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수석)과 나무, 정원

돌들의 말(言)

송담(松潭) 2023. 7. 22. 20:34

돌들의 말(言)
 
 

 
 돌은 문양이나 형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돌이 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돌을 곁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면 누군가 믿음직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아 위로 받기도 하고 마음이 밝아지면서 기쁨과 설렘이 일기도 합니다. 돌이 우리에게 주는 미덕을 생각해 봅니다. 돌은 묵직하고 든든합니다. 오래도록 변함없이 신뢰를 지킬 것 같은 믿음이 인간에게 토템이즘을 낳게 했을 것입니다.

 

돌의 색은 돌의 질(質)에 따라 원래부터 변함없이 나타나 있는 것도 있지만 물을 만나야 색과 문양이 선연하게 드러나는 돌이 있습니다. 호피나 검은 묵석같은 돌은 색의 변함이 없어 안방에서 좌대에 앉아 있고, 대부분의 조경석은 비를 맞거나 물을 뿌리면 색이 드러납니다. 물기 없이 말라있을 때는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별개 아니라고 오해할 수 있으나 ‘존재의 의미’는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평소 자신을 잘 나타내지 않다가 어느 날, 어느 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우리는 새로움과 반가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색을 숨기고 있다고 연탄재 차듯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물을 만나 환해지는 모습을 보고 물이 생명수(生命水)라는 것과 자연의 소중함까지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본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돌을 보면서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기행을 할 수 있습니다. 산맥과 협곡을 건너 폭포를 만나고 험준한 사막을 건너면서 고행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습니다. 넓은 평온을 만나면 연암 박지원처럼 ‘울고 싶은 곳(好哭場)’에서 한참을 멈춰 통곡하기도 합니다. 돌 속에 숨겨진 역사, 문화, 진리, 깨달음을 찾아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탈주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돌 앞에 서서 ‘구름에 달 가듯이’ 인생길을 가는 나그네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님아, 강을 건너지 마라(公無渡河)’고 사랑에 울 것입니다.

 

(2023.4.8)

 

< 2 >
 
 꽃과 돌
 

 

대부분 철쭉은 5월초에 피는데 ‘서감’철쭉은 조금 늦게 핍니다. 철쭉이 피니 평소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던 조경석이 꽃과 조화를 이뤄 아름답게 보입니다. 주변 환경이 참 중요합니다. 사람도 저 혼자만 잘 난 것이 아닙니다. 조직생활에 있어서는 협업하는 동료들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집안의 내력이나 전통, 부모형제의 인격과 됨됨이 등이 그 사람의 평가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웃과 동료, 가족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023.6.1)
 

 
수석을 보고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짐을 느낀다면 낚시를 하면서 기다림의 철학을 배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매끄럽고 단아한 모습은 고상하고 품위가 있어 보입니다. 비록 생명 없는 것이지만 자연은 어디서나 우리에게 의미를 전해줍니다. 돌은 말합니다. “들뜨지 말고 나처럼 조용하고 차분하라!”
 
 

 
색깔이 아름답습니다. 평소에는 흐릿하고 밋밋한 것이 비에 젖으니 생기가 돌고 황홀한 색을 내보입니다. 이 돌은 내면에 과연 어떤 에너지를 품고 있을까. 겉은 허술해 보여도 알고 보면 진국인 사람. 이런 돌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바다에 뜬 바위섬입니다. 깎아 지른 듯한 절벽과 계곡이 보입니다. 독도, 백도, 홍도만이 섬인가요. 대자연을 축소하고 있는 조그마한 돌 하나에서 푸른 동해 바다를 떠올립니다.
 
 

 
둥근달이 떴습니다. 온화하고 우아하게 보입니다. 그 품성이 누군가를 닮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돌 하나가 사랑을 손짓합니다.

 

2023.7.3

 

 

"누군가에게 열흘이라도 피는 꽃이 될 수 있다면 그 삶은 그저 그런 삶이 아니다. 시시한 삶이 아니다."

 

꽃말이라는 것이 있다. 정열, 사랑, 감사, 소중함, 추억 꽃에 꽃말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각자 붙어 다니는 말들이 있으면 좋겠다. 짧은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는 즉시 시들어 사라져 버리는 꽃.

 

저 작은 존재가 열흘이나 행복감을 주고 떠나니, 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에 충실한 것 아니었는가.

 

< 천지수 / ‘책 읽는 아틀리에’중에서 >

 

 

<  3  >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루에도 몇 번 정원의 꽃과 나무들을 둘러봅니다. 오늘은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돌 하나를 바라보며 무늬가 그런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아름다움의 ‘발견’입니다. 최근 읽은 책에 나온 ‘프랙털’ 개념 덕분입니다.

 

 

프랙털 지수 1.4

 

아름다움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개념 중 ‘프랙털 지수’라는 것이 있다.

 

하얀색 도화지가 있다고 치자. 그것은 완전한 규칙의 상태다. 프랙털 지수로는 1이다. 여기에 검은색 볼펜으로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불규칙성이 점점 늘어난다. 프랙털 지수가 1.1, 1.2, 1.3으로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주 새카맣게 되어서 더 이상 낙서를 할 수 없는 완전한 불규칙의 상태가 되면 프랙털 지수가 2가 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프랙털 지수 1.4 정도의 적당하게 불규칙한 상태라고 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자연을 보자. 자연은 가까이서 보면 아주 불규칙한 모습이다. 돌과 바위의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고, 나뭇가지의 모양도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조금 더 멀리서 자연을 바라보면 규칙성이 있다. 대부분의 나뭇잎 색상은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의 색깔인 녹색으로 통일되어있고, 나무줄기는 땅에서 시작하는 부분이 가장 굵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가늘어진다는 점이 동일하다. 나뭇가지는 본가지가 올라가다가 옆으로 잔가지가 뻗어 나가고, 그 잔가지에서 더 가느다란 잔가지가 옆으로 빠져서 뻗어 나간다. 이러한 규칙들이 있기에 자연은 조화로워 보인다. 줌인해서 쳐다보면 불규칙하지만 줌아웃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규칙이 보인다. 그렇게 프랙털 지수 1.4의 적절한 불규칙성이 만들어진다.

 

유현준 / ‘인문건축기행’(을류문화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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