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안도 다다오

송담(松潭) 2023. 7. 11. 13:49

아주마 하우스

 

1976년 권투 선수 출신 건축가가 자연을 대하는 방법

 

안도 다다오

 

 

권투 선수 출신 건축가

 

일본 오사카 출신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일반 건축가들과는 다른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일단 그는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프로 권투 선수 생활을 했다. 안도는 고등학교때 프로 권투 선수를 꿈꾸면서 연습했고, 태국 방콕 해외 원정 경기를 갈 정도의 열정을 보였지만, 얼마 후 당시 동양 챔피언 선수의 실력을 곁에서 지켜본 후 엄청난 신체적 재능 차이를 느끼고 권수 선수를 그만두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는 것을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후 실업자로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이 안도에게 인테리어 일을 하나 맡기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건축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그럭저럭 살던 중 우연히 동네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접하면서 건축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안도는 돈이 없어서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살 수 없었는데, 다른 사람이 사갈까 봐 책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가 보면 서점 주인은 코르뷔지에의 책을 다시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곤 했다고 한다.

 

안도는 르 코르뷔지에를 존경했으며 그에게 건축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시베리아철도를 타고 코르뷔지에를 만나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 도착하기 몇 달 전에 코르뷔지에가 세상을 떠나서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일본으로 돌아온 후 코르뷔지에의 건축 도면을 구해서 트레이싱지를 대고 베껴 가면서 건축을 공부했다고 한다. 안도가 키우는 반려견의 이름이 코르뷔지에인데, 이를 보면 그가 코르뷔지에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 것 같다. 코르뷔지에의 영향으로 안도의 건축에는 코르뷔지에가 주로 사용했던 노출 콘크리트가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코르뷔지에는 ‘빌라 사보아’와 ‘피르미니 성당’을 다룬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편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걸으면서 수직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를 적극 사용했는데, 안도의 작품에도 경사로가 자주 등장한다.

 

1980~1990년대에 안도는 아시아 건축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건축가였다. 건축을 공부하면 건축사의 대부분은 유럽 건축의 역사만 나와 있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의 건축가들은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스타 건축가들에 기죽어 살아왔는데,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안도 다다오라는 인물 덕분에 '아시아인들도 세계 건축의 중심에 설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1990년대 미국 건축대학원에서 가장 좋아하고 따라하려고 했던 건축가 중 한 명이 안도 다다오였다. 그가 1980년대에 만들어 낸 작은 주택들과 세 개의 교회 시리즈는 그것만으로도 루이스 칸 이후의 20세기 건축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건축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연의 주먹질

 

안도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첫 작품은 '아주마 하우스 Azuma House'다. 이 집은 좁고 기다란 대지 위에 두 개의 작은 방이 대지의 양쪽 끝에 위치하고 있고, 그 사이를 외부 계단과 다리가 연결해 주고 있다. 마당은 중정형인데, 황당하게도 방에서 식당이나 다른 방으로 갈 때마다 외부 공간을 거쳐서 가야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괜찮겠지만, 추운 겨울에는 옷을 껴입어야 하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는 사람을 자연과 더 만나게 하려는 의도다. 현대 건축은 끊임없이 방수와 냉난방 시스템을 개발하여 어떻게든 자연의 기후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과거 수렵 채집의 시대와 농경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기술로 조정된 환경을 가진 실내에서만 지낸다. 현대인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자연과 밀접한 교류를 할 수 있게 유도하기 위해서 안도는 '아주마 하우스'에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자연을 맨몸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동양 전통 건축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한옥을 보면 안방에서 사랑방으로 갈 때 마당을 가로질러서 비를 맞으며 가야 한다. 과거에는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자연을 만났다. 현대에 와서 인간은 거대한 건물을 건축할 수 있게 되면서 마당으로 연결되던 방을 실내 복도로 연결되게 했다. 이런 시대에 안도는 다른 방을 갈 때마다 자연을 만나야 하는 파격적인 중정을 도입한 작은 주택을 만들었다.

 

방의 창문이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아주마 하우스'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은 방들의 창문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떠올려 보면 모든 방의 창문은 바깥쪽 거리를 향해서 나 있다. 과거 한옥에서는 안방 창을 열면 사랑채의 창문을 볼 수 있었지만, 현대 건축에서는 방에서 방을 보는 창문이 없다. 그런데 ‘아주마 하우스’에서는 모든 방의 창문이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의 방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쳐다볼 수 있고, 내가 있지 않은 방의 공간을 빌려서 넓은 느낌을 갖게 된다. '아주마 하우스'의 방에 앉아 있을 때 느끼는 공간감은 '내 방의 공간 + 중정 + 건너편 방의 공간’으로 총 세 배 넓은 방에 있는 개방감을 느끼게 된다. 더 좋은 점은 중정에 햇볕이 들거나 비가 들이치면 세 칸 중에서 한 칸은 자연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3분의 1이 항상 자연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자연은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라서 시시각각 바뀐다. 내공간의 인테리어가 계속 바뀌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공간은 절대적 물리량이 아니라 기억의 총합이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은 좁지만 다양한 자연의 변화로 많은 기억이 만들어지고, 이는 심리적으로 공간이 넓어지는 효과를 만든다. '아주마 하우스'는 소형 주택이지만 중정에 자연이라는 작은 우주를 담고 있어서 넓게 느껴진다. 현대 건축에서는 잊고 살았던 가치를 '아주마 하우스'가 잘 재현해 내고 있다. 훌륭한 의뢰인 덕분에 이 주택은 완공되었고, 50년 가까이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같은 건축주가 살고 있다. 이 주택은 기능주의를 표방하는 모더니즘 시대에 충격을 준 작품이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진짜 이유

 

안도 건축의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은 노출 콘크리트다. 그가 노출 콘크리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의 건축 목표가 '공간의 프로토타입(원초적 형태)’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도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의 건축에서 가장 원초적인 공간의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하여 훗날 자신이 만든 원초적인 공간의 프로토타입 위에 다른 사람들이 다른 재료와 색깔을 입혀서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게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원초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별도의 마감 재료 없이 안팎으로 모두 노출 콘크리트다. 그리고 그 벽은 동시에 구조체이기도 하다. 마치 고딕 성당이 돌로 만들어진 구조체인데, 그 돌은 인테리어 마감재이면서 동시에 외부 마감재이기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안도는 다른 마감재로 구조체가 감싸져서 숨겨진 일반적인 현대 건축물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이런 부분이 현대 건축에서 안도의 건축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안도가 노출 콘크리트만 사용한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적은 공사 예산 때문이었다. 무명 시절의 안도는 충분한 공사비로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구조체 위에 다른 마감재를 사용하면 그만큼 재료가 더 들어가고 인건비도 들어가서 공사비가 늘어난다. 그런데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면 골조 비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서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우리나라에서 안도 작품 수준의 노출 콘크리트를 얻으려면 엄청난 고급 노동력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사비가 더 올라간다. 예를 들어서 안도 다다오 건축에 사용되는 노출 콘크리트는 표면이 매끄럽다. 일반적인 골조 콘크리트를 칠 때 사용하는 거푸집으로는 그런 표면이 나올 수가 없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안도 다다오 같은 콘크리트를 만들고 싶어서 그 비밀이 뭔지 궁금해 했었는데, 찾은 답은 기름종이를 표면에 댄 거푸집이었다. 이러한 공정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업체는 노출 콘크리트 공사비가 비쌌고, 국내에서는 안도 건축물 같은 깨끗한 표면의 노출 콘크리트는 고급 건축에서나 사용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안도의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단열 때문이다. 안도의 노출 콘크리트는 공사비도 줄이고 미학적으로는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주지만 문제는 단열이다. 외장뿐 아니라 내장까지도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되어 있다 보니 어디에도 스티로폼 단열재를 붙일 수 없어서 겨울에 춥고 여름에는 더운 집이 된다. 물론 콘크리트 벽을 샌드위치처럼 두 겹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단열재를 넣어서 단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골조 공사비가 두 배가 되는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는 이렇게 만든 건축물이 있는데, 그런 건물도 어딘가에는 안과 밖의 콘크리트가 연결되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통해서 내부의 열이 외부로 쉽게 유출된다. 이렇게 열저항이 낮아진 부위로 많은 열이 나가거나 들어오는 경로를 전문 용어로 '콜드 브리지cold bridge'라고 한다. 그렇게 실내 벽체가 차가워지면 그 차가워진 벽체가 겨울철에 난방된 실내의 따뜻한 공기를 만나면서 물이 맺히는 ‘결로結露 현상'이 생긴다. 결로가 만들어지면 벽에 시커먼 곰팡이가 생기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다용도실 벽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안도의 건물은 단열이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설계한 몇몇 주택은 추워서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대가들은 주로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비가 적게 내리는 캘리포니아에서 건축을 시작한 프랭크 게리는 방수 걱정을 안 해도 돼서 건물의 모양을 마음대로 복잡하게 디자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유명해지고 난 후 보스턴 같은 겨울이 긴 지역에 건물을 지었더니 방수에 문제가 있었다. 장시간 눈이 쌓이고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복잡한 형태의 건물에 만들어진 방수층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긴 캔틸레버 발코니로 유명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당시 정확한 구조 계산 없이 건축가의 경험치에 근거해서 만들어 발코니가 처지는 문제가 생겼다. 당시 불안했던 시공자가 건축가의 지시보다 철근을 두 배 가까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코니가 처져서 현대에 와서 대대적으로 보수를 해야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는 당시 기술로는 콘크리트로 평지붕을 만들 때 방수 처리가 완벽하지 못해서 비가 샜다. 이에 건축주의 아들이 폐병에 걸려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는 완벽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안도의 경우도 단열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행히 안도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인 오사카는 부산보다도 위도가 낮아서 겨울에도 엄청 춥지는 않아 단열 없이 견딜 만했다. 게다가 따뜻한 온돌이 없었던 일본에서는 사용자들이 추위를 견디는 데 익숙해서인지 안도 건축물의 단열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도의 스타일을 우리나라에서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기후상 맞지 않는다.

 

안도의 사무실은 1988년 이후 프로젝트가 대형화되면서, 커리어 초반에 만들어진 소형 작품에서 주던 감동이 많이 사라졌다. 소형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제한된 작은 공간 내에서 기하학적 공간들이 서로 충돌하고 맞물리는 입체적인 감동이었는데,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경험의 밀도를 다루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 마치 소형 워크맨을 잘 만드는 ‘소니’가 ‘보잉사’를 흉내 내어 대형 비행기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 프로젝트의 경험이 쌓이면서 대형 프로젝트도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안도의 장인 정신은 대단한데, 실제로 노출 콘크리트 타설을 하던 어떤 인부가 담배꽁초를 콘크리트에 던져 넣었다가 프로 권투 선수 출신인 안도가 달려가서 펀치를 날렸다는 일화가 있다. 큰 건물에 담배꽁초 하나가 뭐 대수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도의 분노는 근거 있는 분노였다. 단단하고 무거운 콘크리트와 가볍고 부드러운 필터가 있는 담배꽁초는 재료의 밀도와 열팽창계수가 다르다. 콘크리트에 담배꽁초를 넣으면 양생을 하는 과정에서 담배꽁초가 힘을 받지 못해서 균열이 갈 수 있고, 이는 추후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장인 정신이 모여서 큰 감동을 주는 법이다. 안도의 건축은 이런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 벽과 창문이 자연을 담아내고 있어서 서양의 건축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유현준 / ‘인문건축기행’(을류문화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