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유현준 / ‘인문건축기행’(을류문화사)중에서

송담(松潭) 2023. 7. 22. 20:33

 

 

유현준 / ‘인문건축기행’(을류문화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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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테크 건축

 

 

‘퐁피두 센터’ 디자인을 처음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나도 학창시절 이 건물을 보고, 짓다 만 창고 같은 이 건축물을 왜 그렇게 칭찬하는지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축물의 외관은 우리가 흔히 공사 현장에서 보는 쇠 파이프로 만들어진 건설 보조 설비들처럼 보인다. 그뿐 아니라 한쪽에는 각종 설비 파이프라인들이 노출되어 있다. 마치 피부가 벗겨진 채 내부의 근육과 핏줄과 뼈가 다 노출된 인체 해부 모형 같은 건축물이다. 이렇게 건축물의 구조체와 기계 설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스타일을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한다. 철골 구조체가 그대로 드러난 ‘에펠탑’도 큰 의미에서는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리에 ‘에펠탑’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파리 시민들이 싫어했던 것처럼 1977년에 ‘퐁피두 센터’가 처음 지어졌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에펠탑’이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듯 ‘퐁피두 센터’ 역시 프랑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현대 건축물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1위는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Notre-Dame du Haut, Roncham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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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피라미드

 

 

1980년대에 프랑스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주요 건축물의 설계를 국제 공모전을 통해 선정했는데, 그중 중요한 프로젝트가 ‘루브르 박물관’ 증축이었다. 파리는 로마 식민 시대 때 만들어진 병참 기지로 시작되었는데, ‘루브르궁’이 있던 자리에는 12세기 후반에 북쪽의 침략을 막기 위한 성곽이 구축되었다. 훗날 그 자리에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의 전신인 ‘루브르궁’이 건축된 것이다.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 가면 12세기에 만들어진 성곽의 유적을 볼수 있다. 17세기에 들어서 태양왕 루이 14세가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파리 외곽에 '베르사유궁'을 건축하고 왕궁을 ‘루브르궁’에서 ‘베르사유궁’으로 옮겼다. 이후 ‘루브르궁’은 왕실의 여러 예술 작품을 보관하는 보물 창고 역할을 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4년 후인 1793년에 왕실의 보물 창고였던 ‘루브르궁’이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지금의 세계적인 박물관이 되었다.

 

1980년대 ‘루브르'는 넘쳐나는 컬렉션 때문에 더 많은 전시 면적이 필요했고 1981년에 건물 증축을 위해 국제 공모전을 열었다. 이 역사적인 건축물의 해결책으로 페이는 가로 110미터 세로 220미터 크기의 ‘루브르 박물관’ 중정에 가로 35미터, 세로 35미터, 높이 22미터 크기의 ‘유리 피라미드’를 만드는 계획안을 출품했다. 

 

루브르의 다보탑과 석가탑

 

사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대단한 건물이라기보다는 지하로 증축된‘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현관문일 뿐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이 마당 중앙에 위치한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야 한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댄 브라운Dan Brown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를 통해 일반인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다빈치 코드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루브르'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유리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페이가 ‘루브르 박물관’에 만든 '유리 피라미드’는 총 두 개다. 하나는 위로 솟은 전통의 '피라미드' 모양이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지면에서는 안 보이게 지하로 파고 들어가 거꾸로 선 ‘유리 피라미드'다. 보는 나는 개인적으로 이 디자인이 흥미롭다. 페이는 왜 양각陽刻의 ‘피라미드’를 짓고 그 옆에 음각陰刻의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나는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전통 사상인 도가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이 음양陰陽의 조화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어야 하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그 둘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태극 문양도 붉은색과 파란색이 서로 소용돌이치듯이 조화를 이루게 디자인된 것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경주 불국사에는 '다보탑'과 '석가탑’ 두 개의 탑이 있다. 이 둘은 디자인 스타일이 완전히 반대다. '다보탑’은 화려하게 장식이 많고 ‘석가탑’은 단순한 미니멀 디자인이다. 이 두 탑은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 대칭으로 놓여 있는데, 이렇게 반대되는 디자인을 병치한 이유는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가 사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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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와 거리가 만드는 권위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전 ‘지구라트’는 제단이 50미터 높은 곳에 위치해 일반인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의 제단을 올려다보게 되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일반인들에게 제단은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느껴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종교의 권위를 만든다. 무언가를 올려다보면 자연스럽게 경외심이 든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에서도 인간은 높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을 올려다보았다. 원시 시대 사냥꾼이 사냥을 나갔을 때 자신보다 큰 동물을 만나면 올려다보게 된다. 이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서 있으면 죽는다. 올려다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자만이 살아남았다. 우리는 그런 도망자의 후예다. 따라서 올려다본다는 것은 경외심과 두려움을 유발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천장에 그림을 그리고 올려다보게 하였다.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봐야 하는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일반적인 벽화보다 더욱 감동적인 이유도 이것이다.

 

사제가 서 있는 제단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것도 신과 제사장의 권위를 높이는 방법이다. 때로는 좁은 공간에 교회를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제단이 너무 가까워 보이는 문제가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시도를 왜곡해서 공간이 깊어 보이게 디자인한다. 예배당 좌석의 뒤쪽은 폭이 넓고 제단 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만들고, 천장도 제단 쪽으로 갈수록 낮아지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예배당의 뒤에서 쳐다봤을 때 10미터 깊이의 공간도 마치 20미터 깊이의 공간처럼 보인다. 좁은 공간이 넓어 보이고, 제단도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만큼 신의 위엄도 높아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가 설계한 밀라노 ‘산 사티로 성당Santa Maria’의 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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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골에 펼쳐진 6월의 노란색 들판을 보니 고흐Vincent vanGogh가 왜 그런 노란색으로 캔버스를 칠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 농가와 프랑스 농가 풍경의 차이는 벼와 밀의 품종 차이가 만든다. 벼는 논에 물을 담고 모내기를 해야 하니 경작지가 수평이어야 한다. 그래서 농지는 수평면이어야 하고 그렇다 보니 경사진 땅의 농지들은 계단처럼 단이 나누어지게 된다. 그렇게 나누어진 땅은 물을 담는 그릇 격인 논두렁으로 명확한 경계가 나타난다. 이 경계선들로 인해 풍경이 자꾸 끊긴다. 하지만 밀농사는 씨를 뿌릴 때 땅에 물을 담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땅의 경사진 모양을 그대로 살려서 농경지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의 농경지는 조각난 수평면으로 되어 있고, 서양의 농경지는 연속된 곡면으로 되어 있다. 곡면의 농지는 햇볕을반사하는 각도가 각기 다르다.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더욱 역동적인 빛의 향연이 되었을 것이다. 세잔이 활동했던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아를 지역도 모두 이와 비슷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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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대포

 

 

‘롱샹 성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절제된 빛의 효과는 르 코르뷔지에가 예배당을 디자인할 때 중요시하는 요소다. 다른 일반적인 수도원처럼 '라 투레트 수도원'도 예배당이 한쪽 면을 차지한다. 자동차로 '라 투레트 수도원'에 진입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 덩어리가 이 예배당 건물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콘크리트 상자인데, 눈에 띄는 장식적 요소가 보인다. 다름 아니라 각기 다른 각도로 기울어진 콘크리트 굴뚝이다. 이 세 개의 굴뚝은 사실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천창이다. 이 천창은 예배당 내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세 개의 천창을 굴뚝처럼 길게 뽑고 각각의 기울기를 다르게 했다. 마치 기울기를 변화시킨 대포 같다. 그래서 이 굴뚝 모양의 천창은 '빛의 대포'라고 불린다. 실제로 그 대포를 통해서 빛이 예배당 내부로 쏟아져 들어온다. 밖으로 쏘는 대포가 아니라 외부의 빛을 내부로 쏘는 대포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 대포 내부와 제단 천장과 벽체에 빨강, 노랑, 파랑의 색이 칠해져 있다. 만약에 모양과 각도가 동일한 천창을 세 개 뚫었다면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효과도 동일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대포가 기울어진 것처럼 천창이 각기 다른 각도로 기울어져있기 때문에 해의 위치에 따라 각기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가 다르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에 갔을 때는 동쪽으로 기울어진 첫 번째 천창이 가장 밝게 빛나지만 오후 3시에 가면 두 번째 천창에서 빛이 가장 강하게 들어오는 식이다. 그런데 빛의 대포는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길게 뽑혀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각도로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는 아주 짧다. 설사 빛의 대포 꼭대기의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각도가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원통의 내부 벽을 비추어 반사되어 들어온다. 1년 중 아주 특정한 시각과 날씨에만 빛의 대포를 관통해서 직사광선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빛의 대포는 색상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빛의 대포를 통해서 햇빛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공간의 색상이 달라진다. 이렇게 날짜, 시각, 날씨에 따라 각기 다른 빛깔의 공간이 연출된다. 세 개의 빛의 대포는 외부에서 보면 기울어진 굴뚝 같은 장식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내부에서는 시시각각 바뀌는 태양의 변화를 건축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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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대 미술가 올리버 비어Oliver Beer는 “모든 공간은 특유의 소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음악을 전공했던 이 예술가는 공간에서 특유의 울림을 듣는 것이다. 이는 건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타당하다. 각각의 공간은 그 자체로 가로, 세로, 높이의 크기를 가진다. 그리고 그 공간의 마감재에 따라서 독특한 소리 반사율과 잔향이 정해진다. 이런 특징들이 모여서 그 공간만의 특별한 소리를 만든다. 우리의 예민한 귀는 특별한 소리 없이 고요 속에서도 그 공간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특징을 느낀다.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은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가로로 긴 직육면체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마주 보는 긴 콘크리트 벽 때문에 소리의 잔향이 길고 마주 울림과 소리 간섭은 크다. 이러한 공간적 환경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더욱 장중하게 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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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콘크리트 벽면에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박힌 흰색 빛의 점들이다. 콘크리트에 구멍을 내서 빛이 들어오게 한 것이다. 원형 천창은 둥근 해 같고, 사각형 천창은 모양이 바뀌는 달 같으며, 점점이 박힌 흰색 작은점들은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같은 별자리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까지만 봐도 이미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에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배당의 좌석 배치를 보면 르 코르뷔지에가 얼마나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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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회의사당

 

 

돔은 예부터 교회나 왕 같은 종교적 혹은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기위한 건축적 요소였다. 이유는 돔 건축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돔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돔 모양으로 나무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무 구조체 위에 콘크리트나 돌로 돔을 쌓아 올리고 공사가 완료되면 나무틀 구조체를 철거한다. 이렇게 비용이 들다 보니 당대 사회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건축 공간이 돔이었다. 돔의 도시로 유명한 로마에는 '판테온’의 돔과 ‘성베드로 성당'의 돔이 있는데, 고대 로마의 황제나 르네상스 시대 교황 같은 당대 최고 권력자들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후 시대가 바뀌었으나 돔은 계속해서 국회의사당 같은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에 사용되었다. 여의도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도 돔이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 포스터는 돔을 과거 형태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절대 권력의 상징인 돔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경사로를 넣어서 베를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만들었다.

 

'독일 국회의사당'의 몸을 전망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곳에 올라가는 시민들에게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보는 시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에펠탑'처럼 시민이 주인인 사회라는 것을 선언하는 공간이다. 그뿐 아니다.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은 도시만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 있는 국회 회의장도 내려다볼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을 감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치 편의점 주인이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는 카운터 위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국회의원이 졸거나 허튼짓을 하기 정말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여 주는 통쾌한 건축 디자인이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안도 다다오, 루이스 칸 같은 대가의 작품들을 보면 그 완성도에 경외감이 들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도 정말 노력하고 좋은 건축주를 만나면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포스터가 디자인한 '독일 국회의사당'의 회전하는 경사로에 적용된 하이테크 디테일을 보면 ‘죽기 전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절망감이 든다. 그 정도로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려운 기술적 노하우가 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워크맨을 만드는 정밀도로 건축을 한 것 같다. 노먼 포스터나 리처드 로저스 같은 하이테크 건축가가 유독 영국에서 많이 배출되는 이유는 영국이 3백 년 전에 증기기관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국은 산업 혁명을 시작한 나라다. 그러고 보면 근대 과학의 아버지인 뉴턴도 영국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도 반도체와 자동차는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다. 수십 년을 기다리면 우리도 이런 작품을 남기는 날이 올 것이다.

 

‘독일 국회의사당’은 전통적인 돔의 의미는 유지하되, 시민을 위한 전망대의 기능을 넣고, 친환경 기능까지 합친 삼중의 의미를 담고있다. 고스톱으로 치면 ‘일타삼피’의 걸작이다. 개념부터 디테일까지 완벽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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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라는 도시는 118개의 섬이 약 4백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베네치아는 로마 시대 때 해안 지방을 통칭해 부르는 단어였다고 한다. 이 도시는 우선 물 위에 있다는 상황 자체가 흥미롭다. 동남아시아에도 물 위에 지어진 집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도시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베네치아는 도로 대신 수로가 주 교통망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골목과 광장도 있어서 도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도시가 만들어졌을까? 그 역사를 살펴보자. 기원후 2세기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로마 제국은 기존의 로마에 기반을 둔 서로마 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게 된다.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의 관할에 있던 지역이다. 이후 이 도시가 성장한 것은 5~6세기경 로마인들이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서 베네치아로 탈출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들은 외부인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베네치아의 석호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와서 공격하는 훈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말이 들어올 수 없는 물 위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적의 방책이었다. 이렇게 발돋움한 베네치아는 7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에서 독립해 자치적인 도시 국가로 성장했다. 이후 조선업과 해외 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고 그 흔적은 고스란히 건축으로 남아 있다.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보니 수로나 골목길은 미로가 따로 없다. 베네치아의 길을 완전히 외우기는 불가능하다. 덕분에 도시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들이 너무 많은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설계한 '퀘리니 스탐팔리아Fondazione Querini Stampali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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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1997년 : 물고기를 좋은 건축가의 꿈

 

 

프랭크 게리 Frank Gehry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으로 일약 역사에 남을 건축가로 자리매김한 거장이다. 하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그렇게 잘나가던 건축가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자신의 주택을 개조하거나 조명 기구를 만드는 식으로밖에 작품성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가 디자인한 형태가 워낙 파격적이어서 웬만한 건축주들은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게리 건축의 특별함은 형태보다 제작 방식에 있다. 3차원 곡면의 화려한 형태는 바로크 시대부터 있었다. 바로크라는 말은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그만큼 찌그러지고 기이하고 화려한 형태를 추구했던 시절이 바로크 시대다. 그 당시 건축에서 바로크 형식을 표현하는 방식은 대리석을 찌그러진 형태로 깎아서 조각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장식의 형태로밖에 만들 수 없었다.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 수직의 벽과 돔 지붕은 전통적인 형식이고 창틀 장식이아 조각 정도에서만 화려한 형태가 나타난다.

 

나는 게리의 최고 걸작은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콘서트홀Walt Disney Concert Hall'이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건물, 같은 건축가인데 디자인이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점이다. 게리가 '디즈니 콘서트홀 현상 설계에 당선된 시점은 1988년이다. 그때의 계획안은 지금 지어진 것처럼 역동적으로 휘어진 3차원 곡면이 아니라, 층마다 모양이 다른 2차원 곡선의 평면도를 차곡차곡 쌓아서 불규칙한 형태의 건물 덩어리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벽은 모두 수직으로 올라간 단조로운 형태였다. 그런데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술이 발전했고, 게리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성공했던 제작 방식을 적용해서 새로운 3차원 곡면의 '디즈니 콘서트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디즈니 콘서트홀' 디자인의 변화 과정을 보면 게리의 디자인은 기술과 연합해서 계속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게리는 건축 형태를 만들 때 비논리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예술가의 면모가 부각되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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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

1963년 : 빛이 투과되는 돌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물은 차갑고 손으로 움켜잡기 힘들고, 돌은 무겁고 단단하고, 나무는 가벼워서 물에 뜨고, 종이는 구겨지거나 불에 타기 쉽다는 식의 인식이 우리 머릿속에 잡혀 있다. 이러한 물질을 다룬 경험들은 우리의 고정 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물질의 특징들이 가끔 천재 건축가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이전에는 없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고든 번샤프트Gordon Bunshaft가 설계한 미국 예일대학교의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Beinecke Rare Book and Manuscript Library'이다.

 

이 도서관이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빛이 투과되는 대리석 벽 때문이다. 이 도서관은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실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구분하기 위해서 창문 없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책을 보관했다. 그런데 막상 실내 공간에 들어가면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공간을 감싸는 은은한 빛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벽이 얇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벽을 투과한 빛이 실내 공간을 밝히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예전 중국 송나라 시대의 도자기 중에는 촛불이 투과될 만큼 아주 얇게 만들어져 등갓으로 사용된 작품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이 도서관에서는 대리석을 아주 얇게 썰어서 창문의 유리 대신사용하여 대리석을 통해 은은한 자연광이 비쳐 들어오게 했다.

 

건축물의 벽체는 태양 빛과 함께 아름다운 앙상블을 연출한다. 인간의 창의력과 자연의 물질, 그리고 태양 빛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은 낮에 밖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흰색 대리석으로 된 돌덩이 같다. 그런데 내부에 들어가면 여태껏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대리석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태양 빛이 만들어 내는 대리석의 엑스레이 사진은 도서관의 실내를 특별한 분위기로 채운다.

 

이 건축물의 또 다른 경이로움은 밤에 연출된다. 낮에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처럼 보이던 건축물이 밤이 되면 내부에 켜진 조명이 대리석 창문을 통해 투과되면서 이번에는 하나의 종이 랜턴 같은 모습이 된다. 낮 동안 대리석과 태양 빛이 만들어 낸 향연이 실내에 펼쳐졌다면, 밤에는 대리석과 인공조명이 만들어 낸 향연이 펼쳐진다. 자연의 빛은 밖으로부터 비치고, 인공의 빛은 반대로 내부에서부터 비친다. 하나의 얇은 대리석에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이라는 두 개의 다른 빛이 통과하면서 완전히 다른 건축물이 창조되는 것이다. 인간은 1만년 전부터 건축에 돌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돌을 빛이 투과하는 특성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고든 번샤프트는 그런 물질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건축을 보여 준 대가(大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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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Solormon R.Guggenheim Museum)

 

 

솔로몬 구겐하임은 미국 광산과 철강 업계의 재벌이었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선정해서 미술관을 건축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전체적으로 흰색 재료로 마감된 리본 같은 벽체가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을 바라본 첫인상은 뱅뱅 돌려서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 같다는 것이었다. 달팽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파격적인 디자인은 1943년에서 1945년 사이에 구상되었는데, 워낙 파격적이어서 1949년에 건축주인 솔로몬 구겐하임이 사망하자 다른 후원자들은 마천루의 도시인 뉴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건축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라이트의 디자인을 그대로 지어 달라는 솔로몬 구겐하임의 유언에 따라 원래의 계획안대로 진행되었고, 1957년에 착공해서 1959년에 완성되었다.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안타깝게도 이 건물이 완성되기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서 완성된 모습은 보지 못했고 그렇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벽이 필요하다는 미술관의 기본에 충실한 건물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네모난 방의 벽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기다란 벽을 만들었다. 관람자는 그 벽만 계속 따라가면서 보면 된다. 그 건물이 넓은 땅에 위치했다면 직선으로 기다란 벽을 만들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주어진 대지는 뉴욕이라는 번잡한 도심 속의 작은 땅이었다. 따라서 건축가는 430 미터나 되는 기다란 벽을 연속되게 만들기 위해 경사로를 따라 둥그렇게 위로 말아올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네모난 방을 만들 경우 생겨나는 각진 모서리 없이 연속된 벽체를 만들 수 있었다. 빙빙 돌아 올라가는 경사로의 가운데는 여섯 층이 뻥 뚫린 빈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 위에는 천창을 두어 햇빛이 들어오게 했다. 마치 '판테온'의 천장에서 빛이 내려오듯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천장에서도 빛이 내려온다.

 

관람 전에 아래와 위에서 전체 공간을 파악하고 나서 천천히 그림을 보면서 내려오거나 올라갈 수 있다. 그림을 보면서도 내가 지금 이 건물의 어디쯤에 있는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이 빙빙 돌면서 내려가는 경사로이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갈 공간도 미리 볼 수 있고, 조금 전에 지나쳐 온 공간도 되돌아볼 수 있다. 이처럼 친절한 미술관은 본 적이 없다. 이 미술관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술품과 건축 공간의 변주다.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건축은 그저 미술품의 배경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좋은 미술관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벽에 걸린 그림을 볼 때는 그림에 집중하지만, 고개를 뒤로 돌리면 언제든지 중앙의 회오리바람 같은 모양의 빈 공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시장이 거대한 경사로로 되어 있어서 걸을 때마다 계속해서 높이가 변하기에 그 중앙 빈 공간 (Void)의 공간감은 계속 변화한다. 건축공간이 미술품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술 감상을 방해하지도 않는 동시에,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부드럽게 변화하면서 조화롭게 감상하도록 도와주는 느낌이다. 뉴욕에 간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 하나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꼭 보고 오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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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권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권리다. 예를 들어 내가 단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땅의 용적률에 따라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면 30층까지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장사가 잘되는 50년 넘은 스테이크 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이 건물을 부수고 신축할 생각이 없다. 이런 경우에 내가 지을 수 있는 29개 층 높이의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리가 ‘공중권’이다. 내 머리 위 공중의 권리를 파는 것이다.

 

공중권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배경은 흥미롭다. 뉴욕에는 ‘펜실베니아역’이라는 오래된 기차역이 있었다. 그런데 뉴욕은 이 고색창연한 건물을 부수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라는 체육관을 지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근대 건축 유산인 '서울역'을 부수고 '장충체육관'을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화가 난 시민들은 향후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공중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은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작정 보존을 강요하면 그 땅을 소유한 사람의 재산권이 침해받게 된다. 자신의 땅에 40층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는데, 그 땅에 문화재 건축물이 있다고 해서 정부가 땅의 개발을 금지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공중권이라는 개념 덕분에 건축주는 자신이 가진 건물을 유지하면서 그 건물 상부에 건축을 할 수 있는 공간만큼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개발 업자는 자신의 건물을 더 높이 짓기 위해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서 그곳의 공중권을 산다.

 

'시티그룹 센터'는 옆 땅에 위치한 교회로부터 공중권을 구매해서 건물의 높이를 더 올릴 수 있었다. 교회의 지붕 위로 '시티그룹 센터’를 지으면서 과감하게 12층 높이까지 비우고 13층부터 건물을 배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하철에서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지하 1층의 광장부터 시작해서 13개 층 높이의 공간이 비워졌다. 거리에서 보면 대지의 남측과 서측의 대부분 땅에 건물이 하나도 지어지지 않은 것 같은 경관이 연출된다. 그리고 그렇게 비워진 땅은 오롯이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사용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면 광장과 교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점심시간에는 주변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광장의 넓은 계단에 앉아 남측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샌드위치를 먹기도 한다. 이렇게 시민에게 개방된 공지 덕분에 개발 회사는 뉴욕시로부터 추가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그렇게 ‘시티그룹 센터'를 10층 정도 추가로 더 높게 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시티그룹 센터’는 주변의 건물보다 훨씬 더 높아지면서 뉴욕의 개성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시티그룹 센터’의 디자인은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건축가는 그 제약을 없애 버리기보다 오히려 제약을 풀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여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창조해 냈다. 제약은 새로운 창조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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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빛 사이

 

 

침묵과 빛 사이 Between Silence and Light는 건축학자 존 로벨John Lobell이 칸의 건축 세계를 설명하는 책이다. ‘침묵과 빛 사이'만큼 루이스 칸의 건축 세계를 한마디로 잘 압축해서 설명하는 말은 없는 듯하다. 그의 건축물에 들어가면 침묵하게 되고 왠지 조용히 묵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인간의 영성을 일깨우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공간은 불필요한 장식이 없는 순수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항상 자연의 빛이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칸은 항상 빛에 관심이 많았다. 종교성이 강한 유대인의 후손이기 때문에 빛, 진리, 형이상학 같은 개념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건축 스타일로 보자면 그는 당시 유행했던 국제주의 양식의 모던 건축보다는 그리스 로마 건축 같은 고전 건축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칸은 “빛은 건축물에 닿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빛은 그림자가 없으면 인지되지 않는다. 그림자 역시 빛이 없으면 인지되지 못한다. 빛과 그림자는 인지되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 건축물이 빛을 받으면 건축물 뒤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때에야 비로소 빛은 자신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칸에게 건축은 그림자를 만듦으로써 빛으로 하여금 빛이 되게 하는 위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동양의 음양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칸의 이 말은 빛과 건축을 엮어 만든 이야기 중 가장 멋진 말인 것 같다. 칸의 건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빛이 빛되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태양 입사각이 수직에 가까운 미국 남부 텍사스에 지어진 '킴벨 미술관'은 지붕에 천창을 내어서 빛을 들이고 반사판을 이용하여 빛을 천장으로 반사했고, 태양 입사각이 낮은 미국 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지어진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Phillips Exeter Academy Library'에서는 측창을 이용해 햇빛을 옆으로 유입하고 평면상 ‘X’ 자 모양의 반사판을 디자인했다. 칸의 건축 디자인의 첫번째 원칙은 '태양 빛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그림자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이고 건축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부산물일 뿐이었다. 그는 항상 태양광을 어떤 방식으로 건축물 내부로 들여올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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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

 

 

칸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건축 설계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디자인을 할 때 건축 재료를 사람처럼 대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이야기다. "벽은 두껍고 단단해서 인간을 보호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인간은 바깥 경치를 보고 싶어서 벽에 구멍을 뚫었다. 벽은 아프고 슬펐다. 이에 인간은 창틀을 예쁘게 만들고 인방보'를 얹어 주었다. 벽은 자신이 아름다워졌다고 느꼈다." 또한 칸은 "벽돌은 아치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건축을 의인화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재료는 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러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칸은 이런 실존적인 질문들을 통해서 건축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표현한다. 어느 분야에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자신이 연구하고 다루는 대상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보거나 더 나아가 사람처럼 느끼는 것 같다. 그 정도로 그 분야를 사랑하고 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분야의 대가가 되는 것이다. 건축가 중에서는 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밖에도 칸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칸이 학교를 설계할 때 교실의 창문을 크게 만들어서 바깥의 자연 경치를 교실 안의 학생들이 잘 볼 수 있게 했는데, 작품 설명을 들은 교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디자인하면 학생들이 밖만 쳐다보고 수업하는 선생님께 집중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였다. 이에 그는 "자연보다 더 주목받을만큼 대단한 선생님이 계신가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렇듯 칸은 주어진 문제를 단순히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깊게 생각하며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건축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칸의건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감동을 준다는 면에서 분명 이전의 근대 건축을 능가한다. 그는 또한 실존적 질문에 건축적으로 대답한 대표적인 건축가다. 또한 전통을 이해하고 이를 승화시킨 건축가이기도하다. 아마도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공부한 사람이라면 루이스 칸이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건축가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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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 베란다, 테라스

 

 

집 앞에 있는 외부 공간을 흔히 테라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위에서 지붕이 막지 않고 아랫집의 옥상을 바닥으로 사용하는 것은 베란다고, 테라스는 건물의 1층에 있는 데크 같은 공간을 말한다. 흔히 길가 카페에서 건물앞 주차장에 불법으로 만들어 놓은 데크가 테라스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매달린 툇마루 같은 것은 발코니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파트의 발코니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폭이 너무 좁다. 건축 법규상 발코니로 인정되어 용적률 계산에 안 들어가게 하려면 폭이 1.5미터가 넘으면 안 된다. 쉽게 말해서 1.5미터까지는 공짜로 더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모든 아파트의 발코니 폭이 1.5미터다. 그리고 최대한 이 법을 이용하기 위해서 집 앞에 모두1.5미터 폭의 긴 발코니를 넣는다. 모든 집에 발코니가 만들어지다 보니 윗집 발코니가 지붕처럼 덮고 있어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좁고 길다 보니 마주 보고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안 되고 빨래를 너는 것 외에는 쓸 기능이 별로 없다. 윗집 발코니가 지붕처럼 덮고 있으니 비도 맞을 수 없고, 그렇다 보니 외부 공간 같다는 느낌도 안 든다. 이 와중에 침대에서 자는 것이 중산층의 삶의 형식이 되면서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침대는 자리를 많이 차지해 방이 좁아졌다. 이때 동네마다 생겨난 알루미늄 새시 가게들이 발코니에 창문을 달아주고 이 공간을 방이나 거실로 확장해 주었다. 이제 우리의 집에는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의 씨가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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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 타워

1986년: 실체는 무엇인가

 

원효대사와 알타미라 동굴

 

눈에 보이는 것은 실제인가 아니면 허상인가? 동양에서는 현실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의심해 왔다. 중국 전국 시대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꿈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는데,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꿈에서 깨어난 다음에도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기 꿈에 내가 되었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내가 느끼는 것이 중심인 지극히 일인칭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도 의상대사와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원효 대사의 여행 이야기가 있다. 원효대사는 여정 중에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그는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서 옆에 있던 물을 맛있게 마셨는데, 아침에 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었음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이때의 깨달음을 화엄경의 핵심적 가르침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다. 각자의 마음이 현상계를 만들어 내고, 마음이 사라지면 현상계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장자의 이야기나 원효대사의 이야기나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인간의 의식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시각이다. 좀 더 현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내는 인식에 의해서 세상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 이후 인간은 사람의 마음을 연구(정신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좀 더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상을 인문학적으로 탐험해 왔다면 지금은 MRI 촬영으로 좀 더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오감을 느끼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내 몸 밖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모든 정보는 뇌에 전기적 신호로 들어가서 종합되고 인식되어 외부 세상을 머릿속에 구축하고 인지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내 의식과 상관없는 객관적인 ‘물리적 세상’과 내 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인 '인지의 세상' 두 가지다. 그런데 이 둘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원자로 구성된 물질의 세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 머릿속의 데이터 정보로 구축된 것일 수도 있다. 건축 역시 '물질적 본질'과 '의식의 산물' 사이에 존재한다. 차가운 쇠를 손으로 만져 보거나 무거운 돌을 들어 보면 건축은 확실하게 물질의 세상이다. 그러나 어떤 건축물을 보면 건축은 물질이라기보다 정보에 가깝다.

 

역사를 보면 건축 공간이 정보로 인식되는 일들은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있어 왔다. 그 첫 번째는 ‘알타미라 동굴'일 것이다. 돌로 만들어진 동굴의 벽체는 확실하게 물리적인 물성의 공간이다. 하지만 동굴의 표면에 각종 그림을 그려 넣게 되면 그림이라는 상징적 정보에 의해서 공간은 다르게 채색되고 변화한다. 동굴 벽에 그려진 소와 사슴 그림들로 인해서 우리는 이미 동굴 벽의 바위를 바라보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동물 그림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정보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동굴 벽화를 느끼기 위해서는 횃불이라는 빛이 필요하다. 빛이 없으면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그릴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면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만드는 상징적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흘러서 고딕 성당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들이 그 역할을 했다. 여기서는 횃불 대신에 태양광을 이용했다. 인간이 유리를 가공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때로는 인공의 빛을 이용해서, 때로는 태양광을 이용해서 단순한 물질적인 물성의 공간을 뛰어넘어 정보로 만들어지는 공간을 구축해 왔다. 현대에 와서는 전구, 프로젝터, TV 모니터, LED 등을 통해서 좀 더 정교하게 빛을 조절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빛의 정보를 이용한 건축 공간의 구축은 계속됐다. 그 선구적인 작품이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오伊東豐雄의 ‘윈드 타워Tower of Winds’다.

 

타공철판과 모기장

 

지난 40년간 아시아 건축계의 양대 산맥이라 한다면 안도 다다오와 이토 도요오를 꼽을 수 있다. 놀랍게도 둘은 동갑내기 건축가다. 하지만 서로 다른 건축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작품성만큼이나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안도는 정식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자수성가형 건축가인 반면, 이토 도요오는 동경대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 출신 건축가다. 세계 건축계에는 재능 있고 똑똑한 건축가들이 넘쳐나는데, 동경대 출신이라는 선입견 없이 보더라도 현대 건축가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스마트한 건축을 하는 사람은 이토 도요오가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로 이토 도요오는 일본인이지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해방 전 서울에서 출생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좋은 작품이 많지만 그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윈드 타워’를 선택한다. 요코하마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높이 21미터의 이 타워는 지하 쇼핑센터의 통풍과 물탱크 역할을 하는 기존 타워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타워의 입면은 타공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재료가 이 타워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타공 철판은 철판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재료로, 가정집에 있는 모기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표면에 있는 작은 구멍 때문에 이 재료는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투명하게 보이고 밝은 쪽에서 보면 은색의 불투명한 재료처럼 보인다. 집에 있는 방충망도 낮에 밖을 바라보면 경치가 보이지만, 밖에서 창문의 방충망을 보면 은색의 금속 면으로 보인다. ‘윈드타워’는 타공 철판이 가지고 있는 재료적인 특징 때문에 낮 시간 동안에는 주변을 걷는 보행자 눈엔 실린더 형태의 은색 구조물로 보인다. 그러나 밤이 되어 타공 철판 표면 안쪽에 설치된 조명 기구가 빛을 내기 시작하면서 투명하게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구조물이 된다. 이때 조명 기기들은 타워 주변에 부는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에 따라서 각각 다른 빛을 연출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라는 자연을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서 형형색색 다른 시각적 정보로 변환시켜서 보여 주는 장치가 만들어졌다. 이는 건축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타공 철판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여기에 현대 조명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물질성만 가진다기보다는 빛의 연출에 의해서 존재 자체가 있었다. 없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하나의 정보가 된 것이다. 마치 빛의 착시 현상을 이용해서 '자유의 여신상'을 없앴다가 만들어 냈다가 하는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 같은 일을 이토 도요오가 하고 있는 것이다.

 

'윈드 타워'는 낮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의 건축물로 보이지만, 밤이 되면 구체적 형체 없이 현란하게 변화하는 빛으로만 존재한다. 마치 스마트폰을 켜기 전의 스마트폰은 검은색 유리 면일 뿐이지만, 스마트폰을 켜고 나면 총천연색의 빛이 전달하는 정보의 폭포로 바뀌면서 유리 표면으로 만들어진 전화기라는 물질에 대한 의식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수천 년 동안 건축은 주로 물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윈드 타워'는 건축은 물성을 갖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그 물질성은 사라지고 빛의 정보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시각 이미지를 통해서 전통적인 물성을 사라지게 하는 작업의 효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일 것이다. 기존의 전통 조각품은 양감을 가지는 재료 덩어리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다비드의 팔다리 길이와 비례와 포즈를 아름다운 비례감을 가지게끔 정교하게 계획해서 조각했다. 그런데 사람 모양을 한 백남준의 작품은 비디오 모니터로 만들어져 있다. 모니터상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영상이 틀어지면 우리는 그 작품을 사람 모양의 작품이 아니라 그 모니터가 쏟아 내는 정보로 판단하게 된다. 물성은 사라지고 정보만 남게 되는 것이다.

 

'윈드 타워'나 백남준의 작품처럼 빛의 이미지가 나타나기 전에는 각각 원기둥모양이나 금속 조형물이다. 하지만 인공의 빛이 틀어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정보의 건축물이 된다. 이토 도요오의 이러한 작업은 훗날 영상 이미지가 건축물 입면을 가득 채우는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같은 아류를 낳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 많은 건축물이 입면에 LED 화면을 입혀서 건축 입면을 완성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건축이 이미지와 테크놀로지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건축본인의 감동을 잃게 되는 페단을 낳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면 건축 디자인을 영상 매체가 대체하게 되어 모든 도시가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처럼 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현재 서울 강남의 많은 거리는 이미 대형 LED 광고판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의 문제는 그 지역 고유의 장소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지금 강남 도산대로에 가면 거리의 표정에 건축물은 없고 대신 명품 브랜드 광고 영상들만 넘쳐 나고 있다. 도산대로는 없고, 카르티에나 디오르 같은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만 남는 것이다. 도산대로 본연의 가치는 없고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도산대로공간을 만들고 있다. 모든 건축이 LED로 도배된다면 전 세계 모든 도시가 동질성을 갖게 되는 평평한 세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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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교회

 

 

'빛의 교회 Church of the light'는 안도의 주요 교회 시리즈 세 개 작품 중 결혼식이 아닌 실제 예배를 드리는 유일한 교회다. 이곳은 오사카 근처 이바라키시의 한 골목길에 위치해 있으며, 세 개의 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다. 안도는 이 교회의 신도였던 친구의 부탁으로 ‘빛의 교회’를 설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교인 수가 적다 보니 건축비도 넉넉하지 않았다. 안도는 처음에는 부족한 공사비 때문에 지붕을 짓지 않고 벽만 만들어서 하늘로 뚫려 있는 교회를 구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푸집으로 사용했던 목재를 이용해서 예배당 의자를 만드는 식으로 공사비를 아껴서 겨우 지붕이 있는 교회로 완성했다.

 

시선을 끄는 것은 십자가 모양의 창문이다. 서양 전통 교회에서 빛은 신의 임재를 뜻하며 이미 장미창,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암시해 오는 장치로 사용돼 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당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이천 년 가까이 사용되어왔다. 그렇지만 십자가는 지난 이천 년간 교회에서 제단 위에 놓인 공예품으로, 빛은 건물 외벽의 창문으로 따로따로 존재해 왔었다. 그런데 ‘빛의 교회’에서는 둘을 합쳐서 빛으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게다가 이 십자가 모양의 구멍은 작기 때문에 실내 공간은 어둡다. 어두운 콘크리트 박스의 실내 공간 덕분에 동공이 확장된 방문객의 눈에 이 빛의 십자가는 존재감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빛' 자체가 가지고 있는'신의 임재'라는 상징성과 '십자가'라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하나의 '빛의 십자가'로 완성되어서 공간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안도는 원래 이 빛의 십자가에 유리창을 넣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십자가 구멍을 통해서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성된 삼위일체에서 바람으로 상징되는 성령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예배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개념이 좋다고 한들 비바람이 들이치는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교인들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유리를 끼워 넣었다. 〈사무라이 건축가〉라는 안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그는 죽기 전에 그 유리를 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유리가 없으면 도로의 소음이 들어와서 예배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이 십자가가 더 멋있는 이유는 하나의 존재가 이중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내부에서 보면 하얀빛의 십자가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면 그림자로 만들어진 검정 십자가가 된다.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바라본 검은색 십자가는 내부에 들어오는 순간 어두운 공간 속에 강한 존재감을 가지는 빛의 십자가로 전환된다. 하나의 존재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빛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되기도 하는 상대적 가치를 갖다니 너무 멋있지 않은가? 이 십자가를 보면 하나의 존재를 음과 양의 관계로 설명하는 도가적인 가르침이 떠오르기도 하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 내는 것임을 뜻하는 불교 화엄경의 가르침 '일체유심조'가 생각나기도 한다. 안도의 건축물은 서양 건축물처럼 벽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공간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동양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안도는 '빛의 교회'에서 담장이 건물을 관통하는 점에서는 동양 전통 건축 양식을 깨는 파격을 보여 주고, 빛과 십자가를 합친 점으로는 서양 전통 교회 건축 양식을 깨는 파격을 보여 준다. 안도는 젊은 나이에 예산도 부족한 작은 교회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얼마나 파격적인 건축가인가를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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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아부다비

 

 

 

장 누벨이 중동에 지은 또 다른 중요한 프로젝트는 ‘루브르 아부다비'다. 7개국이 연방을 결성해 만들어진 연합국인 아랍에미리트에는 두 개의 주요 도시가 있다. 하나는 ‘두바이’고 다른 하나는 ‘아부다비'다. 두바이의 형제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아부다비는 돈은 많은데, 관광객이 올 명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부다비 사람들은 아부다비의 중심부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문화 지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여덟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가는 계획을 만들었다. 지금 소개할 ‘루브르 아부다비’가 있고,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아부다비Guggenheim Abu Dhabi',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자이드 국립박물관Zayed National Museum',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해양박물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공연 예술 센터’가 계획되어 있다. 이 작품들이 다 완성되면 가 볼만한 관광지가 될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개관한 것이 '루브르 아부다비’다.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의 경우 건축물은 아부다비에서 짓고 그 안의 전시 큐레이션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기획해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30년 자리 계약을 했다.

 

사막에서 가장 좋은 장소는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는 물이 있고 그 주변으로 야자수가 드리워져 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겹친 야자수 이파리들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볕이 아름답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이 ‘오아시스의 야자수 그늘'이 콘셉트다. 오아시스의 물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바닷가에 인공의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앉혔다. 이 건물의 중정에 가면 자연스럽게 물가로 내려가는 데크에 앉아서 물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야자수 이파리들이 겹친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 빛을 연출하기 위해서 마시라비야 문양처럼 생긴 철판을 여러 겹 겹쳐서 만들었고, 그 사이로 불규칙하게 강렬한 햇볕이 들어오게 했다. 이때 철로 만들어진 패턴은 단순한 장식을 위한 패턴이 아니라 지붕을 구성하는 돔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구조체이기도 하다. 이 트러스 구조가 만드는 패턴의 종류는 몇 개밖에 되지 않지만, 그 패턴이 완곡한 돔 곡면을 따라서 여러 겹으로 덮여 있다 보니 해의 각도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햇빛과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만약에 이 패턴이 평평한 지붕에 만들어졌다면 몇 개의 패턴이 반복될 뿐 이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붕의 지름은 180미터다. 우리나라 공립학교 운동장이 보통 대각선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이니, 그런 운동장 서너 배 가까운 크기의 면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 엄청난 돔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가 필요하다. 스페이스 프레임이란 가느다란 선형의 철재를 이용해서 얼기설기한 모양으로 틀을 짠 것을 말한다. 보통 대형 체육관의 지붕을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만든다. 그런데 ‘아부다비 루브르’의 지붕을 만드는 스페이스 프레임은 비싼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었다. 지붕이 방수 재료로 덮인 일반 체육관 지붕과는 다르게 이 지붕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지붕의 구조체가 비가 오면 물에 노출된다. 구조체가 비를 맞으면 녹이 슬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지붕 구조체를 만든 것이다.

 

실내로 다 연결된 전시장들을 둘러보고 나오게 되면 이 건물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중정에 도달한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공간 경험의 순서인 시퀀스가 훌륭하다. 자동차를 타고 박물관에 접근하면 멀리서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돔이 보인다. 표를 끊고 들어가서 멋있는 전시를 구경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품에 빠져서 건축은 잊게 된다. 그런데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출구를 나오면 바로 돔의 정중앙부에 서 있게 된다. 아까는 돔을 바깥에서 바라보았다면 이번에는 돔의 가운데에서 올려다보게 된다. 만약에 돔을 외관부터 서서히 보면서 들어왔다면 충격이 크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서는 정신 차리고 보니 돔의 가운데에 들어와 있게 된다. 이러한 경험의 순서 덕분에 마지막 클라이맥스 공간인 빛이 들어오는 천장을 바라보는 충격은 극대화된다. 이 중정에서 바라보는 햇볕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여태껏 제대로 된 태양 빛을 경험해 보지 못했었구나'라고 느낄 정도다. 훌륭한 건축은 이런 것이다. 훌륭한 건축은 같은 태양 빛이라도 그 건축물을 통해서 경험할 때 새로운 경지의 경험을 느끼게 해 주는 건축이다. 그런 건축이 만들어지려면 환경과 물질과 현상과 체험자의 심상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건축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장 누벨은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좋은 사례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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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글

 

 

사람의 생각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은 '공간'이다. 공간은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2.7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3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의 창의력이 두 배 높게 나왔다는 미네소타대학교의 연구 결과가 있다. 굳이 이러한 실험을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집에서 공부가 안 될 때 카페에 가서 분위기를 바꾸면 공부나 보고서 작성이 잘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울할 때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일상의 고민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간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 그리고 어떤 공간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건축은 건축가의 생각이 공간으로 기록된 결정체다. 이 책은 여러 종류의 창작자 중 건축 공간을 통해서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베토벤과 음악을 통해서 교감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건축 공간을 보면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건축가와 '공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교류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 훌륭한 공간은 나에게 '세상은 이렇게 보는 거야'라고 가르쳐 준다. 이 책에 수록된 건축물들은 모두 나에게 세상을 보고, 읽어 내고, 창조하는 법을 가르쳐 준 공간들이다. 마치 훌륭한 철학자의 책이 인생에 깨달음을 주듯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공간으로 나에게 깨달음을 준 존재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만나 본 적 없는 건축가들의 작품이지만, 이 건축물들을 보면 디자인한 건축가들의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그 건축가들이 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