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알베르토 자코메티(조각가, 1901~1966)

송담(松潭) 2023. 6. 7. 07:50

걷고, 걷고, 또 걷는 인간들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가, 1901~1966)

 

 

 

 

‘고도’와 ‘걷는 사람’

 

사뮈엘 베케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3)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삶의 수수께끼를 모두 풀었다”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작품엔 남자 두 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앙상한 나무 곁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두 남자는 나사 몇 개가 빠진 기계처럼 어수룩하다. 어제 있었던 일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둘의 대화는 대부분 동문서답이다. 하고 싶은 말만 내뱉을 뿐이다. 고도를 기다리다 무료해진 그들은 죽고자 결심한다.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는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는 이런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고도가 누구야?' 누군가는 고도를 신이라고 확신했다. 죽음, 구원, 희망으로도 여겨졌다.

 

이 작품이 세상이 나온 지 70년 가까이 지났다. 그 사이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도 고전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몇 번을 읽어도 난해한 이 작품이 고전 반열에 오른 이유는 명확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바보 같은 두 남자는 우리 모습과 닮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조리가 없듯, 우리 삶도 종종 조리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창을 밟고 수령에 빠진다. 계획은 계획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삶이라는 불확실한 여행길을 뚜벅뚜벅 걷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관성이다. 살아지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우리는 잠시 멈춰 자신에게 철학자 같은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이게 다 무엇인가. 왜 사는 걸까? '이 끝엔 뭐가 있을까.' 모두 답 없는 의문이다. 질문은 금세 허공에 흩어진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올랐다. 아일랜드 출신 무명작가였던 베케트는 부조리극을 개척했다는 평가 속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1961년 공연무대미술을 친구에게 맡겼다. 무대 위 장치는 앙상한 나무가 전부였다. 이 나무를 만든 인물은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베케트에게 무대미술 부탁을 받기 직전인 1960년,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사람>을 완성했다. 이 조각은 뼈만 남은 인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서 있기도 버거워 보이는 이 인간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도 묵묵히 걷는다. <걸어가는 사람>과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딘가 닮았다. 베게트가 자코메티에게 무대미술을 맡긴 이유다.

 

 

<걸어가는 사람>

 

 

스위스 출신 자코메티는 1922년 파리로 넘어왔다. 처음엔 그림을 그렸지만 금세 자기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장르를 조각으로 바꾼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형상을 빛었다. 자코메티는 금세 앙드레 브르통 눈 안에 들어왔다. 브르통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코메티를 보고 확신했다. 이 남자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구현할 예술가라고, 자코메티도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자코메티는 오래 안주하지 않았다. 여동생을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이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자코메티는 낯선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약한 인간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다. 그에겐 죽음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꿈꾸는 환상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진다. 당시 파리에는 자코메티처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실존주의자’라고 불렸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2017년 서울 예술의전당에 자코메티 작품 120여 점이 왔다. 이 작품들 가치는 약 2조 1000억 원이었다. 자코메티는 오늘날 피카소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가로 통한다. 현존하는 자코메티 작품 수는 그가 활동한 기간에 견주면 적다. 자코메티는 작품을 부숴버리기 일쑤였다. 실패작이라고 여겨서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평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인간의 불안, 고독, 소외, 외로움, 고통을 봤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여겼고, 자신이 본 것을 조각에 담으려 했다. 그는 실패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을 완벽히 정의하는 건 우주의 신비를 풀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에겐 나쁜 실패와 나은 실패만 있었을 뿐이었다.

 

1960년에 완성된 <걸어가는 사람>은 <가리키는 사람>과 함께 자코메티 대표작으로 꼽힌다. 바스스 무너질 것 같은 인간이 우뚝 서 있다. 이 불안한 존재는 큰 보폭을 그리면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 중이다. 여러 해석이 나왔다. 누군가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고도 우뚝 일어나 앞으로 향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느꼈다. 반대로 온몸이 풍화하는 고통에 부딪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고단한 인간을 본 사람도 있다. 자코메티에게 이 조각의 의미를 물었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아마도 그의 친구였던 베케트가 ‘고도’의 정체를 캐묻는 세상에 했던 말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베케트는 “내가 고도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고도'라는 괄호 안에 제 각각의 답을 채워 넣었듯 <걸어가는 사람>의 보폭은 누군가에겐 희망, 누군가에겐 고행이다.

 

자코메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숭고한 인간이든, 고독한 인간이든 모두 걷는다.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누구나 걷고, 걸을 수밖에 없다. 종착점이 어떤 풍경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으로 간다.

 

 

<가리키는 사람>

 

 

조성준 / ‘예술가의 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