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43

마음을 담은 집

마음을 담은 집  집이 없어도 지구는 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집을 통해 이 지구상에서의 존재 의미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걸 존재의 가치라고 부를 일이다. 지구는 여전히 무심하게 돌 것이다. 우리는 그 순환에 맞취 살고 있다. 어떤 여행이든 순례든 그 뒤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가장 긴 순례, 지구 위에서 생명체로서의 순례를 마치면 우리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간다. 지구는 돌고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그게 생명체에게 지정된 숙명이다. 사람이 집을 짓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집'이 담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집’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공간이다. 그 마음은 보이지도 않는데 가끔 이리저리 변하기도..

전원일기 2024.04.24

평범한 일상의 고마움

평범한 일상의 고마움 이미지 출처 : 효마을 실버빌 케어센터 친구 박형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800km),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 해파랑길(770km)과 남파랑길(1,463㎞)를 걸었던 걷기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런 친구가 2022년 10월초 코로나 후유증으로 뇌경색 증상이 나타나 대장정을 중단했습니다. 다행이 뇌경색은 조속한 대처로 탈 없이 잘 극복했습니다. 며칠 전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갈 때는 한줌의 재가 될 몸뚱이를 위해 24시간을 살고 있다는 자각입니다. 눈 뜨면 양치와 소변 색깔과 거품 확인, 혈당체크, 혈압측정, 스트레칭과 유.무산소 운동, 섭생과 투약 그리고 맨발걷기와 빠르게 걷기가 하루의 패턴입니다.” 친구의 건강관리는 걷기의 달인답게 철저하고 모범적입니다. 친구나..

전원일기 2024.02.27

최낙춘의 겨울사진

최낙춘의 겨울사진 구례우체국 최낙춘지부장님께서는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살고 있는 멋진 사람입니다. 사모님과 수시로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답게 살고 계십니다. 단톡방에 올린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 제 블로그에 자랑거리로 올렸습니다.    화엄사에서 바라본 노고단 2023.12.21   고창 청보리밭2023.12.25    노고단2024.1.7   보성 율포해수욕장2024.1.1  최낙춘 작가 2024.1.7  다음 글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최낙춘지부장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글입니다. 보통의 인간들의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

전원일기 2024.01.08

산책길에서

산책길에서 겨울산은 포근하게 보입니다. 잎을 떨꾸어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을 것인데 멀리서 보니 산등성이가 부드러운 솜털로 덮힌 것 같습니다. 겨울눈이 쌓이면 더욱 포근해 보일 것입니다. 겨울산은 ‘어머니산’과도 같습니다. 묵묵하고 변함 없고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바라만 보아도 위안을 줍니다. 이 소나무들은 언젠가 심한 태풍에 가지가 찢기고 시달려 변형된 모습입니다. 시련을 이겨내고 굳굳하게 서 있는 모습이 나름 멋져 보입니다. 사철나무는 아니지만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낙엽에 둘러쌓인 연두빛이 선명하고 깨끗합니다. 머지않아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결국 스러지고 말 것인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으니 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속에 묻힌 연두빛은 그 선연함이 절정을 이루며 사라져갈 것입니다...

전원일기 2023.12.07

실패했다고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실패했다고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어제는 지인이 포스코 광양수련원에서 1박 할 수 있는 이용권을 줘서 김학영 형과 하룻밤을 자면서 지난 40 여 년간의 우정을 회고했습니다. 형은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제가 1년차 후배이고 같은 경주 김가(계림군파)에 같은 항렬입니다. 대학 3년 쯤 고시준비를 하면서 서로 처음 만났는데 젊은 시절 호기(呼氣)에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워 파출소에 끌려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형은 행정고등고시와 입법고시를 합격한 2관왕이었고 저는 실력이 모자란 탓에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후 형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고위공직자 사정업무 담당)근무, 송파경찰서장, 화순, 고흥경찰서장 등을 역임하고 고향에서 몇 차례 민선 군수에 도전했으나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인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전원일기 2023.05.20

비오는 날의 전원일기

비오는 날의 전원일기 토부다원 연못 잔디밭 위로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다. 장마철에 내린 비지만 바람을 동반하지 않아 온순하다. 비를 맞으니 녹색은 더욱 선명해지고 전원은 한적하고 아늑하다. 봄에 모종으로 심은 채소들이 생기차고 고추, 가지, 토마토는 벌써 주렁주렁 다산과 풍요를 자랑하는 듯하다. 시원한 잔디밭과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지니 지난 날 아쉬워했던 것들도 다 부질없다. 법정스님께서 ‘인생은 아쉬운 듯 모자라게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골프는 나에겐 사치여서 배우지 못했고, 가족과 해외여행이 망설여지고, 명품 같은 상징이나 이미지를 소비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문 나의 경제력은 격 높은 삶을 불가하게 했다. 반면, 이러한 경제수준은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

전원일기 2023.04.09

이웃집의 김장 축제

이웃집의 김장 축제 길가에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앞집 노인회장님댁에서 김장을 담는 날입니다. 시내 사는 아들 내외, 두 딸과 사위들이 모여서 많은 양의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지금은 한참 양념을 버무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댁은 핵가족 시대에 보기 드물게 가족 간의 훈훈한 정이 살아 있는 집입니다. 그분들은 틈만 나면 수시로 모여 가족 이벤트를 갖습니다. 얼마 전에는 회장님의 팔순을 맞아 가족들이 제주도에 갔고 복장까지 통일해서 재미있게 놀고 왔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 외지에서 들어 온 집들은 거의 두 부부만 단출하게 살고 있는데 회장님 댁의 시끌벅쩍하고 정감이 있는 삶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친구 박형하가 이해인의 ‘12월의 노래’라는 시를 읽고 평한 글이 떠오..

전원일기 2022.12.10

조용한 일상(日常)

조용한 일상(日常) 전원생활은 여름까지는 풀과의 전쟁이지만 가을부터는 일거리가 줄어듭니다. 거실에 앉아 시름시름 졸다가 낮잠을 쫓기 위해 밖으로 나가 어디 일거리가 없나 찾다가 작은 꽃병에 국화꽃을 꽂았습니다. 단출하기도 하고 풍성하게도 보였습니다. ‘아! 꽃꽂이는 여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스스로 흡족해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라도 주로 집에만 있는 저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혼자서도 잘 노네!’ 아니면, ‘얼마나 심심하면 혼자서... 쯧쯧.’ 그러나 누가 뭐라 하더라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즐거움의 역치(자극 또는 통증을 느끼는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애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 이웃들을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따분해 하면서 밖으로 자주 나갑니다...

전원일기 2022.11.16

요리하기, 하면 된다!

요리하기, 하면 된다!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는 국끓이기로 3년 전 집사람이 병원에 20여일 입원했을 때 처음 끓여 보았습니다. 종류는 콩나물국, 미역국, 김치찌개 등 3가지 정도입니다. 이 세 가지는 아주 간단하더군요. 그 후 반찬 같은 건 아직 만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최근 집사람이 여수 아들집에 가 있어 제가 1주일에 한 번씩 여수로 가서 1박 하고 옵니다. 올 때 집사람이 국, 반찬까지 챙겨주면 저는 전기밥솥에 밥만 하면 됩니다. 제가 큰 수술을 했던 사람이라 집사람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별다른 불편 없이 혼자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직접 호박 된장국을 끓여봤습니다. 집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레시피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자력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호박을 자르고 씨를 뺀 다음 적당..

전원일기 2022.09.22

12월의 첫날에(2018.12월)

12월의 첫날에(2018.12월)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

전원일기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