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지교헌 / ‘진리의 주체는 인간이다’(교음사)중에서

송담(松潭) 2022. 11. 3. 16:20

 

 

< 1 >

 

 

공자도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나는 아는 것이 없다’(吾有知超乎酸아 無知也)고 말하고 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른다’ (知者不言 言者不知)고 하였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왜 ‘모른다’고 말하고 노자는 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을까? 사람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사물은 결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나 많다. 글은 사람의 말(言)을 다 나타내지 못하고 말은 사람의 뜻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뜻은 사물의 본질과 실체를 다 나타내지 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도 비슷한 경우라고 보인다.

 

성인들이 '모른다'고 말한 것은 음식물이나 약물과 같은 비근한 경우를 훨씬 초월하여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기본을 말한 것이지만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의 원리에 연관되어 있다. 하늘을 보고 땅을 살피는 것이 관찰(觀察)이고 지극한 지혜는 격물(格物)에 있다고 할 때 구체적인 형이하학적 사물로부터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원리가 도출되는 것은 다시 말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 2 >

 

 

『論語』에는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요 도가 사람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 『論語』衛靈公)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모든 진리는 진리 그 자체가 주체(主體: Subjectivity)가 아니고 그것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인간이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이 신앙하는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들이 추구하는 모든 진리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지 사람이 그 종교에 얽매여 지배되는 것은 아니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주체성이 침해되고 상실된 상황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동네북이 된 한국의 유교문화'는 한국의 유교가 한국의 민족문화발전에 크게 공헌한 바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역기능적이고 전근대적 잔재가 노출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것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김경일 1999 바다출판사)는 주장이 주목을 끄는 것을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유교가 비판을 받는 것은 비단 유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철학과 이념이 시대적 추이와 사회적 변화에 따라 개인과 사회와 국가라는 범위를 초월하여 새로운 문제를 맞이하게 되고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2021. 02. 02.)

 

 

< 3 >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에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鐘自期)의 만남이 소개되어 있다. 백아는 거문고를 잘 뜯었는데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는 '좋구나, 태산처럼 높고 크도다'라고 하고, 백아가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는 '좋구나, 장강과 황하처럼 광대하도다'라고 하였다. 종자기는 백아의 악상(樂想)을 그대로 알아차리고 감상하였던 것이다. 하루는 백아가 태산의 북쪽 기슭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마음이 울적하여 거문고를 뜯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치 부슬비 내리는 것처럼 가볍고 느리게 연주하다가 나중에는 마치 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무겁고 급하게 연주하였는데 종자기는 그때그때 백아의 마음을 그대로 알아차렸다. 이리하여 백아는 거문고를 내려놓고 '좋구나 좋구나, 그대는 나의 곡조를 들으면 나의 마음까지도 함께 듣는구나. 나의 거문고는 그대의 상상을 벗어 날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백아의 연주를 들으면 백아의 악상까지 그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종자기는 먼저 죽고 말았다.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그토록 깊이 이해하고 감상하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음(知音)이니 지음인(知音人)이니 하는 말은 두 사람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며 의기가 상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 4 >

 

 

한유가 말하는 스승이란 마치 공자(孔子; BC 551-BC 479)가 장훙(萇弘)이나 노담(老聃)이나 담자나 사양과 같은 사람에게 업(業)을 묻고 예(禮)를 묻고 관명(官名)을 묻고 거문고를 배운 것처럼 무엇이든지 나보다 잘 알고 도를 깨우친 사람은 모두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를 말한 공자의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다. 세 사람이 길을 가거나 일을 하거나 반드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따라 배울 것이요, 실수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단점을 고칠 것이니, 다시 말하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도 나의 스승이요, 나보다 못한 사람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남이 나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남을 보고 본받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 5 >

 

 

"복은 청검에서 나오고 덕은 자기를 낮추는 데서 나온다.”(福生於淸儉 德生於卑退)라는 말이 있다. 내가 좀 더 청렴하고 검소하면, 그리고 좀 더 겸손하면 복도 받고 존경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이나 전설이나 속담이나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인격수련에 관한 비슷한 금언(金)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을 읽고 듣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내면화(internalization; characterization)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인간관계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오면 여지없이 남의 탓으로 돌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악연(惡緣)으로 치부하고 말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악연은 마치 자기의 책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불가항력적이고 숙명적인 것으로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악연이라고 판단되는 인간관계는 곧 자신이 지은 인간관계 업보라는 것과 좋은 인연이라는 것은 내가 스스로 지어야 하는 것이요, 남이 지어주거나 어느 초월자가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6 >

 

 

『대학』전9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군자는 자신이 갖추어야 할 것을 먼저 갖춘 후에 남에게 갖추기를 바라고, 자기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린 후에 비로소 남이 버리지 못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다.……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군자란 흔히 말하는 인격자나 지도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남보다 먼저 인격을 수련하고 나서야 남에게도 인격수련을 바라고 자신이 남보다 먼저 고칠 것을 고치고 나서야 남의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본위의 사고와 판단으로 타인을 비판하며 자기도 같은 아집(我執)을 가지고 행사하면서 남의 고집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지성인의 바람직한 인격이 아니며 바람직한 리더십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고 자신의 과오나 단점은 고치지 않은 채 타인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하기도 하고 비판하는 수가 많다. 가정에서는 아비가 게으르고 근신하지 않으면서 자식의 성공을 기대하고 직장에서는 윗사람이 게으르면서 아랫사람의 근면이나 충성을 기대하고 정치인들이 사리사욕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국민이 지지해 주기를 바라고 나라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에 속하는 것이다.

 

특히 교육자들은 모든 것이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기 쉽기 때문에 삼가고 삼가야 한다.

 

 

< 7 >

 

 

극락전은 아미타전(阿彌陀殿)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부르는데 서방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법당이다. 세상의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지혜문을 대표하여 중생을 삼악도(三惡道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에서 건지는 무상의 힘을 가졌다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협시보살로 모신다. 아미타전은 극락정토 왕생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인지 대웅전 (大雄殿)에 견줄 만큼 화려하다. 불단은 꽃무늬와 비천(飛天)으로 장식되고 주불 위에는 천개(天蓋)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이나, 극락조 등을 조각하여 장식한다. 대웅전이 없는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안양교, 안양문, 안양루를 갖추기도 한단다. 송촌선생은 극락전에 들어가 아미타불 정면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절하고 나와서 극락전 왼쪽 뒤편으로 자리 잡은 삼성각(三聖閣)으로 향하였다. 삼성각은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모시는 당우이다. 삼성신앙은 불교가 한국에 토착화하면서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삼성을 따로 따로 모실 때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으로 각각 부른다.

 

산신은 나이 많은 도사(신선)의 모습과 호랑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도사는 인격신이고 호랑이는 화신(化神)으로 알려져 있다. 독성은 천태산(天台山)에서 홀로 선정(禪定)을 닦은 나반존자를 가리키는데 독수성(獨修聖)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칠성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컫는 북두칠성이다. 칠성신앙은 본디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한 것인데 대개는 손에 금륜(金輪;금으로 만든 윤보)을 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北極星)를 주존으로 하여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협시로 두고 있다.

 

 

< 8 >

 

 

문득 '인생칠십고래희'라는 글귀가 뇌리를 스쳤다.

 

조회일일전춘의(朝回日日典春衣)

매일강두진취귀(每日江頭盡醉歸)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

 

중국의 시성(詩聖)이라고 추앙을 받는 두보(杜甫; AD 712-770)가 당나라 현종(玄宗)이 양귀비(楊貴妃)와 노닐던 곳으로 알려진 '곡강(曲江)'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라고 한다.

 

날마다 조회(朝會)를 마치고 돌아와 곡강을 거닐다가 봄옷을 저당하고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고, 그러면서 ‘술 빚은 언제나 가는 곳마다 있는 일이지만 인생이 70을 사는 사람은 예로부터 드물었다.’고 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꿀을 빠는 호랑나비가 보이고 물 위에 꼬리를 담그는 잠자리가 날고 있는 풍경을 보며 그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하고 잠시라도 어긋나지 말고 서로 즐기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穿花蝶深深見 點水鯖妖款款飛 傳語風光共流轉暫時相賞莫相違).”이른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물다고 한 두보는 59세에 서거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두보는 왜 인생 칠십을 지적하였을까. 나처럼 늘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을까,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는 곡강을 거닐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달았을지 여러 가지로 짐작되지만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느낀 듯도 싶다. 그 무상과 허무를 즐기기 위하여 그는 매일처럼 조회에서 돌아와서는 옷을 잡히거나 아니면 외상으로 술을 마시고 이심전심으로 곡강과 마음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는 인심을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하고 천하를 걱정하면서 시를 썼다고 전한다. 그의 술잔 속에는 사사로운 욕이나 간교한 술책이나, 교만이나, 아부라곤 없는 아름다운 선비의 넋이 넘쳤을 것이었다. 과연 두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나의 뇌리에는 20여 년 전에 찾아갔던 두보초당(杜甫草堂)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 9 >

 

 

나는 『논어』를 읽으며 음악[樂]에 관한 글귀를 발견한 지 오래이다. 공자는 “입어시 흥어예 성어악"(立於詩 興禮於 成於樂;『泰伯篇』) 이라는 말을 하였다. 사람이 어렸을 때 공부를 시작하면 우선은 문자를 해독해야하겠지만 시(詩)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까다롭고 어려운 문장보다는 간략한 시를 읽고 외우고 감상하는 것이 좋은 학습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하여 학문의 세계를 알게 되면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원리로 인정되는 이른바 예(禮; 예절, 예법)를 익힘으로써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올바르게 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이른 바 처세하는 요령이기도 한 것이다. 이리하여 학문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면 인생을 조화(調和)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악(樂:풍류)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악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서만 흥얼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수준이며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여러 가지 행사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통한 조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시를 읽고 예를 행하고 악을 통하여 조화를 이루면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과 국가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 10 >

 

 

고대나 중세나 현대나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국제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원만하고 평화롭고 우호적인 국제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와는 상반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경제적인 교류도 불가능하여 백성들은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국제관계의 긴장으로 군비를 확장해야 하고 만일 외국의 침략을 받게 되면 경제는 파탄하고 백성은 신음하고 죽어야하며 나라는 망하게 될 위험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국제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국방을 강화한다는 것은 국가경영 또는 국가발전의 기초이고 근간이고 원동력인 것이다.

 

국가와 국가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이상적인 국제관계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맹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말한 것을 상기할 만하다.

 

제선왕이 "이웃나라와 교류하는데 원칙이 있느냐"고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있습니다. 오직 인자(仁者)라야 능히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탕()이 갈()을 섬기고, 문왕이 곤이를 섬겼으며, 오직 지혜로운 자라야 능히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그러므로 태왕이 훈죽을 섬기고 구천이 오()나라를 섬겼습니다.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낙천(樂天)이요, 작은 나라로서 큰나라를 섬기는 것은 외천(畏天)입니다. 낙천자는 천하를 보유하고 외천지는 그 나라를 지탱하나니 시경(詩經)에 이르되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그 나라를 유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교린국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기본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맹지는 인자(仁者)의 교린국과 지자(知者)의 교린국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자는 자기보다 힘도 약하고 작은 나라를 잘 섬기고, 지자는 자기나라보다 힘도 강하고 커다란 나라를 잘 섬김으로써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낙천(樂天)과 외천(畏天)진리가 차이를 드러냄이 없이 국제평화와 보국안민 기본임을 알 수 있다.

 

맹자가 살던 시대는 중국의 역사를 통하여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해당하며 천자국과 제후국으로 구별하여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같은 제후국이라고 하더라도 강대국과 약소국으로 차이를 나타내므로 그 형편에 따라 국가의 정책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로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외천하는 것이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낙천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이상적이고 윤리적인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농장이 황폐하는가 하면 인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그 주민들은 인접국으로 피난하기에 바쁘고 서방의 자유민주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하여 군대를 파견하기도 하고, 많은 군수물자를 지원하며 성금을 모아 보내기도 하고, 국제연합의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하여 적당한 조치를 취하면서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여러 가지 국제적 제재를 강구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남한(대한민국)은 1950년부터 1953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멈추게 되자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긴장상태가 계속되었고 한편에서는 핵무기와 각종 유도탄을 개발하여 그 성능을 시험 중에 있으며, 남북관계는 긴장일로에 있다. 또한 이러한 와중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대응조치가 강화되려는가 하면 러시아와 중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국가 진영과의 긴장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밖에도 중일관계와 중미관계도 긴장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국제연합의 활성화에 따라 지역적인 분쟁은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국제연합의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어 여러 우리 결과를 거쳐 평화를 위한 대책이 권고되고 있으나 그것이 쉽사리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처지에 있고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 완전한 국제평화는 좀처럼 달성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맹자( BC 372-BC 289)는 중국의 전국시대(BC 475-221)에 살았던 2300여 년 이전의 인물이지만 국제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철학을 역설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정치이론은 인류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변천에 따라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는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현대의 모든 정치지도자들은 그것을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외면하고 배격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국가를 통치하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며, 지구촌의 평화와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철없는 어린이들의 싸움과 같은 국제적 분쟁이 함부로 재연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022.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