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할머니의 마스크

송담(松潭) 2022. 12. 8. 07:32

할머니의 마스크

 

 

 

혼잡한 도심의 교차로를

 

낡은 리어카 한 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잡동사니 고물을 잔뜩 실은 채

 

신호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쁘게 걸어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놀란 차량들이 잇달아 경적을 울려도

 

끌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리어카는

 

그냥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혼자 움직이는 듯한 리어카가 신기하여

 

손잡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그곳엔 리어카보다 자그마하고

 

실려진 고물보다 더욱 낡고 구부러진

 

할머니 한분이 폭염에도 불구하고

 

때묻은 광목천으로 입을 휘감은 상태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찌든 삶의 무게에 짓눌려도

 

나름 꿋꿋하게 견뎌왔지만

 

코로나 19가 창궐한 두어 해 전부터는

 

스스로 생사의 경계선에도 서 보았고

 

소중한 사람과 때아닌 이별도 하였습니다.

 

참혹했던 아픔의 순간이 떠올라 잠시

 

멈칫하고 있을 때

 

리어카를 에워싼 차량들 중에 누군가 다가와

 

새 마스크를 한장 건네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땀에 젖은 천을 풀어헤치고는

 

받아 쥔 하얀 마스크를 써 봅니다

 

그때 주위의 몇 사람들이 달려들어 리어카

 

끌고 밀며

 

신속하게 교차로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불편한 걸음으로 뒤따르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습니다

 

고개 들어 힐끔 쳐다본 하늘에는

 

할머니의 인생을 닮은 새털구름이 떠있고

 

그리 멀지 않은 야구장에서는

 

모처럼의 응원 함성이 들려옵니다.

 

* 제21회 공무원연금 문학상 시부문 은상 수상작

 

윤원욱 / 강원도지방경찰청 퇴직

(공무원연금 2022.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