으나 모인 것은 20명도 안 된다. 면장을 비롯하여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 재경향우들보다 많았기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까지 나오고 말았다. 출석한 사람들 중에는 사업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럭저럭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세 사람의 교수가 출석하였으나 마지못해 나온 눈치이고 직책도 서로 맡지 않으려 한다. 직책을 맡다 보면 고향을 돕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니 용기가 나..

청계산 수필 2022.10.20

100년 만의 물 폭탄

100년 만의 물 폭탄 지 교헌 며칠 동안이나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천둥도 벼락도 거의 없이 밤낮으로 퍼붓더니 이 곳 저 곳에 물난리가 났단다. 시골에서는 계곡에 물이 넘치고 토사가 밀려 내리면서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막히고 자동차가 떠내려가고 심지어는 사람이 실종되었는가 하면, 서울의 한 복판에도 물난리가 나서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건물에도 피해가 많고, 도로의 맨홀로 어린 남매가 빨려 들어가서 찾을 길이 없고, 반지하실(半地下室)에 사는 일가족이 익사하기도 하였단다. 또한 지하철이 운행되지 못하고 자동차가 다닐 수 없으니 일시적으로나마 교통지옥을 연출한 셈이다. 어떤 시장은 이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사업을 추진하였건만 후임시장은 전임시장의 추진사업을 내어던지고 예산을 다른 곳으로 돌려 커..

청계산 수필 2022.08.19

유통기한

유통기한 지교헌 벌써 10년은 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금주(禁酒)한 지가. 그런데 며칠 전에 경로당에서 마셔 본 막걸리는 너무나 맛이 좋았다. 김 선생이 가져와 회원들에게 권하던 그 막걸리 맛은 그야말로 천하진미이었다. 김 선생은 막걸리 병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주물럭거리기도 하면서 마개를 열지 않고 뜸을 드렸다. 병을 흔들었다가 갑자기 마개를 열면 술이 넘쳐 올라와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마개를 열고 종이컵에 따라주는 막걸리는 참으로 신기한 맛이 났다. 세상에 처음 보는 맛인 것 같았다. 나는 “세상에 이런 술도 있구나!”하는 감탄과 함께 웃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다. 김 선생은 또 한 잔의 막걸리를 나에게 권하였고 나는 사양하지 않고 또 한 잔을 슬며시 비워버렸다. 그리고 나는 술을 끊지 않았..

청계산 수필 2022.05.01

석곡란을 바라보며

석곡란을 바라보며 지 교헌 우리 집 베란다에는 20여개나 되는 화분들이 나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 가운데는 화분도 크고 화초도 큰 것들이 있으나 화분도 작고 화초도 작은 것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두 개의 아주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자라나는 무명초였다. 그것은 작년 6월에 아이들이 사들고 온 것인데 붉은 꽃송이가 빽빽한 것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모르는 사이에 꽃은 시들어버리고 이파리만 남은 것이 초라하기만 하였다. 나는 문득 두 개의 플라스틱 화분에서 화초를 뽑아 좀 더 크고 새하얀 자기화분으로 옮겨서 흙을 조금 넣고 물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펴보니 다닥다닥한 검붉은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검붉은 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녹색 이파리에 검붉은 꽃은 어..

청계산 수필 2022.03.31

봄을 맞이하며

봄을 맞이하며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나는 늘 난타나를 들여다 본다. 파란 녹색 이파리가 무성하고 샛노란 꽃이 피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문득 보면 한 송이처럼 보이지만 20~30개의 작은 꽃이 한데 모여 가장자리부터 차례로 안으로 들어가면서 핀다. 처음 난타나를 주워들고 올 때는 이름도 모르고 꽃도 몰랐다. 아파트의 울타리 옆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고 신기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름 모를 식물에 지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보게 된 낯선 식물이고 꽃이 피었던 것 같은 흔적이 있어서 가만히 주워들고 보니 누군가가 화분에서 뽑아서 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발코니로 가져와서 빈 화분에 심고 물을 주었더니 미처 한 달도 안 되어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한 마디에 두 봉오리씩 샛노랗게 꽃이 피..

청계산 수필 2022.03.03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 교 헌 사람들은 모이면 잡담을 나누기가 다반사이고 잡담이 벌어지면 남의 이야기에 대하여 반드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때는 식당에서 찬 물이 싫다고 더운 물을 찾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한다. “왜 더운 물을 찾지요? 찬 물이 시원하고 좋은데?” “우리 몸엔 더운 물이 좋거든요. 더운 물이 암세포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체내의 지방질도 녹여서 응고를 막아 주니까요.” “나는 육각수가 몸에 좋다고 들었는데 육각수는 찬물이거든요. 그리고 자기 생각이 항상 옳다는 독단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단 말이오.” “내 말을 꼬집고 비난하는 당신이 독단이지 내가 무슨 독단이란 말이오?” 더운 물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이 있는 것처럼 찬 물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도 ..

청계산 수필 2021.09.06

사설(師說)-한유(韓愈 )

사설(師說)-한유(韓愈 ) -한글 번역문- 옛날의 학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술업(術業)을 가르쳐주며 미혹됨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닐진대 누가 능히 미혹됨이 없겠는가. 미혹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미혹됨이 끝내 풀리지 않는 것이니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도를 들음도 나보다 앞섰다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고, 나보다 늦게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음이 또한 나보다 앞섰다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을지니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먼저고 나중임을 따지리오. 이런 까닭에 귀(貴)함도 천(賤)함도 없고 나이가 많고 적음도 없이 도가 있는 바가 스승이 있는 바이다. 아! 사도가 전해지지 않은 것이 오래이니..

청계산 수필 202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