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수석)과 나무, 정원

김산 선생님을 만나다

송담(松潭) 2023. 5. 29. 10:46

김산 선생님을 만나다

 

 

 

 지인의 소개로 김산 선생님 내외분께서 우리집 정원에 자연석을 배치했습니다. 여덟 군데에 배치가 완료되었는데 하나하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저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정원의 품격이 높아져 신나고 흥분됐습니다. 돌 값과 시공비용을 따지면 그분들은 제에게 보시(普施)한 것이었고 저는 갑자기 귀인(貴人)을 만나 들떴습니다. 

 

그분들은 일반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수십년간 강의와 사회활동을 한 철학 전공자였습니다. 특별한 이력을 가진 그분은 ‘수석 박물관’을 설립할 목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수석을 채굴하고 수집해 왔으며 돈보다는 수석. 흙과 함께 사는 자연주의자였습니다.

 

어제 저녁 9시 반에 잠들어 새벽 2시에 일어났는데 지금까지 잠을 이루고 못하고 있습니다. 밤에 비가 조금 내려 수석에 그려진 그림이 궁금합니다. 설레인 마음으로 빨리 동 트기를 기다립니다. 김산 선생님 내외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4.7 새벽)

 

 

< 1호 : 태산(泰山) >

 

산등성이가 힘차게 치솟는 거산(巨山), 이름하여 태산(泰山)입니다.

 

 

 

< 2호 : 정숙한 여인>

 

온화하고 단정합니다.

 

 

소나무 옆에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 3 호 : 산맥(山脈) >

 

 중첩된 산야는 산맥을 이루고, 수 갈래의 계곡을 만들었습니다. 돌 하나 앞에서 장엄한 산맥을 볼 수 있는 것은 ‘신(神)의 눈’을 가진 것과 다를 바 아닙니다.

 

 

 

< 4호 : 노을 >

 

타오르는 노을이 바다 주변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 섬에 가면 밀밭길을 걷는 나그네가 있을 것입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나그네 / 박목월 >

 

 

 

 

< 5 호 :  묵언 >

 

 

 

- 침묵이란 - (스님의 묵언)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삿된 것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침묵이요 묵언이다.
 
돌에서 침묵을 배우다.
아무때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물을 만나야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는 돌 한점의 모습.

한점의 돌과 대화 하는 경지까지 도달하셨네요.
맞습니다. 삼라만상 그 어떤 대상하고도 도달 하게 됨은

곧 자신의 속뜰에 꽃밭을 가꾸는 것이요,

근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김산 > 

 

 

 

< 6호 : 흑장미 >

 

윤곽이 장미와 비슷하고 표면 여러곳에 꽃이 피어있습니다.

화단에 장미 꽃잎을 뿌려주며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과 적막감을 나타내는

시(아일랜드 민요)가 있습니다.

 

그여름의 마지막 장미( The Last Rose of Summer)

 

 여름에 마지막 장미 홀로 남아 피었네.

 사랑하는 친구들 모두 잠들었으니

 잠자는 자리위에 장미꽃잎을 뿌려 주리라.

 진실한 가슴들이 시들어 누웠고

 좋은 친구들이 흘러가 버렸는데

 정든 이 모두 떠나면 누가 이 적막한

 세상에 홀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 7호 :  대장군(大將軍) >

 

대문 가까이서 우리 집을 지키는 장군석입니다.

위풍당당하고 근엄한 자세로 세유헌(細遊軒: 우리집 당호)을 지키고 있습니다.

 

 

 

< 8 호 : 어린 호랑이  >

 

호랑이 모습은 아니지만 표면이 호피(虎皮)같고 작은 입석이어서 어린 호랑이라 불러봅니다.

눈오는 날 어느 사냥꾼이 어린 호랑이를 살려주고 하산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표범이 아니라,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호랑이였다. 콧등에서 꼬리 끝까지, 남자가 양팔을 한껏 펼친 길이만 했다. 다 자란 표범 정도의 크기. 새끼 호랑이라기엔 너무 크지만, 아직은 어려서 혼자서 사냥하지는 못하는 놈이다. 하얀 털로 폭신하게 뒤덮인 둥근 귀를 움찔거리며, 어린 호랑이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사냥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분한 노란색 홍채는 겁을 먹지도 화가나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이라는 존재를 본적이 없는 게 분명했고, 그래서 이 이상한 형상의 등장에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다. 사냥꾼은 활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사정거리 안에 있는 호랑이와 마주친 건 지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호랑이를 죽이면, 최소 3년은 넉넉히 먹을 음식을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땅 한 뙈기까지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의 아이들은 안전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친 바람이 그의 귓가에서 아우성을 쳤고, 남자는 활과 화살을 아래로 내렸다. 호랑이가 널 먼저 죽이려 들지 않는 한, 절대로 호랑이를 죽이지 말아라.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어린 호랑이는 마을의 강아지처럼 겁먹은 듯 뒷걸음질 쳤다. 짐승이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사냥꾼 역시 뒤돌아서서 점점 굵어지는 눈발을 뚫고 발걸음을 뗐다. 고작 한두 시간 만에 눈은 그의 종아리 반절까지 푹푹 잠길 만큼 쌓여 있었다. 남자는 산신령을 향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영물을 놓아주었으니 저도 무사히 내려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김주혜(박소현 옮김) / ‘작은 땅의 야수들’중에서

 

 

오늘 정원석을 배치하면서 정원의 미학을 제가 배운대로 배치하였으나 조금은 부족한데 좋게 봐 주시니 제 마음뜰에 연한 진달래들이 봄바람에 한들한들 춤추게 합니다. 제 집사람이 정원석 배치한 것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있노라니 제 마음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에 취해 봅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마다 그 정성과 땀방울이 지금의 정원을 만들었겠지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국장님께서 삶의 정의란 하루하루가 아름답다라고 말씀 하신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 합니다. 삶의 목적은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햇살 한줌으로 새벽이 밝아오고 하루가 다르게 푸른 물결이 아우성치는 산과들. 국장님께선 옆에 모든 것을 갖추고 살아가시니 그 자체가 즐거움이요,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국장님 댁에서 나무와 정원석과 꽃들이 영글어가는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늘 아쉬움이 밀려가고 그리움이 밀려오는 그런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산 >

 

 

 

< 참고 자료 > 

 

철학과 미술의 공통점

 

 

철학과 미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들이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고? 미술은 언어 예술이 아닌 시각 예술이라서 우리에게 '생각' 보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미술을 볼 때 생각에 잠깁니다. 작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제목을 보고, 작품을 다시 보고, 찬찬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작품을 눈에 담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서는 엄청난 이야기가 뻗어나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미술관에서 생각을 합니다. 철학자의 잠언을 곱씹으면서 생각에 잠기듯 미술가의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그림은 대체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좋은 생각의 도구가 됩니다. 그림 한 장으로 우리는 머릿속에서 우주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해석하는 순간 누구나 철학자가 됩니다. 이렇게 철학과 미술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유하게 만드는 데 그 아름다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철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논의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모호하게 느껴지는 개념들을 벽돌 삼아 쌓아가는 논리의 성입니다. 벽돌 자체도 쥐기 어려운데 그걸 가지고 엄청난 성을 쌓아놓았죠. 우린 대체로 그 성에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긴 글보다는 짧은 동영상이 우리의 이해를 직관적으로 돕는 시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으로 큰 건물을 지으려고 하다 보니, 소주 반병을 콸콸 들이켜도 없던 두통이 철학책을 펼치면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거죠.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얘기가 아닌데 소통 방식에서 크게 감점을 당하는 게 철학입니다.

 

그런데 미술이라는 눈에 보이는 스위치를 통해 우리가 머릿속에서 철학적인 집 하나를 지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스위치로 인해 집짓기가 좀 더 쉽고 재밌어지지 않을까요? 회색으로 느껴지는 철학에 온갖 색이 반짝이는 미술이 겹쳐지면 철학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이진민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중에서

 

 

김산 선생님께

 

 

 

비가 내리니 어제 선생님께서 대문옆에 설치하신 수석들이 빛을 발했습니다. 

대문을 지키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돌이어서 급하게 안으로 모셨습니다.

 

이 돌을 볼 때마다 마음에 듭니다. 이름을 선비 ‘사(士)’로 지었습니다.

뾰쪽한 삼각형 형태는 기개(氣槪), 즉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보여줍니다.

제가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2023.4.18)

 

 

 

2023.5.11 김산 선생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제2호 '정숙한 여인'가까이에 배치하고 이름을 '작은 아씨'라 지었습니다.

 

 

실내에 호피석을 한 점 놓아 주셨습니다.

작은 수석이지만 좋은 기운이 가득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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