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여행은 자기자신을 되찾기 위한 질문의 여정

송담(松潭) 2023. 2. 27. 04:56

여행은 자기자신을 되찾기 위한 질문의 여정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는 왕복 4.8킬로 미터,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불일 폭포는 높이 60미터, 폭 3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자연 폭포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지요. 그런데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순간엔 폭포와 나뿐이었습니다. 폭포는 크게 보면 2단이고, 중간중간 작은 층을 포함하면 4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가물어서 수량이 적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무 난간에 서서 폭포를 바라봤습니다. 절벽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폭포 소리는 요란한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졌습니다. 묘한 침묵을 배경으로 나는 폭포와, 아니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를 작은 수첩에 적어 두었는데 간추려서 옮기면다음과 같습니다.
 
“물들이 끝없이 폭포의 층과 층 사이로 뛰어내린다.그 모습이 비장해 보인다. 산속을 흘러내려 온 물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공중으로 몸을 날리기 때문이리라. 한편으로는 쏟아지는 물이 도약으로 보인다. 떨어지는 물이 어째서 도약으로 보일까? 그것이 내게 필요하기 때문일까? 물은 즐거워보이기도 한다. 폭포 소리가 우레 같은 환호성으로 들린다.새로운 길을 향한 설렘 때문일까?"
 
불일 폭포를 떠나며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여행이 주는 귀한 선물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던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설레듯이 여행 중에 어떤 낯선 풍경을 마주하고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거기에 오래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던 나의 본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무수한 고민 끝에 홀로 떠난 여행은 내게 질문과 실마리를 모두 주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쓸지 말지 한동안 고민하던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4년 만에 새로 쓰는 책이었습니다. 18개월 후 세상에 나온 책에는 여행하며 내가 만난 폭포와 나무같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본질적인 전환을 위한 도구가 담겼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눈에 잘 들어오는 사물과 풍경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왜?'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왜 지금 그것이 눈에 들어왔을까, 저것을 보고 왜 강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이 질문을 출발점 삼아 곰곰이 살피다 보면 겉모습 너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이곤 합니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여행자의 마음이 짙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행은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풍경과 사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현재 내 상태와 기분, 관심사와 화두, 그리고 꼭 필요한 실마리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홍승완/ '마음편지(구본형 홍승완 지음)'중에서
 

'여행,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선이 덮는 이불을 발밑에 두고  (1) 2024.03.26
독일 드레스덴  (0) 2022.11.20
체코 프라하  (1) 2022.11.18
헝가리 부다페스트  (0) 2022.11.14
쇤브룬궁전과 마리아 테레지아  (0) 20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