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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쾌거

송담(松潭) 2024. 11. 4. 06:21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쾌거

 

 

한국 작가 최초,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 ⓒ김병관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후 한국인으로선 두번째 받은 노벨상이자, 첫 노벨문학상이다.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인간의 아픔을 문학 언어로 승화시켜온 작가의 고투가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 성취로 평가된다. 작가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 문학 쾌거라고 할만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을 발표하면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한강이 9년 간 고통스럽게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4·3항쟁이 배경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수상의 큰 부분으로 보인다. 죽음·폭력 등 역사속 인간의 문제를 시적 문체로 풀어낸 그의 작품세계가 단순히 한국 사회만이 아닌 인류의 문제로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가 불온한 전쟁의 시대로 끌려가는 오늘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주는 울림은 그래서 크다. 역사가 인간에게 올 때 일어나는 온갖 어리석음과 병적 ‘비극’들에 대한 경고라 할 것이다.

 

한강은 13살 때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보여준 5·18 광주항쟁 사진첩 속 희생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깊은 물음을 품게 됐다고 했다. 2009년 1월 용산 참사를 보면서 “저건 광주잖아”라고 중얼거린 그는 반복되는 사회적 아픔과 보편적 인간성 문제에 깊이 천착해 왔다.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 <채식주의자> 역시 인간의 폭력성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로 등단한 시인의 섬세한 내면의 감수성과 언어도 한강 문학의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림원은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화의 정수라할 문학에서 이뤄낸 최고의 성취여서 더욱 값지고 기념비적이다. 영화·드라마·K팝·한식 등 한국 문화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강은 지난해 메디치문학상 수상 후 “9년에 걸쳐 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하나의 짝인 셈인데, 너무 추웠다. 겨울에서 이젠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머물지 않는 그의 작품이 더 큰 성취가 있길 기대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한국 문학의 융성과 활약도 기대한다.

 

(2024.10.11 경향신문 사설)

 

< 2 >

 

싱어송라이터 한강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 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 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 노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만들고 부른 노래 ‘12월 이야기’는 그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의 부록으로 발표했다. 반주도 없이 생목소리로 가만가만 부르는데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까지 전달된다. 10곡의 노래를 차분하게 듣다 보면 따스한 진심이 느껴진다. 연극 <12월 이야기>를 보고 만든 노래라고 했다.

 

한강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가난한 소설가의 딸이었기에 문방구에서 종이 건반을 사서 연습만 했을 뿐 정작 피아노를 배운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악보를 쓰는 대신 생각나는 대로 녹음해둔 노래로 앨범을 완성했다. ‘12월 이야기’는 가수 이지상과 듀엣으로 불러 발표하기도 했다.

 

“안녕이라 말해본 사람/ 모든 걸 버려본 사람/ 위로받지 못한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 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또 다른 곡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들으면서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수상 이유가 떠올랐다. 한강의 힘은 ‘연약함을 보듬는 마음’이 아닐까.

 

한강이 어느 날 택시에서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악뮤(AKMU)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역시 사랑이 가득한 노래다.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라는 가사가 울컥하게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이 밥 딜런에 이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두 번째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오광수 / 대중음악평론가

(2024.10.14 경향신문)

 

< 3 >

 

‘전쟁인데 무슨 잔치?’

 

 

2017년 10월5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군사 행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폭풍 전의 고요’를 언급했다. 그해 초부터 예열된 한반도 전쟁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았다. 사흘 뒤 뉴욕타임스에 소설가 한강의 기고문이 실렸다. 한강은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에서 “갈수록 악화되는 말의 전쟁이 실제 전쟁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한반도에서 또 다른 대리전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며 “승리로 귀결되는 어떠한 전쟁 시나리오도 없다”고 했다.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는 미국 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한강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담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면서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내전,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 등을 조사했다고 한다. 한강은 “국적·인종·종교·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로 여길 때 참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부친 한승원 소설가의 전언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며 마다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영광보다 타인의 아픔을 배려하는 한강의 입장에 공감한다. 실제 수상 소감은 오는 12월10일 노벨상 시상식에서 듣게 되겠지만, “이 비극적인 일들을 보면서 즐기지 말아 달라”는 그의 말이 주는 울림은 이미 세계로 퍼지고 있다.

 

1945년 미국이 투하한 원폭 피폭자들이 결성한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는 지난 11일 노벨 평화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에서 피투성이 된 아이들이 억류되고 있다. 80년 전 일본과 같다”고 했다. 이미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15만명,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선 100만명 넘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반도에선 대북 전단과 대남 쓰레기를 담은 풍선이 휴전선을 넘나들더니, 평양 상공에 나타난 남한 무인기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치솟고 있다. 비인도적 전쟁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평화를 향한 전 세계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

 

안홍욱 / 논설위원

(2024.10.15 경향신문)

 

< 4 >

 

노벨문학상’ 한강이 되살려낸 존엄의 언어

 

 

 

2016년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흘이 지났습니다. ‘한강 신드롬’입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의 책을 사기 위해 ‘오픈 런’이 벌어지고,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에 인파가 몰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작가 이름과 대표작 제목으로 도배됩니다.

 

반가운 일이지만, 저는 보이는 현상 말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한강이 부순 장벽, 장벽의 잔해 속에서 새로 정돈되는 가치, 그리고 위로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한강은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 국제적 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입니다. 그럼에도 ‘한강’과 ‘노벨문학상’을 연결해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다수가 ‘남성·서구·백인’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터입니다.

 

국내 문학계에선 ‘상대적으로 젊은’ 50대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여성 소설가들이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한국 현대문학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언론과 문단에선 나이 많은 남성 작가들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여겨왔다”고 전했습니다.

 

한강은 묵묵히, 꾸준히 썼습니다. ‘성별·연령·인종·지역·언어’ 같은 장벽에 균열을 냈습니다. 밑동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장벽들은 기어코 무너져 내렸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사설에서 한강을 ‘아웃사이더’로 지칭하며 “대담한 아웃사이더가 보상받았다”고 평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독한 백래시(backlash·반동)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가폭력으로 고통받은 피해자와 가족들, 가부장제 구조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이 지지와 공감을 얻기는커녕 혐오와 차별의 표적이 됩니다.

 

거대한 장벽을 허문 한강 작가 역시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백래시의 피해자입니다. 그런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백래시 속에 일그러진 가치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계기로 작용할 겁니다. 많은 것들이 역행하고 퇴행하는 시대, 제자리 찾기가 시작될 겁니다.

 

“일상 속에서 정말 깊은 진실을 보거나 보여주기 쉽지 않잖아요. 친구와 밥을 먹다가 ‘나는 요즘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하고 있어’라고 고백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꺼내기 쉽지 않지만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문학이 다루면, 그걸 읽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 안에 있던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매일경제 인터뷰).

 

한강의 말대로 <소년이 온다>를 마지막장까지 읽어낸 독자는 자신 안에 있던 뭔가를 발견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도청에)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시민군)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극히 일부이지만, 다른 반응도 들려옵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뤘다고,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여성이라고 불만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땐 미국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의 조언이 유용합니다. 그는 신호(진짜 의미있는 정보)와 소음(잘못된 정보)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가치의 회복과 재정립, 새로운 시대의 부상을 예고하는 ‘신호’입니다. 일부의 폄훼는 한때의 ‘소음’에 불과합니다.

 

한강의 수상은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중입니다. <소년이 온다> 주인공 동호의 모델이 된 고 문재학군(1980년 당시 16세)의 어머니 김길자씨(85)는 “평생 내가 못해낸 일을 소설가 한 분이 좋은 글로 세계에 알렸다”며 감격스러워합니다.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파헤친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는 대목에 공감한 여성들이 한강의 수상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1995년 방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간담회 내내 한 가지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 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올까…..

 

그날이 와서 기쁩니다. 수상자가 한강이어서 더 기쁩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2017년 노르웨이 문학의 집 강연)을 소명으로 삼는 작가여서 그러합니다. 작고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압도적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 그럼에도 끝내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를 찾아준 작가여서 그러합니다.

 

한강은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말하며 축하 행사와 기자회견을 사양했습니다. 가장 영예로운 순간에 가장 약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과 그 이후의 세상은, 분명히 조금은 다를 겁니다.

 

김민아 /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2024.10.15 경향신문)

 

< 5 >

 

한강과 노벨 문학상 그리고 인문학

 

 

소설가 한강이 올해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반만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어난 꽃처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선사된 감격스러운 선물이며, 위로이자 축복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에 대해 “한강의 작품세계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며, 그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고 밝혔다.

 

2016년 5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영미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한 칼럼에서 “그녀의 작품에서는 문화인류학적 따스한 정서인 인류애를 진하도록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거친 역사의 단면인 제주 4·3사건이나 광주 5·18민주화운동과 같은 우리 민족의 삶과 죽음의 서사에서 인류 보편적인 휴머니즘의 실타래를 씨줄·날줄로 연결하여, 세계인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근원적으로 그녀에게 사람의 본질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인문학적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일 테다. 한강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인간이라는 주제가 자신이 소설을 쓴 동력이라고 밝힌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를 말해왔다. 그런 속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인류애를 추구하는 인문학이 우리와 세계 공동체의 보편적 유대감 형성에 얼마나 큰 가교 역할을 하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전환적 계기가 될 것이다. 인문학은 순수학문이자 기초학문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생활하는 데 필요하며, 모든 학문의 토대를 이루는 상상력과 창조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또 단순한 수치상의 정량적 기준보다는 다양한 변수와 변화를 포괄하는 정성적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하며, 지식이 아닌 가치를 추구하도록 도와준다. 문학과 철학, 예술과 같은 다방면의 인문학 지식은 마음속에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져다 준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사고체계는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신뢰와 협력으로 이어진다. 인문학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의 원천인 것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선 한강의 작품들이 신드롬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미래를 이끌 우리 아이들은 최고의 문학적 가치를 평가받은 그녀의 작품을 학습 목적으로도 열심히 읽을 것이다. 한강의 작품을 비롯해 철학, 과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영역의 양서들이 더 많이 읽혀지길 바란다.

 

세계적 미래학 리더인 롤프 옌센은 저서 <꿈의 사회>에서 우리 사회는 결국 상상과 협력의 가치를 사고파는 꿈의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꿈의 사회에서 인류를 행복한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존재 자체로 감사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며, 인류 번영을 위한 혁신적 상상력으로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만드는 인문학적 소양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가 결국 어려운 이웃의 손을 따스히 잡을 수 있으며, 또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우주선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이념적 갈등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회복 탄력성 있게 미래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 정신세계 기저에 휴머니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강이 쏘아올린 인문학의 화살이 우리 대한민국을 감성적 따뜻함과 창조성이 가득한 행복의 나라로 안내하길 소망한다.

 

배기표 / 시인

(2024.10.16 경향신문)

 

 

< 6 >

 

‘한강’의 역류, 정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환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한강이다.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때 문학의 희망을 다시 열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환호할 만한 사건이다. 개인적으론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이 가장 빛난 결과가 ‘한강’이라는 점이 특히 반갑고 고마웠다. 2016년 밥 딜런 수상에서 보듯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은 한 사회의 무의식과 호흡하고, 세계를 변혁하려는 모든 노력에 대한 애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한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기존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과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가해, 피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5·18을 삶의 상처로 승화시켰다. 2009년 1월 용산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며 “저건 광주잖아”라고 한 에필로그, 죽은 열여섯 살 소년 동호가 엄마에게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라고 한 부분을 보자. 국가폭력의 구조와 가해자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폭력 앞에서도 숭고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소설엔 살아남은 누나와 누나 친구들도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자로 짐작된다. 악몽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중간에 한번 질문 형식으로 쓰여졌다. 마치 당사자가 된 듯한 작가의 통증이 느껴졌다. 이 여성들에게 5·18이란 총을 쏠 수 없는 자와 총을 쏠 수 있는 자를 가르는 싸움 아니냐는 완곡한 물음이었다. 여성들은 지독한 고통에도 죽은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못해 사는 내내 자신들의 삶이 장례였다며, 동생의 죽음이 살아남은 모두의 아픔이라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이처럼 국가폭력에 가려진 고통의 개별성과 마주하게 했고, 고통의 개별성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힘이라는 걸 알게 했고, 이 과정은 온전히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한 여성, 영혜의 이야기다. 왜 육식을 거부했는지 영혜의 설명은 없다. 대신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 등 주변 인물들이 불편한 시선으로 영혜를 대하는 스토리텔러로 등장한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하는 아버지도 있다. 그러고 보면 <채식주의자>란 제목은 육식(착취) 사회에서 식탁(가부장제)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을 불온한 존재로 몰기 위한 명사일 수도,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데 대한 저항의 명칭일 수도 있다. 한 작가는 이어진 소설 <나무 불꽃>에서 “햇빛만 있으면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된다”며 나무가 되려는 영혜의 모습을 그렸다. 육식 강권 사회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굶어죽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영혜를 보며 페미니즘이 역사적(일상적)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그건 여성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여성을 더 이상 수동태로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더 놀라웠던 건 지금 직면한 문제들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일상에서 깨닫는,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페미니즘의 자세를 작가가 견지했다는 점이다. 한 작가는 “전쟁 비극에 무슨 잔치냐”며 수상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페미니즘이 두 번째 휴머니즘인 이유를, 한 작가는 인류에 대한 예의가 담긴 이 한마디로 풀어냈다.

 

한 작가 수상은 탈근대(개별성, 다양성), 보편성 획득으로 평가된다. 진작 정치가 할 일이었다. 근대가 무엇인가. 우리가 국가 공동체를 만들고, 주권자가 되어 서로 돕자는 약속 아니던가. 그러나 그 약속은 번번이 소수자와 약자들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은폐했다. 이를 되돌려야 할 정치는 오히려 근대의 무기인 대결 담론으로 무장한 채 이들에 대한 근대의 배반을 외면했다. 양극화 정치는 갈수록 틈이 커지고 있고, 같은 진영 내에서도 다양성이 설 자리는 없다. 명태균이라는 룸펜프롤레타리아(황금만능주의에 찌든 무리)에 휘둘리는 여권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한 작가 수상에 “고은, 황석영이 먼저 받았어야 할 상”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도 들린다. 뉴욕타임스는 “나이 든 남성 작가만이 노벨상 후보라 보고 있나”라며 이런 억지담론에 일침을 놓았다. 탈근대가 버겁다면 역사적 트라우마의 보편성이라도 얻으려 노력하는 게 마땅하건만 정치는 그마저도 포기했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은 아직도 헌법 전문에 없다. 심지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망언을 또다시 쏟아냈다.

 

한 작가는 16일 스웨덴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한강’이라는 새 물결에 정치의 역류가 계속되는 한, 정치를 향한 한 작가의 질문도 계속될 것이다. 정치는 무어라 답하며 ‘한강’의 물줄기에 합류할 텐가.

 

구혜영 / 정치부문장

(2024.10.17 경향신문)

 

< 7 >

 

'소년이 온다'중에서

 

< 7-1 >

 

 그날 밤 난 홑이불을 배에 감고 누워 일찍 잠든 척하고 있었지.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고 들어 온 누나가, 언제나처럼 세면장에 상을 펴고 식은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소리가 들렸어. 씻고 이를 닦은 누나가 발뒤꿈치를 들고 들어와 창문으로 다가가는 옆모습을, 난 어둠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어. 모기향이 잘 타고 있는지 확인하려던 누나는 내가 창틀에 세워놓은 칠판지우개를 발견하고 웃었어.      (...생략...)

 

 언제나처럼 나에게서 멀리 이불을 펴고 누웠다가 가만가만 무릎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지. 잠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나는 정말로 눈을 꼭 감았지. 누나가 내 이마를 한번, 뺨을 한번 쓰다듬곤 이부자리로 돌아갔어.

(...생략...)

 

 잠든 누나로부터 희미하게 날아오는 로션과 파스 냄새. 삐르르 삐르르, 숨죽여 울던 마당의 풀벌레들, 우리 방 앞으로 끝없이 솟아오르는 커다란 접시꽃들. 네 부엌 머리 방 맞은편 블록담을 타고 오르는 흐드러진 들장미들의 기척. 누나가 두 번 쓰다듬어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감은 얼굴.

 

(...생략...)

 

 천변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지 뭉클뭉클한 맞바람의 중심을 가르며 달렸지. 내 하얀 하복 셔츠가 날개같이 퍼덕였지. 뒤에서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면서 힘차게 페달을 밟았지. 네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들으면서, 더 신이 나서 페달을 밟았지.

 

 초파일이 마침 일요일이었을 때였지. 엄마를 모신 절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 누나와 함께 강진에 내려갔지. 시외버스 창밖으로 봄날의 논배미들이 보였지. 누나 온 세상이 어항이야. 모를 내기 직전의 맑은 논물에 하늘이 끝없이 비쳐 있었지. 아카시아 냄새가 창틈으로 새어들어와, 나도 모르게 코가 벌름거려졌지.

 

 누나가 햇감자를 쪄줬지. 혀를 데어가며 그걸 후후 불어 먹었지. 설탕같이 부스러지는 수박을 먹었지, 새까만 보석 같은 씨앗들까지 꼭꼭 씹어 먹었지.

 

 국화빵 봉지를 스웨터 속 왼쪽 가슴에 품고 누나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렸지. 두 발은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었지, 심장만 활활 타는 것 같았지.

 

 키가 자라고 싶었지.

 팔굽혀펴기를 마흔번 연달이 하고 싶었지.

 언젠가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지.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될 여자. 얼굴을 모르는 그 여자의 심장 언저리에 떨리는 손을 얹고 싶었지.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 7-2 >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 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도청 앞 스피커에서 연주곡으로 흘러나온 애국가에 맞춰 군인들이 발포한건 오후 한시경이었습니다. 시위 대열 중간에 서 있던 나는 달아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산산 조각나 흩어졌습니다. 총소리는 광장에서 만 들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높은 건물마다 저격수가 배치돼 있었습니다. 옆에서, 앞에서 맥없이 쓰러지는 사람들을 버려둔 채 나는 계속 달렸습니다. 광장에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됐을 때 멈췄습니다. 허파가 터질 듯 숨이 찼습니다. 땀과 눈물에 얼굴이 흠뻑 젖은 채 셔터가 내려진 상점 앞 계단에 주저앉았습니다. 나보다 강한 몇몇 사람이 다시 거리 가운데 모여, 예비군 훈련소에 가서 총을 가져오자고 의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있으면 다 죽어요. 우릴 다 쏴 죽일 거란 말이오. 우리 동네는 집에까지 공수들이 들어왔소. 무서워서 나는 머리맡에 식칼을 두고 잤소. 말이 됩니까. 저쪽은 총이 있는데, 수백발을 저렇게 백주 대낮에 쏘는데!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의 트럭을 몰고 돌아올 때까지 그 계단에 앉아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총을 들 수 있는지,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군인들이 가진 수천정의 총이 수십만의 사람들을 살해할 수 있다는 것, 쇠가 몸을 뚫으면 사람이 쓰러진다는 것, 더웠던 몸들이 차가워진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함께 올라탄 트럭이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두차례 길을 잘못 들었고, 겨우 도착한 예비군 훈련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총을 가져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 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 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계엄군이 십분 안에 도청에 다다를 거라는 무전이 들어왔을 때, 김진수는 자신이 맡은 창을 등지고 서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죽을 거지만, 여기 있는 어린 학생들은 그래선 안 된다. 마치 자신이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이나 마흔쯤 되는 사내인 것처럼 그는 말했습니다.

항복해야 돼. 만약 모두 죽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총을 버리고 즉시 항복해 살아남을 길을 찾아.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7-3 >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성큼성큼 헬기를 등지고 걸어와, 마중 나온 장교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7-4 >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렇게 만나 싸웠다이. 헤어질 적마다 엄마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쓸고, 눈을 들여다봄스로 다시 보자고 약속을 했다이. 없는 살림에 추렴을 해서 전세 버스를 맞추고 서울 집회에도 올라갔다이. 한번은 모진 놈들이 우리 버스 안에 사과탄을 던져넣어서 한 엄마가 숨을 못 쉬고 쓰러졌어야. 모두 잡혀 전경차에 실려갔을 적에, 그놈들은 한적한 국도변에 한 사람떨어뜨려놓고, 한참 가다 또 한사람 떨어뜨려놓고…… 그렇게 우리를 다 흩어 놨어야, 나는 지리도 모르는 갓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이. 다시 우리들이 모여서 서로 등을 문지를 때까지 추위에 퍼레진 입술들을 들여다볼 때까지.

 

 그렇게 끝까지 같이하기로 했는디, 이듬해 느이 아부지가 병을 얻어 약속을 못 지켰어야, 겨울에 임종할 때엔 야속했다이. 이 지옥에 나만 남겨놓고 가는 것이.

 

 허지만 죽은 다음의 세상을 나는 모른게. 거그서도 만나고 헤어지는지 얼굴이 있고 목소리가 있는지, 반갑고 서러운 마음이 있는지 모른게. 느이 아부지 잃은 것을 가엾어해야 하는지, 부러워해야 하는지 어떻게 내가 알었겄냐.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어쩌끄나, 젖을 뗄 적에 너는 손톱이 종이맨이로 얇아질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는디.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고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여덟 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암것도 아닌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여름밤 마당 평상에서 느이 아부지하고 삼형제하고 같이 수박을 먹을 적에, 입가에 묻은 끈끈하고 다디단 수박물을 네가 혀로 더듬어 핥을 적에.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 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내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가을비가 지나가서 하늘이 유난히 말간 날엔 잠바 속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무릎을 짚음스로 절름절름 천변으로 내려간다이. 코스모스가 색색깔로 피어 있는 길,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죽은 지렁이들에 쇠파리가 꾀는 길을 싸묵싸묵 걷는다이.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 로.

 

 한강 / ‘소년이 온다중에서

 

 

소설가 한강(46)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한강 씨의 이번 수상은 한국문학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며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한강은 문인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는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펴낸 한국 문단의 거장 소설가 한승원이다. 한승원과 한강은 국내 최고 소설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을 부녀 2대가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강의 남편은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한 문학평론가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다. 오빠 한동림 역시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지난 1970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난 한강은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은 소설가다

 특히 한강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시로 먼저 등단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지난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당선됐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공식 데뷔했다. 수상작은 단편 붉은 닻’. 

 이후 한강은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소설 외에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 ‘눈물상자 등을 펴내기도 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연재된 연작소설로, 2007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한강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은 채식주의자와 함께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소년이 온다.  

현재 한강은 지난 2007년부터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6.5.17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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