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44

12월의 첫날에(2018.12월)

12월의 첫날에(2018.12월)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

전원일기 2021.12.01

가을 하늘처럼

가을 하늘처럼 작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세대에 사상초유의 경험이다. 방역, 마스크 착용 일상화, 거리두기, 영업제한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제한 받고 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가운 소식까지 들린다. 코로나 상황은 이러하지만 개인적으론 2년여 기간 동안 각종 모임이나 술자리를 거의 갖지 못해 낭비적 지출이 거의 없었다. 대신 책을 읽는 시간이 어느 해 보다 많아 올해는 도서 구입비가 70만원 이상 들었다. 평년 보다 독서량이 두 배로 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긍정적인 것은 지난 7월 1일자로 고1 때부터 52년 동안 피운 담배를 끊었다. 지금까지 4개월 되었는데 어떤 친구는 확실히 금연이 되었는지는 술을 마..

전원일기 2021.10.31

2021 여름

2021.6.18 꽃 속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갓 피어난 것이어서 그런 것인지 속이 참 깨끗하고 맑습니다. 아름다움에 더하여 연하고 순수한 빛깔이 마음까지 밝게 해 줍니다. 이처럼 맑고 고운 순간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으면 합니다. 전원생활이 힐링인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을 맞는 것입니다. (2021.6.27) 뒷산에서 가져 온 죽은 나무토막을 화분위에 올리니 목부작이 되었습니다. 백일홍꽃을 위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꽃 속에 또 다른 작은 꽃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피어 있습니다. 작은 꽃들은 엄마꽃 품에 안긴 새끼 꽃들인가요? 자세히 보면 뭔가 새로운 것들이 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나리도 활짝 피었습니다.(2021.6.27)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

전원일기 2021.07.21

마음속의 잡초

마음속의 잡초 무슨 중요한 시험을 치르러 고사장에 갔는데 시간 내에 교실에 입실하지 못했다. 마음이 황급하여 교실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어떻게 해서 입실을 하게 되었다. 시험은 커다란 밥상에 여러 가지 음식이 가득 차 있었는데 각각의 접시에 담긴 음식물을 보고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 음식 소스의 원산지는 어디며 무엇에 효용이 있는가? 하는 식의 문제였다. 그런데 아무리 문제를 풀려고 해도 한 문제도 풀 수 없었다. 시작부터 내내 초조하며 안절부절 애를 태우고 또 태우다가 시험시간이 종료되고 말았다. 수험생들이 모두 교실을 떠나고 나홀로 남아 절망하며 울었다. 꿈이었다. 일어나 보니 새벽 3시였다. 꿈이 하도 선명하고 기분 나쁜 꿈이어서 더 이상 잠을 청하지 못했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샤워..

전원일기 2021.05.23

2021 봄

2021 봄 며칠 전 뒷산에서 뿌리가 붙어있는 고목을 캐와 페인트로 단장하여 꽃밭에 배치했습니다. 뿌리가 붙은 것을 연리근(連理根)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나무박사 우종영박사의 연리지에 대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 서로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부르는데, 두 나무의 뿌리가 이어지면 연리근(連理根), 서로의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라고 일컫는다. 연리지 현상이 일어나면 처음에는 그저 가지끼리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맞닿은 자리가 붙어 한 나무로 변한다. 땅 아래의 뿌리는 둘이면서 지상에 나온 부분은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거다. 연리목은 가끔 만날 수 있지만 가지가 붙은 연..

전원일기 2021.04.28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상상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상상 전원생활을 하면 텃밭에서 나온 채소를 말려서 보관하기도 한다. 주로 고구마순, 표고버섯, 도라지, 호박, 무말랭이 등이다. 이런 것들은 동내 원주민들로부터 구입해서 말린 것도 많다. 그래서 비닐봉지에 넣은 그것들이 봉다리 봉다리 집안 곳곳에 쌓여있다. 집안을 투시해 보면 어린이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식량주머니가 쌓인 개미집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도 말려서 보관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가을 캔 무를 신문지에 싸고 창고에 보관했는데 엊그제 강추위에 무가 약간 얼어 버리기 전에 잘게 썰어 말리고 있다. 건조대 위에 네모난 용기안에 있는 무를 보면서 집사람이 참 '매시랍다'는 생각을 했다. ‘매시랍다’의 사전풀이는 ‘손끝이 야무지고 하는 일이 깔끔하다’는 뜻이다...

전원일기 2021.01.29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영미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셸리Percy B. Sholey의 시 의 저 유명한 마지막 구절쯤은 기억하리라,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If winter comes, can spirg be far behind." 이 시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읽힌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춥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따뜻하고 화사한 나날들이 닥쳐오리니, 그때가 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통상적인 의미와 반대로 해석할 때, 시는 훨씬 더 심오한 의미 맥락을 획득하게 된다고 주장하려 한다. 가령 초점을 미래의 봄을 기다리는 희망에서 현재의 겨울을 안타깝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꿔보라. 그러면 시의 전체 의미는 다음과 ..

전원일기 2021.01.18

다도(茶道)를 생각해 보며

다도(茶道)를 생각해 보며 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2013.11.19 새벽에 일어나면 가끔 녹차를 마신다. 나에게 녹차는 그냥 몸에 좋은 음료 정도이다. 녹차의 효능을 검색해 보면 녹차는 암을 막아 주고 몸속에 쌓인 나쁜 것들을 없애 주며, 비타민, 무기질, 아미노산 같은 좋은 성분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효용성과 녹차가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된 차라는 믿음으로 차를 마신다. 다도(茶道)를 지켜 마시지 않고 머그컵에 평소 물 마시 듯 마신다. 다도(茶道)에 따라 차를 마시는 일은 선(禪)이요 수행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구(茶具) 한 세트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고 장식용으로 거실에 놓여 있다. 그리고 차의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혀끝에서 느끼는 아주 미세한 감각의 차이와 차..

전원일기 2020.11.27

2020 가을(9~11월)

2020 가을(9~11월) 모처럼 새벽에 순천만습지를 다녀왔다.(2020.9.27) 전원에 살다보면 가끔 일부러 일거리를 만든다. 작은 꽃밭에 놓인 돌들을 재배치했다. 난타나꽃이 피었다. 작은 꽃밭의 이름을 '탄생의 꽃밭'이라 이름지어 본다. 곳곳에 돌들이 알을 품고있기 때문이다. 장소에 이름을 지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전원생활의 즐거움이다. 아침에 뒷산에 올랐다. 마을 앞 상사호가 보인다. 안개인지 구름인지...(2020.9.28.) 오늘 새벽에는 순천만국가정원을 찾았다.(2020.9.29) 아름다운 정원도시 순천이다. 일찍 핀 코스모스, 아침에 동내 한바퀴 돌면서.... (2020.9.30) 침묵 / 이해인 맑고 깊으면 차가워도 아름답네 침묵이란 우물 앞에 혼자 서 보자 (...생략...) 말을..

전원일기 2020.11.08

2020년 여름

2020년 여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니 이제는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밖에 나가 술자리도 가졌는데 올해 들어 거의 술자리를 갖지 못했으니 따분해졌나 봅니다. 어제가 하지이고 이제 초여름인데 더위가 너무 빨리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서울이 35도가 넘는 폭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위를 받아드리고 순응하는 글을 접했는데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글을 쓴 유명 작가가 아직 옥탑방에서 살고 있고 에어컨도 이제야 장만하겠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더위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에어컨 아래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스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옥탑방 물탱크 (...생략...) 이제 막 하지가 지났다. 하지. 태양이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은 때. 일 년 중 낮이 가..

전원일기 202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