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恨
역사의 고장 호남은 저항과 충절의 땅이다. 호남인들은 사회적 모순에 온몸으로 저항했고 시대정신을 선도했으며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민족의 젖줄 호남 땅은 역설적이게도 저주의 땅이 되었고, 그래서 한이 짙게 서린 고장이 되었다.
진취적인 기상으로 아시아의 바다를 누비며 동양의 로마를 꿈꾸던 백제가 거친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와 함께 외세와 야합한 폐쇄주의적인 신라에 멸망당한 것은 민족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집단 자폐증에 걸린 그 후손들이 쉼 없이 벌인 호남에 대한 부당한 저주와 핍박은 호남인들에게 저항정신을 심어주었고, 그 저항정신은 대국적인 의(義)로 승화되어 호남을 충의의 땅, 역사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부당한 저주에 호남인들은 한이 맺혔고, 그 한을 삼키며 저항하고 의를 실천해 나간 것이다.
호남에 대한 의도적인 차별과 핍박은 정치적인 산물이다.
신라가 백제를 지배하기 위해, 고려가 끝까지 저항했던 후백제인들을 견제하며 신라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그들은 백제인들을 부당하게 핍박했고, 또 조선의 사림(士林)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호남은 “전래의 역향(逆鄕)”이라며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일부 실학자들이 풍수지리설로 거들고, 삶에 지친 민심을 파고들던 참서(讖書) 등이 가세해 우리민족에게 호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깊고 넓게 각인 시켜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 땅의 정치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민족적인 더러운 정치적 유산을 답습하고 있으며, 내일의 정치도 그 철고리를 쉽게 끊을 순 없을 것 같다. 또한 여기에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은 북한은 고구려를, 남한사학의 주류를 신라를 한국사의 정통으로 고집함으로써 백제사는 계속 찬밥이 되어 정당한 평가도 없이 지워져 버리지나않을까 하는 점이다.
언제나 넉넉했지만, 역사적으로 한을 업처럼 안고 이고 살아온 이 땅의 영원한 비주류 호남인들......, 그들은 오늘도 목이 메인다. “우리도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라고.
의(義)를 위하는 일이라면 호남은 뭉친다. 정의(正義)가 쉼없이 능욕당하는 이 땅에서 의는 그들의 너무도 깊은 한을 푸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어둠의 시대를 갈아엎으려는 1980년 빛고을 광주의 비극도 잠들지 않고 언제나 깨어있는 의를 향한 호남의 또 다른 아픔이었다.
양정석 / ‘1,300년 역사의 비주류 호남의 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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