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박용래와 강아지풀

송담(松潭) 2024. 11. 26. 06:23

박용래와 강아지풀

 

 

 

 

강아지풀은 흔하디흔한 풀이다.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도 아니다. 그저 길가나 풀숲 귀퉁이에 자라 눈여겨보는 이도 없다. 사는 곳이 어디건 주인 행세도 하지 않는다. 긴 수염이 달린 좁쌀 같은 열매가 강아지 꼬리를 닮아 한자로는 구미초(狗尾草)라 한다.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강아지풀을 시인 박용래는 ‘가장 사랑하는 한마디의 말’이라 했다. 고개 숙인 강아지풀의 턱밑을 간질이며 강아지 어르듯 ‘오요요 내 강아지’ 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아지풀을 집에서 기르는 털북숭이 강아지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 그의 만물 사랑은 넓고도 깊어 동식물 구분이 없었다. 그는 강아지풀을 보고 “빛을 바라며 어둠 속에서 우는 어린이 같은 존재”라고 했지만, 나는 시인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대학 새내기 시절 나는 그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그가 젊은이들이나 신던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던 것이 유독 내 눈길을 끌었다. 무척 신선하다는 생각에 “선생님, 어째 운동화를…?”이라고 묻자, 그는 특유의 어눌하고 쭈뼛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원래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술 먹고 하도 자주 잃어버려 구두를 감당할 수 없었어”라고 말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까지 나는 천진난만이라는 단어는 어린아이에게만 해당하는 표현으로 여겼다. 형형한 눈빛마저도 순진무구로 수렴되었다. 그때 그의 모습과 어투가 그랬다. 반짝이는 구두보다, 오히려 그의 성정과 더 어울렸던 해진 운동화.

 

하고많은 꽃들이 지천인데, 강아지풀을 가장 사랑했던 시인. 서정적 풍경을 펼쳐 보이는 시는 모나지 않은 그의 고향 산천과 바람을 닮아 치솟거나 세차지 않다.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눈은 온기에서 비롯됐으니, 품성 그대로다. 시인의 눈시울은 항시 그렁그렁했다. 아예 눈물을 달고 살았다고 해야 할까. 비통하거나 울분의 눈물이 아니다. 인생의 고뇌와 허무에 떠밀린 눈물이 아니라 고향 산천과 만물의 풍정에 감동되어 절로 일어나는 정이었다.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마냥 기특하고 갸륵하며, 애잔해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사랑했다. 그를 두고 평론가 고형진 교수는 ‘생래적 서정시인’이라 했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풀 한 포기에 감응하고 해 질 녘 어스름에 취했던 박용래. 늦가을 그의 무덤가엔 녹물 든 강아지풀이 무성하리라. 새벽이슬같이 영롱하게 응축된 그의 시를 지금 다시 찾는다. 오요요 강아지풀!

 

이선 /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2024.11.26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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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적 서정·미물의 아름다움… 시인 박용래 전집·평전 출간

 

시인 박용래(1925~1980)의 고향에 그의 흔적은 없었다. 그가 태어난 충남 강경읍 생가는 공영주차장이, 유년 시절을 보낸 옥녀봉 인근의 생가는 빈터가 됐다. 은행과 교직을 관두고, 오직 시를 쓰며 살았던 박용래의 가난한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의 대표작 ‘겨울밤’ ‘황토길’ 등에 그려진 강마을의 풍경은 여전했다. 현장을 다녀온 고형진(63)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강경의 노을을 보고 나서야 박용래의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평전을 통해 그가 거쳐간 삶의 공간을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약 6년 동안 박용래의 흔적을 추적한 끝에, 고 교수는 박용래 평전, 시전집, 산문전집(문학동네刊)을 나란히 냈다. 사라져가는 그의 흔적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신중한 시작(詩作)으로 유명한 박용래는 31세에 등단해 55세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세 권의 시집을 낸 과작의 시인이었다. 세상을 떠난 직후 출간됐던 시, 산문 전집은 절판됐다. 평전은 처음이다. “모더니즘, 리얼리즘 위주의 당대 문단에서 덜 주목받았지만, 박용래의 뛰어난 작품은 시대를 넘어 살아남았다.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제대로 살려주고 싶었다.”

 

시인 백석(1912~1996)을 오랫동안 연구한 고 교수가 박용래에게 매료된 이유는 ‘미물(微物)의 아름다움’을 그렸다는 공통점 때문. “박용래는 향토적인 서정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서정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세공된 언어로 조랑말 발굽, 김치자국 등 미물에 주목했다. 박용래는 외로운 존재의 숭고함을 그린 백석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시인이다.” 시세계의 변화 역시 매력. 1970년대 중반 이후 쓴 ‘풀꽃’ ‘난’과 같은 사회 참여적 시들 중에도 명작이 많다는 설명이다.

 

박용래가 생전 발표한 작품과 유족이 건네준 글을 모두 실었다. 산문 전집은 문인,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등 박용래 시의 원형을 담았다. 시 전집은 시인의 의도를 짐작해, 미발표된 작품을 부록으로 실었다. ‘수정 전 판본’을 따로 밝힌 점도 돋보인다. 박용래는 시에 대한 완벽주의로, 문예지에 발표된 뒤에도 제목과 내용 등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저녁눈’ 중에서)의 ‘붐비다’는 처음 발표될 당시 충청도 방언인 ‘분비다’로 쓰였다. 그러나 이후 시집 ‘싸락눈’에 재수록하면서 표현을 바꾼 것. 고 교수는 “박용래는 시의 형태를 중시했다. 시의 수정 전후를 비교하면 박용래의 시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 교수는 이번 출간을 통해 “물질적, 이기적 욕망이 극에 달한 지금, 박용래를 알림으로써 후대에게 위안과 성찰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용래는 1남 4녀의 가장으로서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면서도, 시인은 방랑자여야 한다는 걸 실천한 사람이다. 본인은 가난에 고통스러웠겠지만, 그처럼 시와 자기 인생을 바꾼 사람은 없다.”

 

이영관 기자

(2022.12.16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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