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98

전습록(傳習錄)

전습록(傳習錄) / 왕양명 사진출처 : 철학으로 그리는 세상 주자와는 또 다른, 아니 주자를 넘어서서 성인에 이르는 길을 밝힌 철학자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왕양명, 그 전에 잠깐 드라마 이야기를 하나 하고 넘어가자. KBS 드라마 (2014)에 대한 것이다."모든 백성이 군자가 되는 나라" 극 초반부에 정도전이 토해낸 대사다. 바닥까지 추락한 정도전은 동북면의 덕장 이성계를 찾아간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자는 정도전의 말에 이성계는 분노한다. 정도전의 말은 반역을 하자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때 정도전이 말한다. 함께 손을 잡고 ‘민본정치’를 구현하자고. 사전(私田)을 혁파하여 모든 백성이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계민수전’(計民授田)이 그것이다...

철학 2017.08.29

쾌락과 생존

쾌락과 생존 꿀단지가 엎어지자 파리들이 날라들어 정신없이 달콤한 꿀을 빨아댔다. 하지만 꿀을 다 먹은 파리들은 다리가 바닥에 붙어 날아갈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한탄했다. “아, 어리석어라, 조그만 쾌락을 누리려고 목숨을 버리다니.” 달콤한 것은 왜 그렇게 좋을까? 대체 쾌락이란 무엇일까? 쾌락은 생의 필요성과 굳게 연결되어 있다. 당은 생명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단 것은 그렇게 맛있는 것이다. 번식에 성공하지 못하면 종은 소멸한다. 그래서 성적 쾌감은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개체는 즉각적인 쾌감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행동은 장기적으로 생명의 유지, 혹은 종족의 유지에 기여한다. 다만 문제는 너무나 강력한 쾌락에의 충동이 생..

철학 2017.01.24

‘이생망’과 아모르 파티

‘이생망’과 아모르 파티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생각한 지 오래다. 십대 후반이었을까 아니면 이십대 초반이었을까. 아무튼 철들고 주위를 둘러보고 난 뒤, 긴 한숨 끝에 셈해본 내 미래는 그다지 가망이 없었고 지금 유행하는 ‘이생망’의 선언을 비수처럼 품고 주저앉았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건 아마도 딱히 부와 권력으로부터의 소외의식이라기보다는 ‘인생은 고해이다’라는 수준의 탈유년의 감각이었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이생망’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자각하고 받아들였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묘비명을 둘러쓰고 죽은 척해도 또 다른 태양은 뜨고 사람들은 분주하고 세상은 무표정하다. ‘너는 망해라’라고 비웃듯 세상은 더 윤기 나고 타인들은 더 분주히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

철학 2017.01.03

이탁오(李卓五)의 동심설(童心說)

이탁오(李卓五)의 동심설(童心說) 이탁오(1527~1602)는 명나라의 사상가로 본명은 이지(李贄)이다. 명나라 말기의 중국사회는 근대화로 향할 것인가, 쇄국을 선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런 시기에 태동된 이탁오의 사상은 사(私)와 욕(慾)을 긍정하는 사상을 전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는 근대적인 개인성을 긍정함으로써 중국사상에 흐르던 이타주의보다, 이기주의적인 본심을 감추고 있는 주체성을 동련 등장시킨다. 그와 동시에 이탁오는 욕망을 긍정했는데, 욕망을 금기시하면서 도덕적으로는 위선적인 행태를 보이던 당대의 상황을 한 단계 넘어서서 욕망을 통해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은 것이다. 이탁오 사상의 핵심은, 양명학파가 따른 참된 마음인 진심(眞心)에 대한 논의에서 아이들의 마음..

철학 2016.07.31

정언 명령

정언 명령 “따뜻하게 있고 싶으면 코트를 입어라.”와 "살인하지 마라.'라는 두 명령을 비교해보자. 첫 번째 명령에는 이 말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고 있다. 따뜻하게 있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그 지시를 따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을 하고 싶은 욕구의 유무에 상관없이 '살인하지 마라.'라는 명령이 여전히 자신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년~1804년)는 정언 명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살인하지 마라." 같은 명령과 인간의 관계를 기술했다. 칸트는 인간의 욕구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무조건적인 도덕법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무조건적이기 때문에 그 도덕법은 명령문으로 표..

철학 2016.07.26

직선적 시간관과 원형적 시간관

직선적 시간관과 원형적 시간관 시간에 대한 첫 번째 관점은, 시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전진해간다는 관점이다. 시간은 과거를 거쳐 현재를 지나 미래로 향한다. 그 방향은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 이런 생각은 매우 상식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탁자 위에 유리컵이 놓여 있다. 그런데 실수로 이 유리컵을 떨어뜨렸다. 유리컵은 딱딱한 바닥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유리컵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상태를 A라고 하고 산산이 부서진 상태를 B라고 한다면,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컵의 상태는 항상 A에서 B로만 향하지, 절대 B에서 A로 향하지는 않는다. 깨진 유리컵을 치우려고 빗자루를 들고 돌아왔을 때, 깨진 유리컵이 다시 탁자 위에 올라가서 붙어 있는 일은 없다. 이렇듯 시간은..

철학 2016.04.05

물(水)은 우습지 않다

물(水)은 우습지 않다 기자가 특종을 빼앗겼을 때 ‘물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하기야 기자에게 낙종은 ‘물고문당했을 때의 고통’과도 비견될 수 있다. 1980년대 말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물태우’란 별명이 붙은 적이 있다. 나약한 지도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물(水)은 그렇게 폄훼될 물질이 아니다. 예컨대 고 신영복 선생은 ‘노자의 철학=물의 철학’이라고 정의했다. 신영복 선생이 평생 삶의 가르침으로 삼은 ‘상선약수(上善若水)’ 구절을 보라.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水善利萬物而不爭).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자리를 잡는다(處衆人之所惡).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존재다(故幾於道).” 공자 역시 물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공자는..

철학 2016.02.11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 『맹자』 곡속장(觳觫章)의 ‘이양역지(以羊易之)’ 부분입니다. 양과 소를 바꾼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가 인자하기로 소문난 제나라 선왕을 찾아가서 자기가 들은 소문을 확인합니다. 소문은 이런 것입니다. 선왕이 소를 끌고 가는 신하에게 묻습니다.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혼종하러 갑니다.” 혼종은 종을 새로 주조하면서 소를 죽여서 목에서 나오는 피를 종에 바르는 의식입니다. 아마 소가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렸던가 봅니다. 임금이 “그 소를 놓아주어라”고 합니다. 신하가 “그렇다면 혼종을 폐지할까요?” “혼종이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서 제를 지내라.”고 했던 소문이었습니다. 요컨대 소를 양으로 바꾸라(以羊易之)고 지시한 적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철학 2015.08.31

관계와 인식

관계와 인식 인식 대상이 비교적 간단한 경우와 달리 사회, 민족, 시대와 같이 총체적인 경우에는 필자의 관찰력, 문장력, 부지런함 따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점과 역사관, 철학적 세계관과 같은 과학적 인식 체계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바로 대상과 필자의 ‘관계’입니다. 대상과 필자가 어떠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가가 결정적입니다. 이를테면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 즉 구경하는 관계 그것은 한마디로 ‘관계 없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상과 자기가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맺어짐이 없이, 즉 대상과 필자의 혼연한 육화(肉化)없이 대상을 인식하고 서술할 수 있다는 환상, 이 환상이야말로 정보 문화와 저널리즘이 양산해 낸 허구입니다. 제 3의 입장, 가치중립의 객관적 입..

철학 2015.08.30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1. 현대인의 무의미한 삶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는 자신의 저서『시지프 신화』에서 현대인들은 모두 아침에 일어나 전차를 타고 출근하고,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네 시간 동안 일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직장에서 네 시간 동안 일하고, 그 다음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고...... 이렇게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왜,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의문이 떠오르게 되면 놀라움과 지겨움이 뒤섞인 느낌이 솟아오른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게 살아가는 이러한 일을 카뮈는 ‘부조리(不條理)’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부조리란 논리에 맞지 않는 것, 즉 앞뒤가 ..

철학 201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