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4단계
플라톤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4단계로 나누었다. 추측, 신념, 오성(悟性), 지성(知性)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앞의 두 단계인 추측과 신념은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을 대하는 방식으로 가시계(可視界), 감관계 또는 현상(Appearance)이라 하였고, 뒤의 정신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진 작용인 오성과 지성은 가지계(可知界), 예지계 또는 실재(Reality)라 하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가시계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의견에 해당되며, 뒤의 가지계는 지식으로서 바로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유일한 이성작용으로 이해한다.
인식 수준별 4단계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친한 친구 사이인 동건이와 용준이가 있다. 동건이는 이번에 새로 사귄 여자 친구 태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용준이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용준이는 동건이의 안목에 놀란다. 사진 속의 여자친구가 대단히 분위기 있는 미모였기 때문이다. 용준이는 동건이의 여자 친구인 태희로부터 그녀의 친구를 소개받을 요량으로 동건이 커플에게 저녁을 한 번 쏘기로 약속한다. 셋이 만난 자리에서 태희에게 인사를 하면서 용준이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미인이라면 이 세상 여자들은 모두 미스코리아였다.
이런 동건이와 용준이의 이야기를 가지고 플라톤의 인식 4단계를 알아보면, 먼저 뽀샵된 사진은 가장 낮은 인식단계인 추측의 단계다. 사진은 실물 자체가 아니다. 실물의 모습을 지면상으로 본뜬 것에 불과하다. 그림이나 영화, 조각, 소설 등 모든 모사품이 여기에 속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 모사품을 보면서 자기의 여자 친구라 하고 자기 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여자 친구의 사진, 자기 집의 사진이라고 말해야 한다. 사진은 실체가 아닌 모사품이기 때문에 그 실체의 본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불확실하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 추측의 단계를 가장 불안전하고 불확실한 인식 단계로 규정했다.
두 번째로 친구의 애인을 직접 만나보면서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인 ‘신념’의 단계다. 실물 역시 태희의 ‘본질’ 자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밖으로 보이는 실물인 태희는 오늘 화장을 잘 못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걱정거리 때문에 얼굴표정이 어두워 우울한 여자로 보일 수도 있다. 더 문제인 것은 내 오감의 불확실성이다. 눈, 귀, 코, 입, 촉감을 통해 갖게 되는 느낌은 내 컨디션에 따라서 언제든지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념’은 ‘추측’보다는 확실하지만 아직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볼 수 없다.
그 다음은 오성의 단계다. 자기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미인관이 바로 이 오성의 단계에 속한다. 이때부터는 육체적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정신으로 느끼는 정신작용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미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미인 개념은 실체의 모사품을 보고 판단하는 ‘추측’이나, 불확실한 오감의 느낌으로 항상 외형이 바뀌는 대상을 보면서 파악하는 ‘신념’ 단계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된다.
가장 높은 인식 단계는 미인의 ‘형상’(이데아)을 갖는 것이다. 이는 곧 미인에 대한 원형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중에서 동건이는 자신만의 미인관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보편적인 미인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논리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인정하는 미인 개념이다. 발이 세 개 달린 강아지를 보면서 누구나 강아지라고 말하고, 꼬리가 없는 강아지를 보면서도 모두 강아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정신 속에 강아지에 대한 보편적 개념인 강아지의 ‘형상’(강아지의 이데아)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남자들이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미인에 대한 특정 기준이나 논리를 따져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성 속에 미인 개념의 원판인 미인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편적인 미인의 형상(이데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플라톤은 인식의 가장 낮은 단계인 추측 단계를 열등하게 인식하여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이나 배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생각대로 ‘추측’단계는 과연 인간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고 필요 없는 것일까. 인간이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이거나 정신적으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플라톤의 의견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인간이 정신을 지향하고 이성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감성이 이성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육체적인 것이 정신적인 요소 이상으로 인간의 평안함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동기 / ‘희망, 인문학에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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