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나의 무궁화

송담(松潭) 2021. 1. 8. 13:01

나의 무궁화

 

지교헌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로 나갔다가 무궁화가 두어 송이나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꽃송이는 손바닥처럼 넓은데다가 화심(花心)은 진홍 색깔이고 새하얀 꽃술이 의젓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늦여름 겨우 1년생밖에 되지 않는 어린 가지를 꺾어다 화분에 꽂아 놓은 것이 꽃을 피운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무궁화를 보면서 자랐고 백발이 된 오늘날에도 공동주택 주변에서 여러 가지 품종의 무궁화를 보면서 살고 있지만 그처럼 우아한 자태를 갖춘 무궁화는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근화향(槿花鄕)이니 근역(槿域)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일제 강점기에는 벚꽃[櫻花]이 나라꽃인 줄 알고 있었을 뿐,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나라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시골집 울안에도 있고 공동우물 가에도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의 야생화에 지니지 않는 것으로만 알았다가 조국 광복을 맞이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나라꽃’임을 배워서 알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고 새로운 역사관이 싹트게 된 것이다.

 

무궁화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가지 옛 문헌에서 발견된다. 우선 중국의 <<고금기>>(古今記)에는 동이족(東夷族)의 고유한 꽃으로 인정되어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이고 무궁화꽃이 많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고 적혀 있고, 또한 <<산해경>>(山海經)에는 ‘아침에 피어서 저녁에 진다’(朝生暮死)는 기록도 있다. 무궁화는 빛깔이나 모양이 아름답고 한 여름에 100일 이상이나 연이어서 무리지어 피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한 때 무궁화의 묘목을 닥치는 대로 구하여 심어 놓고, 형형색색으로 꽃이 피는 모습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나는 중화민국(타이완)의 ‘중앙연구원역사어언연구소’(中央硏究院歷史語言硏究所)에 파견되어 방문연구교수로 근무할 때 중국 사람과 더불어 ‘나라꽃’(國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한국의 국화가 초롱꽃과에 속하는 ‘도라지꽃(桔梗花)이 아니냐?’고 하였다. 나는 그것이 아니고 무궁화(無窮花, 槿花, 木槿花)라는 것을 아는 데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타이완의 나라꽃은 ‘매화’(梅花)라는 것과 타이완에 ‘매화’(梅花)나 ‘매화행진곡’이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은 ‘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매화가 있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국주의가 엿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타이완뿐만 아니라 대륙의 중국 사람들은 무궁화를 거의 모르는 것 같다. 따라서 한국의 어린이들이 부르는 ‘무궁화’나 어른들이 부르는 ‘꽃 중의 꽃’이라는 노래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꽃 중의 꽃‘을 작사하고 작곡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 노래는 나의 애창곡이 된 지 오래이다. 나는 1990년을 전후하여 한 여름에 유람선으로 장강(長江)을 답사한 일이 있었는데 소삼협(小三峽)을 들렀다가 높은 절벽을 가로지르는 잔도(棧道)의 흔적이 있는 부근에서 우연히도 무궁화 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2m정도이고 꽃의 모양이나 빛깔은 흔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보라 빛이었다.

 

“세상에! 장강에서 무궁화를 만나다니!”

나는 무척 반가웠다. 중국 여행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별로 신기한 꽃을 본 일이 없다가 우리의 ‘무궁화꽃’을 만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무궁화를 응시하다가 옆에 있는 중국 사람에게 ‘무궁화’를 아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한 번도 본 일도 없고 들어본 일도 없다고 하였다. 나는 드디어 나의 짧은 지식이나마 중국고전에 기록된 무궁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무궁화는 우리 대한민국에 많이 자생(自生)하며 여러 가지 문장(紋章)으로도 사용되는 자랑스러운 ‘나라꽃’임을 선전하였다. 빛깔이 다양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무더운 여름, 빛나는 태양 아래 석 달 열흘이나 연이어 피고 온 세계의 각지에서 종자와 삽목(揷木)으로 가꿀 수 있다는 것과 일제가 박멸운동을 전개하였었다는 사실까지 말해주었다. 그는 비로소 한국에는 아름다운 ‘나라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언젠가 한국에 가면 반드시 무궁화를 찾겠노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일제가 ‘부스럼꽃’이니 ‘눈에피꽃’이라고 폄하한 영향을 받았는지 무궁화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말하기도 한다. 대체로 진딧물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벚꽃이나 장미꽃에 견주면 오히려 해충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나는 미국 LA 사우스놀튼 851번지 인근에 있는 주택가의 담장에서 새빨간 무궁화를 발견하고 그 집 주인으로부터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라는 예찬을 들은 일이 있었다. 무궁화를 육종학의 영역에서 연구한 L교수는 “서양에서 ‘hibiscus'라고 부르는 무궁화는 ’신의 얼굴‘이라는 꽃말을 그대로 나타내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역설하였다.

우리의 무궁화여! 자유와 정의와 함께 영원하여라!

 

(201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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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교헌(池敎憲) 필명:지대용(池大庸)

청주교육대학교 교수 역임. 한중연한국학대학원교수정년퇴임.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