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이웃집의 김장 축제

송담(松潭) 2022. 12. 10. 12:41

이웃집의 김장 축제

 

 


길가에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앞집 노인회장님댁에서 김장을 담는 날입니다. 시내 사는 아들 내외, 두 딸과 사위들이 모여서 많은 양의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지금은 한참 양념을 버무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댁은 핵가족 시대에 보기 드물게 가족 간의 훈훈한 정이 살아 있는 집입니다. 그분들은 틈만 나면 수시로 모여 가족 이벤트를 갖습니다. 얼마 전에는 회장님의 팔순을 맞아 가족들이 제주도에 갔고 복장까지 통일해서 재미있게 놀고 왔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 외지에서 들어 온 집들은 거의 두 부부만 단출하게 살고 있는데 회장님 댁의 시끌벅쩍하고 정감이 있는 삶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친구 박형하가 이해인의 ‘12월의 노래’라는 시를 읽고 평한 글이 떠오릅니다. ‘김장은 배추에 온갖 양념들이 들어가 버무려져 맛있는 김치로 숙성됩니다. 우리네 인생도 성취와 좌절, 노력과 나태, 용서와 분노, 사랑과 증오, 여유와 빈곤, 배려와 무관심, 고마움과 서운함 같은 온갖 감정들이 버무려져 숙성됩니다.’

친구의 지적대로, 우리의 삶이 이럴진대 저처럼 조용조용 사는 것도 좋지만 버무리고 부대끼고 어울리는 삶도 생의 활력을 불어넣어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 가족들이 모두 모여 ‘김장축제’를 하고 있는 회장님 댁. 그 오순 도순한 풍경은 아름답고 즐거운 삶이 무엇인가를 저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2022.12.10)

 

 

 

12월의 노래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 말을 많이 했던
빈 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 날을 잊어 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고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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