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
지 교 헌
사람은 누구나 부모와 형제자매와 친인척과 이웃과 더불어 국가권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 나간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는 여러 가지 사랑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가르침을 받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엄격한 제재(制裁)나 억압이나 나아가서는 배척이나 침해를 받는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여실히 깨닫게 한다.
그런데 사회(社會; ‘society’ ‘community’)란 무엇인가. 사회는 흔히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유기적 집단’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유기적 집단 속에서 사는 것이며 아무리 1인가구를 유지하고 살고 있더라도 유기적 집단을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고립된 생활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공동주택의 복도에서나, 또는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시장에서나, 관공서에서나 자연스럽게 마주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만나는 동시에 때로는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만나는 수도 많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교감이 되고 언어나 몸짓이나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종의 교감(交感)은 나이나 지위나 체력이나 재력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수가 많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대체로 어느 상대방이 매우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 뚜렷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어느 노인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넘어져서 다치고 피를 흘린다면 그것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달려들어 그 노인을 부축하고 적당한 조치를 취하게 한다. 이러한 행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심(本心)에서 울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심은 피를 흘리는 노인을 보호함으로써 그 가족에게 칭찬을 듣거나,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거나, 사회적으로 표창을 받거나, 아니면 그런 일을 하지 않고 방관함으로써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피 흘리는 노인을 돕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해관계(利害關係)를 초월하여 착한 일을 행함으로써 기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노인을 가엾게 여기고 돌보아주고 싶은 마음이 곧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바람직한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어찌 측은지심뿐이랴. 우리는 때때로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사욕(私慾)으로 실수하였을 때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러한 마음을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이를 일컬어 사양지심(辭讓之心)이라 하고, 우리가 하는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하는, 다시 말하면 시비(是非; 옳고 그름)를 가리는 마음을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은 내가 억지로 지어서 나타내는 마음이 아니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고, 남의 평판을 의식하지도 않고 그것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맹자>>는 우리들 인간이 이들 네 가지 마음을 고유(固有)한다고 주장하였다. 억지로 지어서 먹는 마음이 아니고 생래적으로, 선천적으로 타고 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유한 것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방임(放任)하면 그것을 잘 보존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방심하였을 때에는 그것을 다시 찾고 달아나지 않도록 고이 간직해야 한다. 이것이 ‘구방심’(求放心)이다.
<<맹자>>공손추 상편(孟子 公孫丑 上篇)에는 ‘인개유불인인지심’(人皆有不忍人之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체로 ‘사람은 누구나 차마(참아)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번역한다. 그러나 이런 번역은 웬만큼 타당성이 인정되면서도 불완전한 측면을 벗어나기 어렵다.
불인인지심이란 이를테면 어린 아이가 물에 빠지려는 순간과 같이 위태로운 형편일 때에 그것을 그대로 보아 넘길 수 없는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즉시 달려가서 무조건하고 물에 빠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진실한 마음이다. 보고도 못 본체하고 내버려두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까봐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아이를 구해주지 않고는 견딜 수없는 타고 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발로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사양하는 마음도, 시비를 가리는 마음도 마찬가지로 나의 마음에 고유(固有)하는 것이며 불인인지심의 하나라는 것이다.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이 각각 종개념(種槪念)이라면 불인인지심은 유개념(類槪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인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은 남이 불행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다행할 때도 적용된다. 남이 칭찬을 받을만하면 그를 칭찬하지 않고는 견딜 수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친구가 훌륭한 일을 하여 포상을 받게 되면 마치 내가 포상을 받는 것처럼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개유불인인지심”이란 말은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함이 바람직하다. 남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불쌍하여 참을 수가 없고, 남이 행운을 당하면 나도 그것을 기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친구가 성공하면 나도 기쁘고 친구가 실패하면 나도 슬픈 것이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선왕이 불인인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인인지정을 행하고 있는 것”(…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이라하고 이어서 “남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천하를 다스리기는 가히 손바닥 위에서 행해일 수 있다”(治天下可運於掌上)는 것이다. 여기서 ‘불인인지심’은 ‘불인인지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성들의 마음을 잘 알고 살펴서 그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면 그 정치는 손바닥 위에서 하는 것처럼 아주 쉽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인인지심은 “남의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내가 모른척하고 내버려두지 않는 마음”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하여, 백성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인간관계나 정치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다. “불인인지심”을 쉬운 말로 해석하고 번역함에 있어서는 ‘차마 (또는 참아) 하지 못하는 마음’보다는 차라리 ‘타인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하고 번역하는 것이 한층 타당성을 유지하게 된다.
오늘날 인류사회를 보면 정치이론과 정치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가, <<맹자>>가 말하는 불인인지심을 가지고 국민의 원하는 바와 원하지 않는 바를 잘 살펴서 거기에 부합하는 정치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 정치는 매우 어려울 것이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불인인지심이야 말로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끝)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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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人皆有不忍人之心’의 국역에 대하여는 지교헌 “<<맹자>>불인장 ‘불인인지심’에 대한 이해와 바람직한 국역에 대하여” <정신문화연구> 1993. 16권 3호 (통권52호) pp.101~117 참조.
레티홍튀씨의 ‘영농· 생활 수기’를 읽고
지 교 헌
2020년 8월 14일자 <농민신문> 25면에는 ‘제37회 영농· 생활 수기’ 당선작이 발표되고 한 장의 커다란 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베트남 남부의 시골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 온 레티홍튀씨와 그의 시어머니와 남편이었다.
레티홍튀씨의 집안은 매우 가난하여 그는 어릴 때부터 들에 나가 이삭을 줍기도 하고, 홀어머니를 도와 불교식당에서 잔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하는 찰밥장사를 도우며 살았으나 생활은 매우 궁핍하고 장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TV에서 우연히 한국의 드라마 “겨울연가”(WINTER SONATA)를 보면서 그 배경에 심취하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평소에 알고 지내던 결혼정보회사의 권유로 한국의 신랑을 만나보게 되고, 다음날 결혼식을 올리고, 2006년 1월 15일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해 보니 날씨는 춥고 시부(媤父)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사고로 사망하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다던 신랑은 상주(喪主)가 되어 나오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시련이 닥쳐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시어머니의 위로를 받으며 한국생활을 시작하였다.
신랑은 시각장애인이지만 겸손하고 성실하고 아내를 잘 따라주었고, 시어머니는 안동포를 짜고, 송아지가 늘어나고, 첫 아들을 출생하게 되어 그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듯하였다. 그러나 송아지가 다섯 마리로 늘었을 때 구제역이 유행하여 모두 살처분(殺處分)하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곧 자신의 운명이며 앞으로 개척해나가야 할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걱정은 다시 일기 시작하였다. 둘째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자칫하면 평생을 시각장애로 살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지방에 있는 병원과 한의원을 모두 찾아다니고 그가 살고 있는 안동에서 서울까지 찾아가 진료를 받았지만 모두 헛수고에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정신을 잃고 헤매는 와중에 시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다행히 일어났다.
이윽고 셋째가 태어나고 또 넷째가 태어났다. 넷째부터는 마을 사람들이 가족계획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충고해주었다. 그러나 인위적인 가족계획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넷째가 또 시각장애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남편과 자주 다투게 되었다. 그는 하소연할 데가 없고 너무 억울하여 의성(義城)에 있는 친구에게 가서 밤새워 이야기를 쏟아 놓았는데 그 친구의 남편으로부터 냉철한 충고를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도 있고 시련도 있는데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곧 인생이지 그것을 회피하고 버리면 어찌 사람의 도리를 다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안동농협에서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을 받게 되고 친구도 사귀고 한국어도 배우고 조합에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하였다. 3ha(약10,000평)의 농지에 파종(播種)이 늦어져 막심한 손해를 보기도하였지만 조합의 봉사자들이 와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남편과 의논하여 트랙터도 사고 트럭도 샀다. 수확한 농산물을 트럭에 가득 싣고 농협공판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큰 보람이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이 레티홍튀씨의 ‘영농생활수기’를 간추린 내용이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이른 바 후기산업사회에 이르러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첨단화하고 과학화하고 있다. 그런데 농업분야는 대체로 전근대적 산업에 속하고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작아져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경우에도 농촌인구는 도시로 이동하여 농촌의 황폐화를 염려할 수준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현실에 대응하여 만족할만한 정책이 실시되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한국의 농촌에 생산인력을 확보하고 농촌문화 발전에 유효한 수단은 농업의 기계화와 과학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레티홍튀씨와 같은 성실하고 건전한 해외인력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 중의 하나는 레티홍튀씨의 가족윤리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시부모에 대한 관계나 자식들에 대한 관계나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윤리의식이나 책임의식이 매우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치매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고 며느리에게 모진 소리를 하는 시모를 정중히 대하고 요양원으로 모시라는 남의 권고를 단호히 물리친다고 한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노인을 공경하고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미덕이기 때문이다. 레티홍튀씨 부부는 효자효부로 높이 표창되고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레티홍튀씨는 훌륭한 현모양처요, 그 부부는 효자효부요, 한국의 훌륭한 농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여러 가지 방면의 교류가 더욱 증진되고 바람직한 우호관계가 형성되고 발전될 것으로 믿는다.
(2020.08.28.)
지 교 헌
한국문협, 국제PEN클럽한국본부 회원
<월간수필문학>추천작가회, 한국경기수필가협회 회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
안동농협 다문화 조합원 레티홍튀씨, 영농생활수기 ‘대상’
안동농협 첫 결혼이민여성 조합원 1호인 레티홍튀(36)씨가 ‘제37회 영농생활수기’ 다문화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2일 안동농협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시상식이 취소됨에 따라 전날 안동농협에서 레티홍튀씨에게 상패를 전달했다. <사진>
레티홍튀씨는 2006년 고향인 베트남에서 안동 서후면으로 시집을 왔다. 시어머니와 남편, 4자녀와 함께 생활하며 농사를 짓는 한국생활 15년 차 여성 농업인다. 지난해 안동농협의 결혼이민여성 조합원 1호로 가입했다.
레티홍튀씨는 “저의 영농생활수기가 한국생활을 막 시작하는 결혼이민여성과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권순협 안동농협 조합장은 “한국인보다 더 정이 있고 경을 실천하는 레티홍튀씨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결혼이민여성에 대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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