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헤겔의 절대정신

송담(松潭) 2008. 8. 27. 15:12

 

역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



 헤겔(1770~1831, 독일) 철학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헤겔의 주장은 한마디로 ‘역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무슨 말일까?


  조각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처음에 조각 작품은 예술가의 머리 속에만 있다. 그러다 예술가가 돌덩어리에 칼을 대는 순간부터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작품은 점점 눈에 보이는 실체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절대정신의 자기실현’도 이와 똑같다. 절대정신이란 ‘신의 섭리’와 비슷하다. 절대정신은 처음에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역사를 통해 점점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간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추상적인 이상이 역사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된 사례였다.


 이와 같이 절대정신은 마치 조각가의 머리 속의 구상을 돌덩이를 파내며 구현해 나가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모습을 역사 속에 점점 더 완성해 나간다. 조각가는 결국 처음 상상했던 모습대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와 똑같이 절대정신도 마침내는 변화와 투쟁의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완성시킬 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절대정신이 역사 속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둥거리며 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시저,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영웅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이성의 간교한 지혜가 작용한 결과다. 월급쟁이는 먹고 살기 위한 자신의 고단한 일이 세계경제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그래도 변화는 이런 세세한 작업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때가 맞지 않으면’ 결코 영웅이 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절대정신은 개개인과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는 거다.

(안광복 / ‘철학, 역사를 만나다’중에서)


 모든 사건에는 본질적인 면이 숨겨져 있다. 헤겔에게 그 본질적인 면이란 절대정신이고, 인간의 역사는 이 절대정신이 그 본질을 점차 분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절대정신의 본질은 자유이다. 역사는 이성적인 자유를 점차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고대 국가에 있어서는 군주 한 사람만 자유롭고 모두가 노예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서양 중세에는 군주뿐만 아니라 봉건 제후들도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이제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역사의 발전은 절대정신이 아닌, 몇몇 뛰어난 영웅들의 활약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영웅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절대정신이 이들을 조정하고 있다. 즉 헤겔은 절대정신이 영웅을 선택하여 자신을 실현시킨다고 본 것이다.


안광복 /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중에서

 

 

‘겸손한 주체’의 등장, 레비나스


 레비나스(1906~1995, 프랑스)는 2차 대전 때 프랑스군 통역관으로 입대했는데, 전쟁 초기에 포로가 되어 독일 하노버 근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전쟁 말기까지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레비나스는 자신이 군복 때문에 살았다고 회고합니다. 다른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보내졌지만 군인들은 수용소에서 계속 수감되었던 겁니다. 당시 수용소에서 레비나스는 개 한 마리와 만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수용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똥개였지요. 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이 그 개에게 ‘보비’라 이름 지어주고 돌보았습니다. 레비나스는 당시 벌목 작업을 했는데 종일 힘겹게 작업을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보비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짖어주었습니다. 유일한 위안이었던 겁니다. 포로를 사람으로 대접해 주고 반겨주는 개, 그런 보비를 독일군이 쫒아버렸습니다. 레비나스는 그 개를 ‘나치 독일에서의 최후의 칸트 주의자’였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단지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늘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법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한 존재가 바로 그 개였다는 거지요. 요컨대 전쟁 중의 독일은 그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였다는 뜻이 됩니다.


 1500년 이상 기독교가 뿌리내린 유럽에서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전쟁과 홀로코스트 같은 참극이 일어날 수 있는가? 레비나스의 철학적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레비나스가 내놓은 답은 서양철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서양철학의 기본 방향 설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서양철학은 타자를 수용하고 환대하기 보다는 타자를 배제하는 철학 전통입니다. 타자를 동일자로, 자기 자신에게 환원시키는 것, 동일자 혹은 자아의 권력 아래 두는 철학이 바로 서양철학이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서양철학은 제국주의 철학, 전쟁의 철학, 전체성의 철학이라는 것이지요.


 레비나스는 주체의 본질적 성격으로 ‘환대로서의 주체’를 말합니다. 환대는 타자를 배제하거나 나에게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수용하고 환영하는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주체를  심지어 타인의 짐을 짊어지는 존재로 규정합니다.


강영안. 표정훈 / ‘철학이란 무엇입니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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