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37

신선이 덮는 이불을 발밑에 두고

신선이 덮는 이불을 발밑에 두고 시간, 공간, 인간, 한세상 사는 일은 이 3간을 통과하는 일이다. 이 3간 중에서 비교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간이다. 상대적으로 시간,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다. 공간이 바뀌면 시간의 흐름도 달리 흘러간다. 교도소에서 보내는 시간과 영화관에서 보내는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 그 공간에서 만나는 인간의 종류도 달라진다. 그러니까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더군다나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 세상의 시름을 달래주는 특정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차인(茶人) 나광호 선생을 만나 보니, 이 사람은 생계 활동 이외의 시간만나면 지리산 형제봉을 올라가는 게 일이다. 형제봉에만 올라가면 삶의 의미가 느껴진다고 한다. 형제봉은 지리산 자락이 남쪽..

여행, 걷기 2024.03.26

여행은 자기자신을 되찾기 위한 질문의 여정

여행은 자기자신을 되찾기 위한 질문의 여정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는 왕복 4.8킬로 미터,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불일 폭포는 높이 60미터, 폭 3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자연 폭포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지요. 그런데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순간엔 폭포와 나뿐이었습니다. 폭포는 크게 보면 2단이고, 중간중간 작은 층을 포함하면 4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가물어서 수량이 적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무 난간에 서서 폭포를 바라봤습니다. 절벽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폭포 소리는 요란한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졌습니다. 묘한 침묵을 배경으로 나는 폭포와, 아니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를 작은 ..

여행, 걷기 2023.02.27

독일 드레스덴

독일 드레스덴 1. 가해자의 상처 드레스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날을 기억한다. 1995년 2월 13일이었다. 독일 유학 중이던 나는 그날 아침 신문에서 '드레스덴 폭격' 관련 보도를 처음 보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면에 실린 그리 크지도 않은 기사였다. 그 폭격의 표적이 독일군과 군사시설이 아니라 드레스덴이라는 도시 자체였다는 사실에 나는 크게 놀랐다. 연합국 공군은 전쟁 막바지에 인구 10만이 넘는 독일 도시의 군사시설과 철도역, 군수공장 등을 폭격했는데 조준이 빗나가 주택이나 교회 건물에 폭탄이 떨어진 일은 많았다. 그러나 드레스덴처럼 도 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든 경우는 없었다. 영국과 미국 공군은 1945년 2월 13일 밤부터 사흘 동안 네 차례 번갈아 드레스덴을 '융단폭격'했다...

여행, 걷기 2022.11.20

체코 프라하

체코 프라하 사진출처 : 네이버 포스트 1. 체코공화국 국토는 세 지역으로 나뉘는데 중부와 서부의 보헤미아(Bohemia)가 국토의 대부분이고 동부에 슬레스코와 루사티아라는 두 지역이 붙어 있다. 라틴어 지명 보헤미아는 이곳을 점령한 로마제국 군인들이 켈트족의 지파 ‘보이’족이 산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체코 말로는 보헤미아를 체키(Čechy), 주민들을 체크(Cech)라고 한다. 국호 체코공화국(Česká republika)도 여기서 나왔다. 체코인은 슬라브족의 한 갈래다. 로마제국 시대에 켈트족을 밀어냈던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떠난 5세기 이후 그들이 보헤미아를 차지했다. 체코와 보헤미아는 같은 말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체코공화국은 인구는 2020년 기준 1,100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여행, 걷기 2022.11.18

헝가리 부다페스트

헝가리 부다페스트 며칠 동안 비가 내린 탓인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은 거센 탁류였다. '다뉴브강의 잔물결'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뉴브(Danube), 도나우(Donau), 두너(Duna)는 모두 같은 강을 가리키는 영어 · 독일어 · 헝가리어 이름이다. '푸르고 잔잔한 도나우의 물결'이라는 나의 관념은 아마도 음악 때문에 생긴 것이었으리라. 19세기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잔물결'과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같은 것이다. 특히 이바노비치의 곡은 1926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조선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의 원곡이어서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도나우강은 알프스 남쪽 경계를 타고 동쪽으로 흐르면서 빈을 지난 다음 부다페스트 근처에서..

여행, 걷기 2022.11.14

쇤브룬궁전과 마리아 테레지아

쇤브룬궁전과 마리아 테레지아 사진출처 : 트립어드바이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로코코 양식 여름 별궁인 쇤브룬은 50만 평 대지에 방이 1,400개 넘는 거대한 집이다. 호프부르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 궁전은 왕가의 취향과 문화적 안목을 보여준다. 16세기 후반 동물원을 만든 데 이어 식물원을 조성했으며 인근 숲에서는 왕실 남자들이 사냥을 즐겼다. 성벽 바깥에 있었던 탓에 오스만제국 군대에 짓밟혀 쑥대밭이 되기도 했지만 18세기 중반 제국을 통치했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새로 꾸몄다. 일부 건물을 증축한 19세기 후반에 지금의 쇤브룬이 되었다. 쇤브룬 궁전은 안과 밖의 모든 것이 베르사유보다는 덜 사치스럽다는 점이다. 합스부르크 왕실이 부르봉 왕가보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빈의 지배자들이 루..

여행, 걷기 2022.11.12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는 헝가리(동), 스위스(서), 이탈리아(남), 독일과 체코(북)에 둘러싸인 완벽한 내륙 국가다. 국토 면적은 8만4천㎢ 대한민국보다 조금 작지만 대부분 산악이고 경작지가 적어 인구가 9백만 명도 되지 않는다. 빈은 알프스 북쪽 비탈에 있으니 주변 지세가 험준할 거라 짐작했지만 슈테플 전망대에서 보니 그렇지 않았다. 도나우강을 낀 평지에 들어선 도시였다. 유럽은 중세 내내 봉건 영주와 왕들의 영토전쟁에 휩쓸렸고 몽골과 투르크를 비롯한 외부 침략에도 시달렸다. 평지의 도시에는 높고 튼튼한 성벽이 생존의 필요조건이었다. 오스트리아 국민은 대부분 독일어를 쓰고 가톨릭을 믿는다. 고대독일어에서 '동쪽 땅'을 의미했던 국명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 오스트리아는 이 단어의 라틴어 표..

여행, 걷기 2022.11.09

유시민 / ‘유럽도시기행1’중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시테섬에 있는 파리 대주교좌 성당의 이름 ‘노트르담(NotreDame)'은 이탈리아 성당들이 너나없이 이름 첫머리에 붙이고 있는'산타마리아'와 비슷한 뜻이다. 파리 주교와 로마 교황청이 12세기 중반부터 200여 년 동안 건물과 첨탑을 올리고 파이프오르간과 성가대석을 포함한 내부 시설을 지었다. 폭 48미터, 길이 130미터, 천장 높이 35미터인 이 고딕양식 성당의 건축학적 특징은 따로 말하지 않겠다. 아야소피아나 베드로 대성당과 비교하면 노트르담은 평범하고소박하다. 노트르담은 종교시설인 동시에 정치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종교적 갈등이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16세기 중반 위그노전쟁 때는 개신교도들이 우상숭배의 상징으로 지목해 파괴했다. 루이 15세가 개축했..

여행, 걷기 2022.10.17

다시 부석사에서

다시 부석사에서 영주 부석사에 다녀왔다. 부석사는 소백산 기슭에 떠있듯 서있다. 나도 누구처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보고 싶었다. 그리고 고려 중기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건물 무량수전, 그 앞에 고려 때부터 한결같이 펼쳐지고 있는 ‘산의 군무(群舞)’가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모양이기에, 어떤 기개이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흠모하는가. 우선 평생을 박물관에서 한국미를 찾아내고 그 흥과 감동으로 일생을 살다 간 최순우의 현사를 들어보자.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이렇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람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여행, 걷기 2021.12.08

열하일기 기착지, 베이징

열하일기 기착지, 베이징 자금성 해자를 끼고 왼편으로 펼쳐진 치엔먼과 리우리창에는 가을 서정이 역력했다. 햇살은 엷어지고 푸르던 나무는 조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옛날 연경(현 베이징)에 들러 벼루와 붓을 사고 선진문물에 놀라워했던 연암 박지원의 여로는 붐비는 인파와 문명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아직도 성업 중인 수백 개의 문방사우 상점들은 『열하일기』의 「관내정사」 풍광 속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당시 박지원의 나이는 43세였다. 영조 때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 사절단 자제 군관 자격으로 먼 길을 떠났다. 이때 보고 들은 청나라 견문록을 『열하일기』로 남겼다. 압록강을 건너며 시작되는 「도강록」부터 연경과 열하를 다녀오는 「환연도중록」 까지 길 위의 여정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중국..

여행, 걷기 202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