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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송담(松潭) 2021. 9. 22. 05:55

마음

 

< 건원재 >

사진 출처 : 월간조선

 

 

집이 없어도 지구는 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집을 통해 이 지구상에서의 존재 의미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걸 존재의 가치라고 부를 일이다.

 

지구는 여전히 무심하게 돌 것이다. 우리는 그 순환에 맞취 살고 있다. 어떤 여행이든 순례든 그 뒤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가장 긴 순례, 지구 위에서 생명체로서의 순례를 마치면 우리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간다. 지구는 돌고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그게 생명체에게 지정된 숙명이다.

 

사람이 집을 짓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집'이 담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집’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공간이다. 그 마음은 보이지도 않는데 가끔 이리저리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담는 집의 가치는 보이는 잣대로 계측되지는 않는다.

 

집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면 그 집에는 우선 짓는 이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 집을 짓는 것은 많은 사람이 개입하는 과정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두서없이 출몰하는 공간이 공사장이다. 때로 그들은 아무런 마음을 두지 않고 고단한 몸을 간신히 부려 집 짓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걸 노동이라고 부른다. 아쉽게 우리가 집을 짓는 과정에는 그런 참여자가 더 많다.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앞서 거론한 그 단어가 될 것이다. 무심.

 

사람이 지구 상에서 사는 동안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자해서 얻는 것이 건물이다. 물론 주택은 건물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축에 속한다. 그러나 건물이 작을수록, 예산이 부족할수록 짓는 과정은 치열하고 절박해진다. 그래서 주택은 건물 중에서 가장 까다롭고 어렵다는 데에 대개의 건축가들이 동의한다. 사소한 하자도 눈에 띄고 완벽한 해결이 절실한데 보수는 항상 어렵다. 시공자에게도 힘든 건물이다.

 

한국이라는 무심한 사회에서 마음을 담는 집을 짓는 건 어렵다. 그런 사회에서, 그럼에도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결국은 물리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집에서는 특히 그 집 자체를 통해 표현될 것이다. 나는 집을 짓는 데 비싸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는 못해도 그 마음은 표현되기를 항상 바랐다. 어떤 작업자는 동의했고 어떤 작업자는 여전히 무심했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 집이 적어도 내 마음을 담고 있기를 기대했다.

 

내가 설계한 집들이 구조물로서 완전하지는 않았다. 시공 후 문제들도 생겼다. 생활이 불편해지는 사안들, 내 마음도 불편해지는 순간들이다. 여기서 그걸 변명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집의 가치는 그런 기능적 조건을 다 넘어서 결국 마음을 담아내는 데 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집은 돌아가야 할 곳인데, 그 집에는 항상 나보다 내 마음이 먼저 도칙해 있다. 건축가는 미래에 지어질 집을 설계한다. 언젠가 지어질 그 집이 어떤 집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집에 살 사람의 마음이 돌아가고 싶은 집. 그래서 결국 그 마음이 담겨 있을 집.

 

서현 / ‘내 마음을 담은 집(건원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