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맹교수의 사랑방 이야기

송담(松潭) 2020. 11. 6. 06:09

 

맹교수의 사랑방 이야기

 

 

 

 

 

< 1 >

 

 

 오늘은 계영배, 과유불급의 교훈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내용을 보니 계영배戒盈杯였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 왜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해야 할까? 물도 한 잔 가득하면 좋고, 술도 한 잔 가득하면 좋고, 돈도 지갑에 가득하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계영배는 술을 가득 부으면 자동적으로 줄어들어서 알맞게 된다는 것이다.

계영배는 중국의 제나라 환공(桓公)이 항상 옆에 놓고 보면서 교훈을 받았는데 조선시대 도공(陶工) 유명옥은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고 나서 교만해진 나머지 방탕하여 재산을 모두 없애고 나서 다시 돌아와 만들었단다.

 

 그래서 이 그릇은 사람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환공의 사당에는 기울어진 그릇이 있었는데 부족하면 기울어지고 알맞으면 바로서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虛則中則正 滿則覆)는 그릇이었다.

 

 맹교수는 주역(周易) 64괘 중에서 건괘(乾卦)를 생각하였다. 건괘 맨 위에 자리잡은 효(爻 上九)는 때가 모두 지나가서 바야흐로 종말이 다가오는 모습이란다. 너무 강경하여 따라오는 사람이 없고 권세가 끝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다. 지난날의 부귀공명이 모두 부질없는 꿈으로 돌아갈 형편이다. 그래서 항룡은 뉘우침이 있으리라(亢龍有悔)고 한 것이다.

 

 예나 이제나 사람들은 달이 차면 기우는 현상을 무수히 보고 살았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이 가득차면 불길하고 화가 초래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산다. 특히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욕심을 채우다가 쫓겨나고 살해당하고 심판 받고 패가망신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흉내내려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계영배는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부르고 유좌지기’(宥坐之器)라고 알려져 있다.

 

 

 

< 2 >

 

 팔불출(八不出)이라는 말이 있다. 팔불용(八不用), 팔불취(八不取), 팔삭동(八朔童)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쓰는 말이란다. 여덟 가지 못난 짓, 쓸모없는 짓, 취할 것이 못 되는 것, 여덟 달만에 낳은 놈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제대로 되려면 열 달 만에 출생해야 되는데 두 달이나 모자라서 태어났으니 미숙하다는 것이다.

 

 제자랑하는 놈, 마누라 자랑하는 놈, 자식 자랑하는 놈, 손자 자랑하는 놈, 부모나 조상 자랑하는 놈, 친척이나 친구나 동창선후배 자랑하는 놈, 고향 자랑하는 놈들은 팔불출이라는데 노인들은 불출 노릇이 즐겁다.

 

 그들은 아무리 자랑해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살아온 이야기요. 추억이요, 세상 이야기다. 보고 들은 것도 많고 경험한 것도 많아서 할 이야기도 많다. 남의 이야기 듣기 보다는 자기가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한다. 늙은이들이 이야기하면 젊은이들이 황혼연설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노인들이 자랑하는 이야기는 모두 지나간 자신의 이야기나 남의 이야기가 많다. 어떤 사람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것도 자기를 알리는 일종의 자랑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아기가 우는 것이 본능인 것처럼 사람들이 자기 자랑하는 것도 일종의 본능이고 자기를 과시하는것이라고 한다. 자기를 과시하는 행위는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어서 상대방을 은근히 제압하거나 아니면 잘 난 체하는 행위이고 남에게 교만한 행위로 보이기 쉬운 것이다.

 

 선생님들 가운데는 나똑똑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학생들이 볼 때는 자기가 똑독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지로 학생들 앞에서 잘 난 체하는 맛으로 교편을 잡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노인들의 자기자랑은 현진행형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자랑거리가 아니고 거의 모두가 지나간 이야기로 점철된다는 데 특징이 있는 것이었다. 노인들의 자랑 가운데는 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을 과장하거나 허위사실을 가지고 자랑하는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자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려는 목적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수가 많다.

 

 

< 3 >

 

 

 옛날 어느 선비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남의 잔치에 갔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더라지 뭡니까. 그래서 재빨리 집으로 가서 비단 옷을 입고 갔더니 상석으로 안내하고 좋은 술과 고기를 권하더래요. 그러자 그 선비는 주인이 권하는 술을 옷에다 부었다지 뭡니까? 주인이 괴상히 여기고 연유를 물었더랍니다.

 

진사 나으리, 어찌하여 약주를 드시지 않고 옷에다 부으십니까?”

아까는 나에게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내가 비단 옷으로 갈아입고 오니 진수성찬으로 대접하는 연유가 무엇이오?”

아까는 바빠서 그리 된 것이니 서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런데 옷에다 약주를 부은 연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까는 내 옷을 보고 천대하고 지금은 내 옷을 보고 후대하니 술도 내 옷이 마셔야 하는 것 아니겠소?”

“······”

 

 사람들은 늙을수록 옷을 잘 입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아무 옷이나 입어도 크게 흉 되지 않지만 늙은이는 자칫하면 초라하게 보이고 뒤떨어지게 보인다. 특히 자식들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렇단다. 부모는 못난 자식을 데리고 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자식은 못난 부모를 싫어하고 창피하게 여긴다.

 

 

 

< 4 >

 

 노인들은 팔불출이 되더라도 자랑거리가 많기를 바란다. 자랑거리가 많으면 자랑하지 않아도 남들이 부러워한다. 자랑거리가 없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못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돈의 팔촌이라도 끌어다 자랑거리를 삼고 싶은 것이 노인들의 심사이다.

 

 

 

< 5 >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18만개의 강철빔을 15센티미터 길이의 연결고리() 250만 개가 지탱하고 있는데 아무리 강철 빔이 견고해도 연결고리가 약하면 절대로 탑이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이타닉스가 빙산에 부딪쳐 침몰한 후에 원인을 조사하였더니 튼튼한 강판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가운데서 일부가 불량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여기서 연결고리는 바로 사람의 도덕심에 비유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지적 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도덕심이 약하면 사람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학자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국가나 사회의 유지와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기능, 경제적 기능, 유형유지 기능이 아무리 원만하여도 연대의식이 원만하지 않으면 문화 지체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연대의식은 곧 윤리요 도덕이다.

 

 맹교수는, 한국인은 윤리의식이 약한 것이 커다란 병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인의 윤리의식을 강화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이론과 구체적 실천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을 찾아 체계화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맹교수의 아름다운 황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고 건강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황혼이 아니라 초라하고 처량하고 불미한 황혼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대용/ ‘맹교수의 사랑방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