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97

취향의 지표, 구별의 지표

취향의 지표, 구별의 지표 이제 한국 사회에서 와인은 모임의 성격을 결정짓고, 참석자의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결혼식과 각종 행사에서 맥주나 소주가 아니라 와인으로 건배한다. 어떤 와인이 놓여 있는가가 모임의 수준을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와인은 세련된 소비문화로 완전히 정착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 권력이 되었다. 술 자체가 아니라 이 술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허상을 사랑하게 된 과정은 질문과 답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다. 섬세하게 맛을 판별하고 좋은 술을 찾아내는 심미안과는 관계없는, 오로지 고급의 취향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들을 사랑하고 그 수사들로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는 이 욕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질료 위에 수사(修辭)가 얹힌다. 즉물적인 구체의 세계..

철학 2012.02.03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한다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남송의 유학자 호인(1098~1156)이 자신의 저서‘독사관견(讀史管見)’에서 처음 사용했다. 초월적인 신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했다’면, 동양 사람들은 천명을 ‘기다렸던’ 것이다. 어떤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신에게 기원하고 기도하는 태도는 구체적인 일을 수행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태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명’이란 무엇이며, 나아가 그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진인사대천명으로 요약되는 과거 동양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정초했던 철학자 맹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의 마음을 다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자신의 본성을 안 사람은‘하늘(天)’을 안다. (.....

철학 2011.06.24

인식의 4단계

인식의 4단계 플라톤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4단계로 나누었다. 추측, 신념, 오성(悟性), 지성(知性)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앞의 두 단계인 추측과 신념은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을 대하는 방식으로 가시계(可視界), 감관계 또는 현상(Appearance)이라 하였고, 뒤의 정신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진 작용인 오성과 지성은 가지계(可知界), 예지계 또는 실재(Reality)라 하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가시계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의견에 해당되며, 뒤의 가지계는 지식으로서 바로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유일한 이성작용으로 이해한다. 인식 수준별 4단계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친한 친구 사이인 동건이와 용준이가 있다. 동건이는 이번에 새로 사귄 여..

철학 2009.12.08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 데리다(1930~2004)가 주장한 내용 중 하나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해체(Deconstruction)다. 이항대립이란 서양철학의 창시자인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의 전통이 되어 있는 양자대립구조를 말한다. 즉, 정신/육체, 남자/여자, 서양/동양, 백인/흑인, 신/인간과 같이 두 요소를 서로 대립시키면서 이 대립을 통해 정의(Definition)를 하고, 질서를 잡고, 규칙을 발견하는 철학 방식을 말한다. 데리다의 주장은, 이렇게 양자 대립으로 몰고 가는 이항대립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현실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고, 또 양자대립을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근거 없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수직적 비교가 잘못..

철학 2009.12.07

공리주의

공리주의, 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주다 영국은 현대 자본주의의 어머니 같은 나라다. 18세기 산업혁명은 공업 생산량을 급격하게 증가시켰고, 그에 따라 원료 수입과 상품 수출을 위한 상업이 발달했다. 자본주의는 이 가운데 탄생했다. 더군다나 영국은 많은 식민지 덕택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그 당시 세계를 이끈 주도 국가였다. 그러니 영국적 가치관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철학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영국에서 탄생한 자본주의는 그대로 현대 문명의 기본 틀이 되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영국의 가치관과 철학은 지금 사람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면 그 당시 영국을 주름잡던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로 유명한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철학 2008.11.17

최고의 善은 흐르는 물과 같다

최고의 善은 흐르는 물과 같다 노자(老子)사상도 이 시대에 뿌리내린 철학이다. 백가쟁명 시대에 탄생한 사상 가운데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상이라면 공자가 창시한 유가와 노자에서 비롯된 도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성격은 라이벌이라 할 만큼 다르다. 유가는 원래부터 지배층의 사상이었다. 지금도 유학자라 하면 우리는 흔히 대궐 같은 집에서 팔자걸음을 걷는 선비를 떠올린다. 반면, 도가는 민중의 사상이라 할 만하다. 도교(道敎)로 세속화된 도가의 사상은 지금은 우리 생활 속에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점(占)집 문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원래 노자 사상은 지극히 ‘자연 친화적’이었다. 전통 농경사회를 떠올려 보자.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그 시절만 ..

철학 2008.11.16

헤겔의 절대정신

역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 헤겔(1770~1831, 독일) 철학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헤겔의 주장은 한마디로 ‘역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무슨 말일까? 조각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처음에 조각 작품은 예술가의 머리 속에만 있다. 그러다 예술가가 돌덩어리에 칼을 대는 순간부터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작품은 점점 눈에 보이는 실체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절대정신의 자기실현’도 이와 똑같다. 절대정신이란 ‘신의 섭리’와 비슷하다. 절대정신은 처음에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역사를 통해 점점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간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추상적인 이상이 역사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된 사례였다. 이와 같이 절..

철학 2008.08.27

동양철학의 참모습

동양철학의 참모습 동양의 여러 사상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런 점을 검토하고 반성해 보지 않는 채 지금의 유행처럼 동양철학을 되살려 내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더구나 정신적으로는 민주이고, 경제적으로는 사유이며, 사회적으로는 평등인 현대에 군주가 다스리고, 군주나 귀족계급이 소유했으며, 엄격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전통 사회에서 생겨난 철학을 피상적으로 접맥할 수 는 없습니다. 현대와 동양철학을 바르게 접맥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있어야 알맹이와 찌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기준은 현실적 요구입니다. 봉건시대는..

철학 2008.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