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참모습
동양의 여러 사상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런 점을 검토하고 반성해 보지 않는 채 지금의 유행처럼 동양철학을 되살려 내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더구나 정신적으로는 민주이고, 경제적으로는 사유이며, 사회적으로는 평등인 현대에 군주가 다스리고, 군주나 귀족계급이 소유했으며, 엄격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전통 사회에서 생겨난 철학을 피상적으로 접맥할 수 는 없습니다.
현대와 동양철학을 바르게 접맥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있어야 알맹이와 찌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기준은 현실적 요구입니다. 봉건시대는 임금이 기준인 군주 사회였지만 현대는 민중이 기준인 민주 사회입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민중이 인정하는 사회성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성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도, 서예, 예비신부교육, 전통혼례 같은 실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같은 기준에서 동양철학을 봅시다.
공자, 맹자, 순자로 대표되는 유학은 어떠한가요? 유학은 분명히 도덕적 완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완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 세계의 실현에 있었으며, 그 세계를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유학의 본질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불의에 항거해 온 많은 사람의 실천을 통해 지탱되어온 것이지, 몇몇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만으로 이어져온 것은 아닙니다.
또한 유교 도덕의 우월성은 실천 행위에 대한 사후 보상이 전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의 실천은 죽은 뒤에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며, 오직 인간답기 위해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양심이고 도덕이며,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용기가 호연지기였습니다.
도덕 없는 자본주의는 짐승만도 못합니다. 자본주의 논리는 자본의 논리입니다. 자본은 선악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본이 모이게 마련입니다. 권력과 재벌이 결탁하여 온갖 못된 짓을 하고도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세상, 돈이 되는 일이면 사람까지 팔고 사는 세상, 이 속에서 논의해야 할 도덕의 문제는 무엇을 위한 도덕인가입니다. 그리고 이때 얼마나 도덕적이냐 하는 것은 얼마나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가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남을 위한다는 것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정의입니다. 묵자의 철학도 바로 그런 것이었으며, 오늘날 필요한 유교적 삶 역시 도덕적 실천, 즉 도덕의 사회적 실현인 정의의 실천인 것입니다.
노자,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 사상은 어떠한가요? 도가 사상에는 회의와 부정, 풍자적 비판 같은 소극적인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장 사상의 참모습은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과 평등의식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보면서 모두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제 역할을 다하는, 모두가 주체로 어우러지는 평등 사회를 바랐던 것이며, 이 같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주체적 삶을 가로막는 온갖 사회 제도의 허위의식을 부정하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공자나 노자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온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지금 유행하는 자신들의 사상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중국의 유명한 학자 궈모뤄는 <마르크스 공자 방문기>라는 재미있는 콩트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공자의 사상이 오늘날 어떤 의의와 한계를 갖는지를 해학적으로 보여 주는 콩트를 요약해서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공자 제사가 있었던 이튿날,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공자 사당에서 식어 버린 돼지 머리를 먹고 있었다. 그때 젊은이 넷이 주홍색 옻칠을 한 가마를 들고서 사당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가마 속에서 뺨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서양인이 나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칼 마르크스였다. 그 이름은 요즈음 인기가 높아서 이미 공자의 귀에까지 들려왔던 터였다.
공자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라는 말을 듣고는 너무나 놀라 기쁨에 넘쳐 외치듯 말했다.
“유붕 자원방래니 불역열호아! 마르크스 선생,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먼 길을 오셨습니까?
이렇게 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마르크스 : 저는 제 사상이 중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 사상과 선생님의 사상이 너무 달라서 선생님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제 사상이 실현될 수 없을 거라고 말 합니다. 도대체 선생님의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제 사상과 얼마나 다름니까?
공자 : 요즘 외국의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것은 우리나라의 최신 유행이니 선생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르크스 : 좋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기 하지요. 우선 제 사상의 출발점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종교가나 형이상학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현실 세계에서 최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탐구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공자 : 그건 제 사상의 출발점과 똑같군요. 그러면 어떤 세상이라야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 :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이상으로 삼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모두가 생활 보장을 받아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지상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공자 : 그렇다면 선생의 이상세계는 나의 대동 세계와 완전히 똑같군요. 제가 문장 하나를 읊을 테니 한번 들어 보십시오. ‘대도가 실행되면 천하는 공유된다. 덕 있고 재능있는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니 모두가 화목하다. 노인들은 편안히 여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들은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으며, 아이들은 모두 양육된다. 이것이 대동 사회니라.’ 어때요? 선생과 똑같지요?
공자는 목소리를 길게 빼며 읊다가 나중에는 자기최면에 빠지는듯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조금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하고 힘을 주어 말한 마르크스는 연설을 하듯 말을 이었다.
“저는 공상가가 아닙니다. 저는 역사와 경제를 깊이 연구한 결과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자본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노동 계급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는 거지요.”
공자 : 아 물론이지요. 저도 일찍이 ‘적음을 걱정 말고, 균등하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말했지요.
마르크스 :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적은 것도 걱정합니다. 저는 사유재산에는 반대하지만 산업의 발전은 적극 제창하는 사람입니다.
공자 : 예, 예. 저도 ‘먼저 민중을 부유하게 하고, 그 다음에 가르치라’고 말했고, 경제력 군사력 민심 획득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선 산업을 발전시켜야 균등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재물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질을 아주 중요시 하는 사람입니다. 저기 있는 제 제자 자공만 해도 장사를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번 인물입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마르크스는 비로소 감탄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사상이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공자도 2,000년 동안이나 사당에서 식은 돼지머리나 씹고 있는 마당에 자기의 사상이 중국에서 실현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전 이제 돌아가서 마누라 얼굴이나 보아야겠습니다.”
공자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아, 선생은 부인이 계시군요?”
“왜 없겠습니까? 제 마누라는 제 동지인 데다 굉장히 예쁩니다.”
공자는 마르크스가 부인 자랑을 늘어놓은 것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모두가 부인이 있는데, 나 혼자만 없구나!” 그러나 공자는 이내 안색을 바꿔 마르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집 어른을 공경함으로써 남의 집 어른에게까지 미치고, 우리 집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남의 집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 처를 사랑함으로써 남의 처에게까지 미치니, 선생의 부인도 내 처가 아니겠소?”
마르크스가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저는 공산을 외칠 뿐인데 선생님은 공처(共妻)까지 주장하시는군요. 선생님은 저보다 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사당을 빠져나갔다. 그는 공자가 정말로 유럽까지 쫓아와 자기 부인을 공유하자고 할까 봐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김교빈.이현구 / ‘동양철학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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