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98

시간에 대한 단상

시간에 대한 단상 쇼펜하우어는, 시간은 그 자체의 힘으로 스스로를 보여줄 수 없고 단지 공간과 시간 속에 함께 움직이는 어떤 다른 것에 의거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종교적 의식이나 관행을 따라 울렸던 교회의 종소리는 신의 섭리를 담고 있는 영원한 시간을 상기시켰다.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고 이에 따라 우리 삶을 합리적으로 꾸릴 수 있다는 믿음은 르네상스 시기에 북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시계와 함께 뿌리를 내렸다. 장소나 날씨에 제약받지 않는 시계는 인간 스스로가 펼치는 복잡한 속세의 항시적인 동반자가 되었으며 일상생활의 총체적인 관리자의 역할도 맡게 되었다. 간접적으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의 이러한 속성은 동시에 시간을 개인의 삶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철학 2019.12.24

악을 생각하다

악을 생각하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2012)를 봤다.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는 행복을 갈구하는 평범한 인물이 범죄와 살인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악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에 영화는 더욱 공포스러웠는데, 나는 그 이유를 따져보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후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떠올렸다. "악한 일은 대부분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아렌트에 따르면 악은 ‘깊이 생각하지 못함’ 이라는 평범한 오류에서 발생한다. 나, 당신, 누구나..

철학 2019.08.18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소피스트가 논술 학원의 인기 강사였다면 소크라테스는 거리의 철학자였다. 그는 소피스트와 달리 돈을 받지 않고 말했으며, 논증의 기술을 연마하기보다는 논리의 정합성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자만심과 자아도취를 버리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했으며, 신의 가호가 아니라 이성의 힘에 의지해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말했다.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대중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았다. 다만 질문을 던져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대화가 진리를 찾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글을 일절 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명성과 인기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이 한창이던 B.C.420년 무렵 절정을 이루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을 섬기거나 물질을 탐하는 데 열정을 쏟을 때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

철학 2019.07.21

타자의 얼굴

타자의 얼굴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1906-1995 프랑스 철학자 )가 말하는 ‘타자(他者)’는 글자 그대로 자신 이외의 사람이 아니라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해부학자 요로 다케시 교수가 쓴 『바보의 벽』이라는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는데, 레비나스의 타자를 알기 쉽게 표현하면 바로 ‘바보의 벽이 가로막고 있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할 수 있겠다. 레비나스가 남긴 문헌은 어느 것이나 극히 난해 한데 책을 읽어 보면 타자라는 개념을 아무래도 사람이외의 개념으로도 확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확히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철학 연구자도 아닌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레비나스의 문헌에서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

철학 2019.03.05

르상티망(ressentiment)

르상티망(ressentiment) ‘르상티망(ressentiment)’을 여느 철학입문서에서처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일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 한마디로 시기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우리가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조금 더 폭넓은 개념이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씨도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이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버렸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진형적인 반응을 보여 준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

철학 2019.03.02

죽음에로 미리 달려감

죽음에로 미리 달려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세상에 수많은 것이 있다. 여름 과일 수박, 가을의 코스모스, 산책로의 이름 없는 들꽃, 나의 친구 같은 반려견 산초, 그리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존재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일컬어 ‘존재자(Serdes)’라고 한다. 세월이라는 역사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마을 앞 느티나무, 출퇴근이나 산책길에 호흡을 같이하는 나의 반려견 산초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는 존재이다. 산초의 눈은 울기도, 웃기도, 미안해하기도, 때론 뿌듯해하기도 함을 자주 드러냄으로써 나보다 더 풍성한 감정적 존재임을 알려주는 듯하지만, 산초가 자기 자신에 대해 묻는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동물학과 자연학이 발전했고 종우월주의에 대한 비판..

철학 2018.12.09

우리는 ‘부조리’와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부조리’와 함께 살아간다 ‘부조리(L'Absurde)’에 대한 논의는 《시지프 신화》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부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 어떤 인간도 삶의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부조리가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에서 부조리는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다. 부조리는 자기 모순적 행위나 부도덕한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을 지시하는 말이 아니라 실존의 사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설명될 수 없거나 증명될 수 없는 성격의 존재 사건, 삶의 이율배반,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에 관련된 판단이며 그것에 대한 현상학적 개념이다. 하지만 카뮈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부조리는 철학이나 개념으로 파악될 수 없는 일종의 감정이다. 부조리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분명..

철학 2018.12.09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 한 현자가 강가에서 명상하고 있었다. 강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본 다른 수행자는 오랜 수행 끝에 얻은 자신의 초능력을 현자에게 과시하고 싶어졌다. 그는 강물 위를 가로질러 조용히 명상중인 현자에게 다가갔다. “지금 제가 뭘 했는지 보셨나요?" “그럼요. 강물 위로 걸어오시더군요. 어디에서 그걸 배우셨지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12년 동안 요가와 고행을 했답니다. 한쪽 다리로 선 채 일주일에 엿새 를 굶으면서 노력한 결과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명상하던 현자가 강 위를 가로질러 온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런, 그걸 배우려고 그렇게 고생을 하셨나요? 2루피(60원)만 주면 언제나 뱃사공이 나룻배로 강을 건네주는데요?" 철학이란 무엇일까? 누가 얼마나 철학..

철학 2018.10.05

이문잉보인(以文仍輔仁)하는 친구가 그립다

이문잉보인(以文仍輔仁)하는 친구가 그립다 밥집이나 술자리에서 갑자기 만나 나이를 따져 형님, 동생하여 친구가 되는 수가 있다. 이 사람들이 사회생활 잘 하는 편이다. '형님 동생'으로 연을 맺으면 금방 친해진다. 호칭이 주는 마력이다. 나도 얼떨결에 형님 동생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자칫 서먹할 관계가 형님 동생 하면서 급속도로 마음이 문이 열린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간의 인간성에 대한 검증을 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겪어 본다. 그러다가 돈이 걸리는 이해문제에 직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고개를 잘 넘어가는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이해가 안 맞으면 헤어진다. 쉽게 친해진 사람은 돈 앞에서 쉽게 헤어지기 마련이다. 관계가 정리되..

철학 2018.08.02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

가까운 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2017.7.3 불교의 가르침은 무아의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그걸 얻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깨달음을 얻지 못해 무명 속에 사는 중생이기 때문이다. ‘보살행’이란 깨달은 사람처럼 사는 삶을 지칭하는 말이다. “네가 만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기쁨을 주고 최대한 슬픔을 덜어주며 살라”고 요약될 수 있는 자비행은 이런 보살행의 일부이다. 자비가 설하는 실천의 윤리학을 ‘기쁨의 윤리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흔한 말로 ‘사랑의 윤리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라면 흔한 사랑의 언행과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누구나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혹은 친..

철학 2017.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