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24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 김도향 가수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노래가 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그렇게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날마다 찰지게 살아도 모자란 시간, 표도 없이 듬성듬성 보냈으니, 바보는 바보다. 이 바보들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하나. “그동안 내가 진짜 바보처럼 살았더라고요. 친구 하나는 아파트 하나 잘 샀다가 3년 만에 1억원 넘게 벌었어요. 또 다른 이는 길도 없는 산을 사더니 몇 년 만에 수억 벌었대요. 친정아버지는 논밭에서 땀 흘려도 일 년에 천만원도 못 버는데 말이죠. 나 역시 바보처럼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몇 푼 저축 못해요. 빚만 안 져도 다행이지….” 둘. “평생..

명칼럼, 정의 2021.04.19

주거냐 혁명이냐

주거냐 혁명이냐 지난 2월3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국가별 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생산성이나 연구개발, 첨단기술 등을 따지는 모양인데 지난 9년 동안 일곱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를 ‘완전한 민주국가’의 그룹으로 발표하였다. 시민의 권리, 선거절차, 정부기능, 정치참여 등을 따져 전 세계 167개국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강조해 온 미국을 2등급인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매겼다니, 민주주의 성취를 위한 투쟁의 역사가 아직도 생생한 우리로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선진적이라고 하는 증표가 요즘 들어 속속 나..

명칼럼, 정의 2021.02.25

노예제 일상

노예제 일상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고용 유연화 정책의 하나로 파견법이 도입되었다. 정식 명칭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지만 직접고용 원칙을 파괴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롭게 만들었다. 법 제정 당시에도 간접고용의 폐해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지만, 슬그머니 법이 통과되었다. 비상시국이기에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비상시국이 끝나면 다시 정상적인 노동의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 믿었다. 2001년 구제금융을 모두 상환하고 외환위기 극복 선언이 있었지만, 이 믿음은 처참히 배반당했다. 오히려 2007년 비정규직 보호 명목으로 여러 법을 시행하여 온갖 비정규직을 합법화했다. 현재 누구도 도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비정규직이 넘쳐..

명칼럼, 정의 2021.02.05

지구촌 3% 부자로 살아가는 법

지구촌 3% 부자로 살아가는 법 어지럽다. 눈뜨면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주식·비트코인 열풍까지 세상이 온통 ‘돈’ 얘기다. 세계적인 투자자는 금과 달러를 사라 하고 어떤 이는 당분간 호황세를 장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위기를 예언한다. 대개는 맞을 수도 있고 틀려도 그만인 이야기들로 전문가라기보다 역술인들 같은데 재미를 본 사람들은 신이 나서,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겁이 나서 모두들 달려든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슬며시 걱정도 된다. 부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 온갖 꽃과 식물, 새와 벌이 어우러진 정원이 있는 고택에서 놀던 유년의 기억이 내 인생에서 가장 부티 나는 시절이었다. 양친은 모두 몰락해가는 부잣집 장남, 장녀로 자존감과 교양은 있었지만 세상 사는 요령이 부족하고 과하게 고지식한 분들이었다. ..

명칼럼, 정의 2021.01.20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오월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오월 정도상의 신작 장편 은 5·18민주화운동 시민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적 배경은 1980년 5월26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15분까지 10시간 남짓이다. 최초의 5·18 기록물 는 물론이거니와 (임철우), (한강), (정찬주) 등 많은 ‘오월 소설’이 열흘간의 항쟁 전 시간을 포괄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작가 정도상이 항쟁의 일부만 다룬 것은 오월항쟁의 진행과정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일 수 있다. 형식의 차별성이다. 그런데 작품을 읽다보면 의 특징은 형식보다는 주제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항쟁의 최후는 시민군의 쓰라린 패배다. 전남도청에 있던 시민군의 일부는 계엄군 진압을 앞두고 귀가한다. 남아있는 자는 총에 맞고, 군홧발에 차이고, 대검에 찔려..

명칼럼, 정의 2020.05.30

영초언니

영초언니 야학은 구로공단 끄트머리 골목길 안쪽 허름한 3층 건물에 세들어 있었다. 두 야학이 탁구장만한 공간을 베니어판으로 칸을 나누어 썼다. 옆 야학은 주로 서울대 재학생들이, 우리 야학은 서울대생과 고대생이 반반씩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은 대부분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었고, 남학생은 가뭄에 콩 나듯 한둘이 고작이었다. 서울대 출신 교사들 가운데 심재철(현 국회부의장)이라는 내 동갑내기가 있었다. 보기 드물게 잘생긴 미남인데다 전라도 출신이라 그런지 판소리 한 대목도 그럴싸하게 잘 뽑는 재주꾼이었다. 어느 날 나는 "심재철, 그 친구 참 잘생겼지? 아폴론처럼 생겼더라. 하고 엄주웅에게 무심코 말했다. 그는 볼이 잔뜩 부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걔가 아폴론이면 나..

명칼럼, 정의 2018.03.09

휴가 시즌이 서글픈 취준생의 여름나기

휴가 시즌이 서글픈 취준생의 여름나기 먹지 않아도 아는 맛이 있다. 외롭고 쓸쓸한 맛이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 , 김훈 먹지 않아도 아는 맛이 있다. 외롭고 쓸쓸한 맛이다. 모두가 떠난 곳에 남아본 적 있는 이는 알 것이다. 그해 설에는 유독 눈이 많이 왔다. 폭설이 발걸음 소리마저 삼켜버린 그날도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처럼 갈 곳 없는 한 줌의 취준생들이 책상을 지키고 있었다. 섬처럼 넓은 책상을 쓰면서도, 낯모를 그들이 있어 조금은 든든했다. 두려운 건 배고픔이다. 연휴에는 학생식당도 문을 닫는다. 기..

명칼럼, 정의 2017.12.18

소년이 온다

그날 밤 난 홑이불을 배에 감고 누워 일찍 잠든 척하고 있었지.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고 들어 온 누나가, 언제나처럼 세면장에 상을 펴고 식은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소리가 들렸어. 씻고 이를 닦은 누나가 발뒤꿈치를 들고 들어와 창문으로 다가가는 옆모습을, 난 어둠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어. 모기향이 잘 타고 있는지 확인하려던 누나는 내가 창틀에 세워놓은 칠판지우개를 발견하고 웃었어. (...생략...) 언제나처럼 나에게서 멀리 이불을 펴고 누웠다가 가만가만 무릎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지. 잠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나는 정말로 눈을 꼭 감았지. 누나가 내 이마를 한번, 뺨을 한번 쓰다듬곤 이부자리로 돌아갔어. (...생략...) 잠든 누나로부터 희미하게 날아오는 로션과 파스 냄새..

명칼럼, 정의 2017.08.16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26세 유시민이 쓴 항소이유서는, 그렇게 전설이 됐다” 기사입력/수정 : 2017-06-10 12:32 오후 [Dispatch=김희경기자] 1984년, 당시 유시민 작가의 나이는 26세. 유시민은 차가운 구치소 바닥에서 글을 써내려갔다.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됐다. 자신에 대한 판결이 부당하다는 호소문, 오타가 났다고 두 줄 그어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차디찬 방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펜을 들어 재판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14시간을 쉼없이 썼다. 단 한 번의 퇴고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전설이 된 항소이유서다. 유시민은 9일 tvN ‘알쓸신잡’에서 구치소에서 항소이유서의 뒷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1984년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 주모자로 몰렸고, 1심에서 징역형을 선..

명칼럼, 정의 2017.06.10

박정희를 청산해야 할 이유

박정희를 청산해야 할 이유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늘 세월은 흐르고 새해가 오지만 올해는 범상한 해가 아니다. 추운 날씨에도 10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오직 불의에 분노하고,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이 열망이 이번에는 실현될까? 과거 몇 차례 찾아왔던 호기를 번번이 놓쳐버린 우리가 과연 적폐를 청소하고 새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첫 단계는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불법을 밝혀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정도로 새나라 건설은 안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잘했는데, 그 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명칼럼, 정의 2017.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