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주다
영국은 현대 자본주의의 어머니 같은 나라다. 18세기 산업혁명은 공업 생산량을 급격하게 증가시켰고, 그에 따라 원료 수입과 상품 수출을 위한 상업이 발달했다. 자본주의는 이 가운데 탄생했다. 더군다나 영국은 많은 식민지 덕택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그 당시 세계를 이끈 주도 국가였다. 그러니 영국적 가치관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철학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영국에서 탄생한 자본주의는 그대로 현대 문명의 기본 틀이 되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영국의 가치관과 철학은 지금 사람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면 그 당시 영국을 주름잡던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로 유명한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밴담의 생각은 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인들에게 이 말은 사회 구성원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복지국가의 이념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대 다수’가 꼭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도, ‘최대 행복’ 역시 반드시 모든 이에게 쾌락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뜻도 아니었다.
밴담의 주장은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부터 걱정하지 마라. 파이 자체를 키우면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커진다.”라는 지금의 대기업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투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적 부가 커져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는 논리 말이다. 여기에 제자인 밀이 한몫 거든다.
“사람들 대부분은, 만약 당신이 짐승이 되어 준다면 동물적 쾌락을 완전히 누리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지성이 있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 만족한 돼지이기 보다 만족하지 않은 인간인 것이 좋다. 만족한 바보이기 보다는 만족하지 않은 소크라테스인 것이 좋다.”
쾌락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멋대로 풀어놓아도, 결국 인간은 정의나 선, 도덕 같은 인간다운 가치를 스스로 추구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교회나 국가가 나설 자리는 없다. 자본가들의 의지에 따라 경제 활동을 북돋아 준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풀릴 테니까.
나아가 정치 사상가로서 밀은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될 만한 중요한 사회 원칙을 제시했다. 이른바 ‘타인 위해의 원칙’이 그것이다. “정부가 개인의 생활에 간섭할 수 있는 경우는,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곧 명확하게 상대를 해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는 개인의 재산이나 권리를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안광복 / ‘철학, 역사를 만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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