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의식주(衣食住)와 현자(賢者)의 즐거움

송담(松潭) 2021. 1. 8. 06:11

의식주(衣食住)와 현자(賢者)의 즐거움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

 

지 교 헌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의식주(衣食住)라고 할 수 있다. 즉 옷(의류)과 음식과 주거라는 것인데 여기서 옷이라는 것은 사람의 몸을 보호해주고 보기 좋게 꾸며주기도 한다. 사람의 몸을 보호해준다는 것은 이를테면 차가운 비나 찬바람을 맞을 때 몸을 지켜주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외부로부터 오는 침해를 막아주기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람을 보기 좋게 꾸며 준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적(美的) 감각이나 가치 척도에 알맞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갖추는 복장과 남의 앞에 나타날 때의 복장과 특별한 행사를 치룰 때의 복장이 서로 다른 수가 많다.

 

의식주라는 것은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간추려서 말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인 경우를 살펴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앞에서 말한 옷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 생김새나 빛깔이나 소재나 값어치가 천차만별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음식으로 말하더라도 그 맛이나 영양분이나 기능적 효용에 따라 다르며 그것이 어떻게 획득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그 장소나 크기나 구조나 자재나 모양에 따라 가치의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주라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면서 그 사람의 재력이나 권력이나 인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주가 어느 수준에 있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의복[의관]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이며 그 사람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기름지고 귀한 것이며 그 사람의 주택이 얼마나 편리하고 크고 값지냐에 따라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평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의식주가 초라한 사람은 그 인격이나 능력도 초라하다고 평가되기 쉽다. 따라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자기의 의식주에 신경을 기울이고 의식주를 확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주로 재물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재물에 애착을 갖게 되고 그 애착이 지나치게 심할 경우에는 타인의 빈축을 사거나 나아가서는 불법 또는 위법행위가 되어 국가의 공권력에 의하여 소추를 당하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오리(汚吏)나 장리(贓吏)로 손가락질을 받거나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는 안회(顔回)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어질도다. 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항에 있으면 사람들이 그 시름을 감내하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一飄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예로부터 누추한 시골이나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주거의 환경만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식도 매우 열악한 수준에서 살면서 항상 즐거움을 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회는 그런 환경에서 근심이나 불안을 벗어나 변함없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고 공자는 그의 훌륭한 인품을 가리켜 어질다고 칭송한 것이다.

 

사람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살아왔으며 오늘날에도 그 욕구는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동양에서는 불교계에서 말하는 재욕(財慾) 색욕(色慾) 음욕(飮慾) 명욕(名慾) 수욕(睡慾)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재욕은 물질적인 것으로 흔히 말하는 동산이나 부동산이나 현금과 같은 것을 탐하는 것이며, 색욕은 남녀 간의 욕정이며, 음욕은 음식물에 관한 것이며, 명욕은 명예에 관한 것이며, 수욕은 육체적 휴식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욕구 가운데 모두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충족되기를 원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불만이나 불행을 느끼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지니지 못하게 되어 삶의 즐거움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여러 가지 패륜과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어서 때로는 개인적인 문제를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파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회는 누항에서 악의악식으로 생활하면서도 그 즐거움을 잃지 않고 있으니 매우 어질다고 공자는 평가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안회처럼 누항에서 그 낙을 변치 않고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회만 있으면 인욕(人慾)에 사로잡혀 사치와 낭비와 허영에 이끌리어 반인륜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가 많다. 특히 일정한 권력을 얻기만 하면 윤리적 사회적 법률적 규범을 도외시하고, 강자에게 아부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방자하거나, 약자를 억압하거나 핍박하거나 유혹하여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품위를 스스로 유지하려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그것을 파괴하면서 반인륜적 행위를 자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누추한 곳에서 악의악식으로 살아갈지라도 인간의 고귀한 양심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즐거움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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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육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회원

<<동양철학과 한국사상>> 외 논저 및 수필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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