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송담(松潭) 2025. 3. 24. 05:41

“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 연합뉴스

 

(...생략...)

 

유흥식 추기경이 지난 21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영상담화를 냈다. 12·3 내란 후 사제 등의 시위 참가와 성명은 있었지만, 종교 지도자로선 첫 공개 탄핵 목소리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 추기경은 “우리 안의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며 헌재의 조속한 선고를 요청했다. “사회 지도층이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한 그의 개탄은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는 말로 이어졌다.

 

이 말에서 단테의 <신곡>에 나온 “선과 악이 싸울 때 중립을 지키는 자에겐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면 과한 유추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내란’은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하루하루 불안하고 힘든 지옥과 다름없고, 그 지옥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회복하는 마지막 양심이 ‘윤석열 파면’이라는 유 추기경 호소를 헌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구혜영 / 논설위원

(2025.3.24 경향신문)

 

< 2 >

 

7세 고시, 이러다 다 망한다

 

 

‘7세 고시’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유행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려고 보는 시험이란다. 7세는 늦다며 ‘4세 고시’도 생겼다. ‘초등 의대반’과 ‘초등 특목반’도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전부터 사교육이 기획한 ‘입시 경쟁’에 내몰린다. 아동학대나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보면 6세 미만의 아이 중 절반가량이 사교육을 받았고, 영어 사교육 비용으로 1인당 월평균 154만원을 썼다. 이 정도면 사교육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다.(...생략...)

 

경쟁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전제한다. 사교육은 경쟁을 강화할 뿐이다. 아무리 사교육에 매달려도 경쟁 구도는 변함이 없고 다수는 패자가 된다. 2023년 한국은행 연구보고서도 짚었듯이, 청년들은 경쟁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을 많이 느낄수록 결혼과 출산을 망설인다. 미혼율이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진다. 고령화는 빨라진다. 이런 결과를 낳는 경쟁을 이제 유아부터 하고 있다. 이러다 다 망한다.

 

1980년대 이후 성장 둔화로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기 시작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반듯한 정규직’을 대체했고 이제는 프리랜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가 대폭 늘었다. 많은 청년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한다. 나중에 좋은 일자리로 옮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도 늘어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좌절과 소외를 겪는 청년이 늘어난다. 거듭되는 좌절과 소외는 사회를 향한 분노를 낳는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많아지면 세력이 생겨나며 극우의 풍요로운 토양이 마련된다. 극우는 사회적 좌절과 소외를 먹고 자란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생략...)

 

적어도 초등학교까지 교육은 자연에서 또래와 마음껏 뛰노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자연과 친구에게서 어떤 학원도 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배운다. 내가 사는 수녀원 뜰에서 함께 뛰노는 아이들의 활짝 핀 얼굴을 볼 때마다 드는 확신이다. 행복하게 자라나는 아이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행복해진다.

 

조현철 /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2025.3.2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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