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송담(松潭) 2025. 4. 2. 05:17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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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 입법적 타협을 통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맡기면,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는 오히려 이념적 분열을 심화하고 사법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한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타협과 합의를 생명으로 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타협과 합의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심의의 본질은 훼손되고, 제도적 정당성은 약화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념적 분열을 고착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왜 우리 정치가 이렇게 망가졌는가? 누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초래했는가?

 

지금의 탄핵정국에서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정치적 악으로 단죄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였지만, 윤석열이 사라진다고 우리 정치가 좋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가 악이라면, 무분별한 줄 탄핵으로 헌정질서를 교란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역시 악이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라는 최악의 정치를 초래한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의 관심이 온통 두 명의 정치인에게 쏠려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최악의 정치를 초래한 우리의 정치 구조이다. 왜곡된 정치 구조를 바꾸고 타협과 합의의 정치를 다시 복원하려면, 우리는 결국 헌법을 바꿔야 한다.

 

물론 헌법 개정을 논의하려면, 지금의 탄핵 사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국민이 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헌법기관 자체를 불신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정권 획득이라는 이익에 눈멀어 국민을 선동하느라 여념이 없다. 불법적 위헌적 계엄을 선포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입법권을 독점하여 국정을 마비시킬 정도로 탄핵을 남발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의 유일한 항변은 기껏해야 우리는 모든 것을 법률에 따라 행한 것일 뿐 위법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법 형식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점이다.

 

사법부는 삼권분립 지켜낼까

 

우선은 사법을 신뢰하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겠지만, 우리는 동시에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법의 존재만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다. 권력만 추구하는 정권이나 독재자들은 언제나 공동의 이익보다 개인적 또는 당파적 이익을 위해 법률을 제정했다. 깨끗이 면도한 얼굴을 포함한 서유럽 관습을 채택하여 러시아를 현대화하려고 했던 표트르 대제가 수염을 유지하고자 하는 남성에게 세금을 부과했다는 것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전체주의 국가는 단 한 명의 후보만 허용하는 선거 제도를 도입하여 국민의 실질적 선택권을 제거하고, 어떤 나라는 범죄를 저지른 본인뿐만 아니라 최대 3대까지 온 가족에게 처벌을 내린다. 모두 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법적 형식주의는 정의보다는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말이 되지 않는 법을 통과시키는 정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법률 형식주의가 합리적 정당성을 거스르면 여전히 부조리한 법률이 만들어진다. 정당성이나 공정성과 상관없이 법적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는 법적 형식주의는 그것이 설령 비이성적이거나 해로운 결과를 낳더라도 법이 준수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권위주의 정권은 합법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반대를 침묵시키고, 정치적 억압을 정당화하고, 통제를 유지하는 데 법을 이용한다. 어떤 정당이 다수결 원칙에 따라 자신의 당파적 이익에 맞는 법을 쏟아낸다면, 국민은 장기적으로 입법부를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법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특정 집단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법은, 그것을 아무리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치장하더라도, 보편적 정당성을 상실한다. 독재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도 과도한 법률 형식주의는 윤리적 적용보다 기술적 준수를 우선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치의 양극화이다. 법원이 정치적 역할을 맡게 되면, 사법부는 중립적인 중재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사법부는 사실 법률을 만들지 않고 적용할 뿐이지만 모든 사람이 법률을 따르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사법부가 독립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사법부가 정치적 분쟁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영향을 받으면 합법성을 훼손하고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를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의 사법부는 과연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삼권분립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진우 / 포스텍 명예교수

(2025.4.2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