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송담(松潭) 2021. 11. 9. 12:36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인간에게 암흑은 평화보다 공포에 가깝다. 고립무원의 절망감이나 존재가 비존재 속으로 침몰하는 것 같은 느낌이 그렇다.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가상현실 미술관으로 들어서며 좁고 캄캄한 공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내리는 빛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발원지다. 손으로 푸르스름한 면을 만져 보았지만 텅 빈 공간이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안에 거대한 방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놀라움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강렬하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빛은 잠깐 사이에 나를 완전히 다른 사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간성은 이미 지워져 속세와 절연된 상태로 더 깊은 빛의 심원을 탐하게 되었다. 촉감에 의지한 공간에서 후각과 짐작만으로 공기의 움직임을 느껴야 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하학적 사면에서 이뤄지는 파랑과 빨간빛의 오묘한 교차는 미천한 인간들을 신들의 울타리 밖으로 노출하는 듯했다. 빛은 끊임없이 마음 안쪽을 들락거렸다. 그 순간 외부의 빛이 아니라 안쪽의 빛을 찾아 침잠해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웠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3차원 공간이 평면으로, 평면이 입체공간으로 확장해갔다. 물질적인 빛이 보이는 시야를 거슬러 올라와서 내면의 비타민으로 체화되어 나갔다. 육체의 겉은 매일 씻어내지만 정신을 지배하는 영혼은 청소할 기회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제임스 터렐은 미국의 화가이기 이전에 퀘이커 교도다. 빛의 연구를 통한 설치미술가이며 심리분석가다. 그의 손끝에서 빛은 전혀 다른 의미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광막한 캘리포니아 고향의 자연과 애리조나 사막의 빛을 찾아 50년 외길을 걸어온 이력이 독특하다. 친할머니의 “안으로 들어가서 빛을 영접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 안의 신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기르는 법을 배우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 라는 말이 그에게 있어 메타포가 되었다. 그의 덥수룩한 수염은 70대 중반을 넘긴 노년의 라이트 아티스트 Light Artist 를 영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터렐은 빛 자체를 가두거나 조금씩 모아 통로를 만들어 주면서 동시에 움직이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빛이 인간의 발상과 사고를 전환시킨다는 철학으로 미술의 영역 밖을 탐구해왔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보츠, 미술가 로버트 어윈과 함께 빛의 생리학도 연구 중이다. 조각, 설치미술, 현상학, 인지생리학 모두가 지대한 관심 영역이다. 현대의 '위대한 화가 50인' 반열에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빛을 탐구한 피에르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계>나 자코모 발라의 <거리의 빛> 같은 걸작들도 있었지만 터렐의 시도와는 근본이 달랐다. 그는 이 경지를 뛰어넘어 물리적이고 현상학적인 지각과 관련된 설치미술의 근원적인 미학을 개척해냈다. 모든 가능한 상상력 너머의 영적인 신성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압권이다.

 

오카야마 앞바다의 지중 미술관에 전시 중인 터렐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만 해도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원주 오크밸리 뮤지엄산에서 그의 이색적인 걸작을 만났을 때 빛의 세계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상하이의 조우는 완벽하게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서울과 제주도에서 기획했던 특별전을 통해 터렐은 한국 팬들과 인연을 맺었고 거장의 가치는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상하이 엑스포의 파도가 지나간 전시장에 롱미술관이 남아있었다. 근대의 고가철도를 뚝 잘라내 거친 철골구조를 살린 가운데 땅에 지어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본래 택시 운전사로 일했던 미술관 주인의 입신 스토리는 또 다른 흥밋거리다. 학교를 갈 수 없이 가난했던 신리이그룹의 유이첸 회장은 운전과 행상으로 떠돌다가 가죽공장으로 종잣돈을 모았다. 중국 주식시장은 그에게 갑부의 길을 열어줬다. 크리스티의 큰손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미술전시 기획의 개척자로 변신한 것은 중국 예술계에도 엄청난 선물이었다. 600년 전 명나라 때 만들어진 황제의 찻잔 ‘계향배’를 홍콩 경매장에서 1,300억 원에 사들이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모딜리아니 누드화를 1,800억 원에 매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롱미술관은 아시아 최고의 제임스 터렐 전시관이다. 여기서 그의 빛은 온전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공간과 공간이 이어질 뿐인데 그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빛을 찾는 노마드가 되었다. 내가 그 빛을 인지하는지 그 빛이 나에게 스며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는 여명의 빛을 찾아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또 다른 내가 서 있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사람들부터 비교적 최근에 꾸었던 꿈들까지 혼란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터렐의 신비한 빛들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거리면서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 Georg Lukacs의 『소설의 이론』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략) 이런 시대에 모든 것은 새롭고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신이 떠나간 시대, 이제 우리에게 이 광대한 빛을 주는 우주는 알 수 없는 세계이자 공포감과 불안의 대상이다. 더 이상 신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인간 홀로 우주와 맞서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크고 짐작조차 하기가 어렵다. 아늑하지 않으면 무한한 우주는 인간들에게 허무를 안길 뿐이다. 별과 우주가 동행했던 유년 시절, 신화를 듣고 노래를 부르며 살았던 그때를 터렐의 프리즘 속에서 더듬고 있었다. 흩어진 빛의 들판에 버려졌다가 정제된 빛의 세계로 진입한 기분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사유를 가득 길어 올린 느낌이었다. 낡은 영혼의 바다를 탈출해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무릇 모든 삶이 그러할 것이다.

 

 

중동의 걸작, 아부다비 루브르

 

 

 

페르시아만은 문명의 다양한 발상지에서 중세에는 영토전쟁의 중심으로, 현대에는 석유 통로의 길목으로 세계사에서 지속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오른쪽으로 이란이 자리하고 안쪽으로는 이라크가 그 왼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마주보는 형상이니 지정학적 관점에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주머니 모양의 이 바닷가 중간쯤에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답을 내기 위해 아부다비 정부는 10년의 세월을 바쳤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모든 유적과 예술을 망라한다는 프랑스의 자랑 ‘루브르'가 중동의 사막에 오픈될 것이라는 예상은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으로 여겨졌다. 그런 걱정 속에 진행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부다비 루브르'는 더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두바이가 UAE의 경제중심지라면 아부다비는 문화교육의 거점이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사디아트 섬에 있었다. 사디아트는 이 나라의 문화특구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거대한 돔 지붕이 가파르지 않게 곡선을 그리면서 해안선에 맞춰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독특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el이 오랜 시간 공들인 건축물이다. 그가 서울 이태원의 리움미술관을 설계했다든지 카타르 미술관이나 옥수수 모양의 명물 바르셀로나 아그바 타워 같은 기묘한 건축 창작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떠나 사막과 바다를 테마로 탄생시킨 이 공간은 창의력이 확실히 돋보이는 걸작이었다. 미술관의 시작은 중동지역 유적지 출토물부터였다.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를 아우르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과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발견된 사막의 작품들을 알차게 선보이고 있었다. 근대 프랑스인들의 심각한 약탈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유물들이다. 식민제국들이 가져간 물건들을 후세인들이 거액으로 빌려다가 본래의 지역에서 임대 전시하는 아이러니의 현장이었다. 다비드의 그림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진품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늘 최상의 점수를 주는 위대한 화가들, 그중에서도 드가, 마크 로스코, 마티스, 칸딘스키, 잭슨 폴락, 후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의 거작들이 무더기로 걸려있는 공간에서는 부러움과 함께 가벼운 경외감도 어쩔 수 없었다.

 

전 세계 도시를 하나의 선으로 표시해 이동하도록 한 아이디어도 참신했다. 화살표대로 가다가 기원전 3천 년 경의 출토물들이 정돈된 공간과 만났다. 출처 미상의 소장품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해온 문명의 구조적 이해를 돕는 안목과 기획이 돋보였다. 동물이나 사람의 중간 형태를 창작해 만든 흙 인형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고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나라 시대의 중국 유물 전시가 많았던 것은 독특했다. 중화문명이 시안을 떠나 서쪽으로 가면 키르기스스탄과 투르크를 거쳐 이란의 페르시아만에 도달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동으로 이동해온 한나라 문화에 대한 이들의 높은 관심이 전시에 투영되고 있었다. 규모가 느껴지는 일본관에 비해 초라한 한국관은 아쉬웠다. 시간이 이 차이를 좁혀 주리라 생각하니 섭섭함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지만, 전시실 마지막 방은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손길로 만들어진 빛의 우물 Fountain of light 이 연결되었다. 아부다비 루브르의 하이라이트다. 빛을 받아 고이게 하는 나선형의 불규칙 구조물이 신비롭다. 수많은 전시실을 지나면서 보았던 인간의 조각품과 그림들이 모두 거대한 자연의 빛으로 하나의 우주적 하모니가 형성되고 있었다.

 

프랑스 루브르 이름값 5,700억 원, 소장품 순회 전시 값 8,000억 원까지 1조 원이 넘는 거액을 지불하고 10년 만에 개장한 아부다비 루브르는 사람들의 새로운 버킷리스트로 부상|했다. 모든 지원과 운영은 프랑스 루브르 팀이 주도했고 중동의 오일머니가 문화 마케팅으로 대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빛의 소나기'라는 주제에 걸맞게 장 누벨은 7,500톤의 금속 철제를 쏟아부었다. 돔형 지붕 전체를 스테인리스 스틸과 철,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무수하게 교차시켜 시공했다. 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은 태양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쫓아가면서 매일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낙하시키고 있었다. 지름 180미터 거대한 돔에서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빛의 축제가 아부다비 루브르의 백미다. 바닷가에 육중한 반구형 건축물을 세우고 내부와 외부에 야자수를 한 겹 더 응용한 철제. 그래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구조, 외부는 연중 반 이상이 40도에 육박하는 열사지역이지만 이슬람 전통문양과 오아시스 수목들을 세공한 공간으로 투시되는 빛의 조화는 건축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건축은 빛의 향연이다”라고 말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정리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해협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파도가 다가오는 어스름 멀리 아부다비 중심지가 실루옛처럼 걸쳐져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심미적 이미지를 그려내주고 있었다. 바다를 끌어들인 건축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나 그리스 해상에 수장된 옛 도시들에 비할만한 인류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불완전한 개체다. 그 한계를 이겨내려고 종교를 만들었고 예술로 카타르시스를 하면서 문명사를 이끌어왔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품고 있었다. 위대한 건축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중주 외에 종교와 인간의 솜씨가 녹아들어 예술의 변방 중동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아라비아 사막에 뜨는 별

 

사진출처 : 컨슈머타임스

 

아부다비에서 두바이 쪽으로 뻗어 나가는 밥 알샴의 사막은 순간 천지를 뒤덮는 모래 폭풍에 휩싸였다. 지상의 모든 물체가 자욱하게 묻혔다. 낙타도 작은 길도 건조에 지친 풀포기도 바람보다 빠르다는 사막 가젤과 가끔 보이던 들쥐들까지 일체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진 지면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조금 전보다 더 짙어진 석양만이 그림자를 길게 그려내고 있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다가 발아래 사멸한 도마뱀의 유체를 만났다. 완전히 삭탈되어 종잇장처럼 지표에 붙어있었다. 모래 폭풍이 쌓이고 세월이 가면 도마뱀은 화석이 될 것이다.

 

생명은 어떤 이유에서든 모두 숙명처럼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린다. 어떻게 끝을 맺을지 각자의 결이 다를 뿐이다. 사막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운명처럼 모든 것을 느리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평범한 일상이 모든 것을 지배하므로 이 간단한 방정식에 순응하는 것이 최고의 과제다. 아랍 사람들은 낮에 그늘에서 쉬고 밤이면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벌인다. 라마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그들만의 생존비결이다. 기다릴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는 동안 기다리는 대상은 바뀐다. 젊은 날에는 행운이나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인간은 운명이나 신을 기다린다. 무엇이 되었든 기다림은 아름다운 미학이다. 사막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잠들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벌판 끝단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신기루 같은 잠언들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석양의 사막은 생텍쥐페리가 만들어낸 어린왕자와 여우가 만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볼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우주별 몇 개를 거쳐 온 어린왕자가 말이 통하는 여우에게 건네는 언어다.

 

나는 빛이 사위어가는 지평선의 끝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개와 늑대의 시간을 거쳐 라마단의 뜨거운 하루가 저물었다.

 

김경한 /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