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44

나의 무궁화

나의 무궁화 지교헌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로 나갔다가 무궁화가 두어 송이나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꽃송이는 손바닥처럼 넓은데다가 화심(花心)은 진홍 색깔이고 새하얀 꽃술이 의젓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늦여름 겨우 1년생밖에 되지 않는 어린 가지를 꺾어다 화분에 꽂아 놓은 것이 꽃을 피운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무궁화를 보면서 자랐고 백발이 된 오늘날에도 공동주택 주변에서 여러 가지 품종의 무궁화를 보면서 살고 있지만 그처럼 우아한 자태를 갖춘 무궁화는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근화향(槿花鄕)이니 근역(槿域)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일제 강점기에는 벚꽃[櫻花]이 나라꽃인 줄 ..

청계산 수필 2021.01.08

의식주(衣食住)와 현자(賢者)의 즐거움

의식주(衣食住)와 현자(賢者)의 즐거움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 지 교 헌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의식주(衣食住)라고 할 수 있다. 즉 옷(의류)과 음식과 주거라는 것인데 여기서 옷이라는 것은 사람의 몸을 보호해주고 보기 좋게 꾸며주기도 한다. 사람의 몸을 보호해준다는 것은 이를테면 차가운 비나 찬바람을 맞을 때 몸을 지켜주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외부로부터 오는 침해를 막아주기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람을 보기 좋게 꾸며 준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적(美的) 감각이나 가치 척도에 알맞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갖추는 복장과 남의 앞에 나타날 때의 복장과 특별한 행사를 치룰 때의 복장이 서로 다른 수가 많다. 의식주라는 것은 인간생활의..

청계산 수필 2021.01.08

타인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

타인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 지 교 헌 사람은 누구나 부모와 형제자매와 친인척과 이웃과 더불어 국가권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 나간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는 여러 가지 사랑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가르침을 받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엄격한 제재(制裁)나 억압이나 나아가서는 배척이나 침해를 받는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여실히 깨닫게 한다. 그런데 사회(社會; ‘society’ ‘community’)란 무엇인가. 사회는 흔히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유기적 집단’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유기적 집단 속에서 사는 것이며 아무리 1인가구를 유지하고 살고 있더라도 유기적 집..

청계산 수필 2020.11.25

맹교수의 사랑방 이야기

맹교수의 사랑방 이야기 오늘은 ‘계영배, 과유불급의 교훈’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내용을 보니 ‘계영배’는 ‘戒盈杯’였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 왜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해야 할까? 물도 한 잔 가득하면 좋고, 술도 한 잔 가득하면 좋고, 돈도 지갑에 가득하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계영배는 술을 가득 부으면 자동적으로 줄어들어서 알맞게 된다는 것이다. 계영배는 중국의 제나라 환공(桓公)이 항상 옆에 놓고 보면서 교훈을 받았는데 조선시대 도공(陶工) 유명옥은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고 나서 교만해진 나머지 방탕하여 재산을 모두 없애고 나서 다시 돌아와 만들었단다. 그래서 이 그릇은 사람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환공의 사당에는 기울어진 그릇이 있었는데 ‘부족하면..

청계산 수필 2020.11.06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지 교 헌 잠이 오지 않는다. 다리도 불편하고 속도 불편하다. 참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 거실을 거닐다가 물도 마시고 약도 먹는다. 시침은 밤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발목에는 시퍼런 빛깔이 여전하다. 정강이는 당연히 통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복숭아뼈가 묻힐 만큼 발목이 부어오르고 살갗이 푸른 것은 좀 이상하기도 하다. 나는 P교수가 강의하는 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강의가 끝나고 모두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위하여 단상으로 모였다. 나만 굳이 빠지기가 싫어서 걸어 나갔다. 단상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왼 발을 올려놓고 오른 발을 떼는 순간 정신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아찔하였다. 그러나 나는 떨치고 일어나 사진을 찍고 P교수와 인사도 나누고 그를 배웅하였다. 정강이가 몹시 아팠다. 바지..

청계산 수필 2020.06.12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지교헌 탄천변(炭川邊) 산책 길 옆에는 크고 작은 나무와 어른 키보다도 높이 자란 갈대와 억새가 끝없이 우거져 있는데 거기에는 너구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풀 섶에 숨어있는 너구리는 작은 편이었지만 사나운 모습이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하얀 애완견을 한 마리 끌고 다가 왔다. 주변에 서 있던 여인들은 소리쳤다. “너구리가 있어요. 강아지 조심하세요!” 나는 여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였다. 사람이 여럿이 있고 주인이 끌고 가는데 감히 그 작은 너구리가 애완견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나는 다만 너구리의 행동이 궁금하기만 하여 지켜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젊은 여자가 하얀 애완견을 끌고 너구리 옆으로 다가오고 너구리는 ..

청계산 수필 2020.06.11

진정한 선비의 모습

진정한 선비의 모습 ‘선비’라는 낱말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직업적 구별이 분명하였던 전근대적 전통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말이고 현대와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낱말이다. 그러나 요즘도 사람들은 이따금 존경할만한 사람을 가리켜 ‘선비’라고 높이는가하면 이와는 반대로 경멸할만한 사람을 가리켜 ‘무식쟁이’니 ‘사기꾼’이니 심지어는 ‘쌍놈’이라는 말로 폄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선비’라는 낱말은 학식이나 인격이나 행동이 매우 이상적이어서 남에게 모범이 될 만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낱말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현대사회의 시민들은 사농공상의 차이를 거의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가정과 국가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한다. 따라서 어느 직업이 특별히 귀하거나..

청계산 수필 202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