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의 타계와 ‘연대의 가치’
스물일곱 청년이 감옥에 갇혔다. 20년 20일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쉰을 바라보는 중년이었다. 분노와 회한으로 가득 찰 법했지만 아니었다. 낮은 어조로 인간의 가치를, 공감과 공존을 이야기했다. 모진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인간성의 고귀함을 증명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혁명적 언어가 아니었으나, 많은 이들의 내면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다. 누군가는 위로를, 누군가는 깨달음을,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나침반을 얻었다. ‘무기수 신영복’은 시대의 스승이 되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타계했다. 고인은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 지성이자, 앎과 삶이 일치한 지식인이자, 절제와 품격을 갖춘 ‘어른’이었다. 빈소가 차려진 성공회대에 수많은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고인이 온 생애를 매달린 화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연대를 통한 변화였다. 지난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생은 말했다. “한꺼번에 사회가 생각을 바꾸는 역사적 계기는 없습니다. 곳곳에 작은 숲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은 숲들끼리 소통의 연대를 만들어간다면 변화의 역량을 축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인이 ‘희망의 언어’라고 일컬어온 ‘석과불식(碩果不食·종자가 되는 과실은 먹지 않는다)’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씨 과일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준다”며 더불어, 꾸준히 일궈가는 변화의 힘을 강조했다.
연대와 공존의 가치를 이어받는 일은 산 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의미 있는 변화란 몇몇의 명망가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소수 지식인의 현학적 담론으로 이끌어낼 수도 없다. 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다양한 층위에서 작은 실천이라도 쉼 없이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때 변화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교도소의 우리들은 (여름 징역보다)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여름 징역은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만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지금 ‘여름 징역’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더불어 숲’의 가치가 절실하다. 신영복 선생의 안식을 기원한다.
2016.1.18. 경향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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